이상성 (평론가, 전 브루클린 한인교회 부목사)
트럼프가 알라스카 천연가스 개발에 우리나라가 투자할 것이라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투자할 예정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긍정적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알라스카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된 것은 60년대의 일로 매우 오랜 역사가 있다. 그러나 개발의 어려움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70년대 에너지 위기가 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 카터 대통령 때 개발 계획이 본격적으로 수립되기 시작한다. 알라스카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각종 입법을 하고 몇 가지 개발 계획도 세워졌다.
애초에는 알라스카 북부의 북극해 연안 지역인 프루드호 베이(Prudhoe Bay)로부터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깔 생각을 했었다. 캐나다 유콘 테리토리를 거쳐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를 통과한 후 앨버타까지 약 2,700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두 번째 계획은 프루드호 베이로부터 알라스카의 발데즈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여 가스를 운반한 후 거기서 액화시켜 LNG 선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발데즈로 온 가스를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등 알라스카의 대도시에도 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계획은 천연가스를 애초에 생산지 근처에서 액화하여 발데즈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운송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도중에 5개의 중간 배분지를 선정하여 지역 주민들에게도 가스를 공급하자는 것이기도 했다.
생산지로부터 발데즈까지 파이프라인도 두 가지 계획이 있는데, 하나는 기존의 원유 공급 파이프라인을 따라(알라스카에는 이미 원유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어 있다.) 건설하자는 안과 알라스카 고속도로를 따라 건설하자는 두 가지 안이 있는데, 두 가지 모두 이미 부지는 확보되어 부지 문제로 민원이 제기되는 일은 극히 드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미국 본토의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지에서 최단거리로 캐나다로 진입, 앨버타까지 가고 거기서부터는 기존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캐나다와 미국 각지로 공급하자는 것이었는데, 이 계획이 2천 년대 들어와 무너진다. 바로 셰일가스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가스가 저렴하게 생산되니 더 이상 고비용이 들어가는 알라스카 가스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알라스카 내부에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바로 알라스카의 인구 증가이다. 알라스카는 인구가 점점 증가하여 기존의 천연가스 공급 망으로는 한계에 부딪쳤다. 그래서 첫 번째 계획은 폐기되고 이제 두 번째 계획, 알라스카의 발데즈로 운송해서 국제시장에 판매하는 안이 유력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은 알라스카 주 자체가 급하게 되었다. 자기네 자체의 가스 공급 망이 한계에 도달해서 이 계획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알라스카 주민들 사용을 위해 천연가스를 수입해야 할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수행되면 알라스카 주민들은 엄청나게 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알라스카의 핵심 사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엄청나게 낮아졌다. 러시아에서도 매우 싼 천연가스가 러시아 국영 가스 회사(가즈프롬/Gazprom)로부터 공급되고 있다. 가즈프롬도 한 때 이 사업에 참여하려 한 적이 있었다. 천연가스의 가격과 공급이 원활해지자 알라스카 가스의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이미 대량으로 생산되어 싸게 공급되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알라스카 가스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고, 그래서 선주문이 나오지 않았다. 선주문이 없으니 자본 조달이 안 된다. 자본 조달이 안 되니 사업이 진척이 안 된다.
그래서 트럼프는 우리나라더러 자본조달을 하라는 것이다.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서 가장 큰 애로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다. 공사에 대한 민원부터 내 땅을 팔지 않겠다는 알박기 등 예기치 않은 민원이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그런데 알라스카 파이프라인은 이런 민원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미 부지는 확보되어 있고, 알라스카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극단적으로 낮은 지역들 중의 하나이다.
두 번째 애로는 노동력 확보이다. 알라스카의 낮은 인구밀도는 민원의 가능성은 낮춰주지만, 노동력 확보에는 매우 취약한 지점이다. 공사가 진척됨에 따라 노동자 알박기가 시작된다. 내가 일 안 하면 너네 망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온갖 요구가 들어온다. 근무시간, 일당, 휴가, 복지 등 온갖 요구가 빗발치게 되는데, 사업주 측으로서는 안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런데 알라스카 사업에는 알라스카 주민들이 마냥 배째라를 시전 할 수만은 없다. 자신들의 에너지 수급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알라스카 주민들은 거의 무상에 가까운 헐값으로 가스를 쓸 수 있다. 사업이 안 되면 현재 가격의 수 십 배를 주고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행동에 집단적 무언의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스의 생산 원가는 무지하게 싸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수송로와 정부의 세금 등인데(카타르의 경우 수출 원가의 65-70%가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가 투자하게 되면 생산 원가에서 매우 낮은 수익을 더한 인수 가격(현재 알라스카 천연가스의 주인은 알라스카 주정부이다. 그래서 우리가 투자해서 생산해도 알라스카 주정부로부터 가스를 사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면세, 혹은 매우 낮은 세율 적용 등으로 국제 시장에서의 사업성을 확보해야 한다. 러시아의 가즈프롬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싼 가격으로 국제시장에 물건을 내어 놓는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알라스카 가스 개발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알라스카 가스가 완벽하게 시장성이나 경제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개발이 지연되어 온 것은 개발비의 불확실성과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 불확실성이라는 두 개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연되었다. 이 불확실성 때문에 자금 조달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투자하여 알라스카 정부로부터 좋은 조건을 받아 내고(그들이 큰소리 칠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파이프라인 건설에 따르는 다양한 문제들을 주정부가 해결해 주기로 약속 받으면 에너지 주권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한 때는 알라스카 정부와 미국 연방정부도 탐을 내던 사업이었다. 다만 국제적 에너지 환경의 변화로 찬밥 신세가 되었는데,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고 비용으로 보이지만 에너지 시장이 수시로 들쭉날쭉임을 감안하면 큰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법에 의하면 에너지 파이프라인이 주 경계를 넘나들지 않으면 개발의 모든 권한은 주정부에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것은 알라스카에서 채취된 가스를 알라스카 내부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하고, 그것을 알라스카 주민과 국제 시장에 내어 놓으려는 것이므로 연방정부가 개입할 소지는 매우 적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투자하라고 압박만 가할 수 있을 뿐, 개발 자체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우리 정부와 우리 기업, 그리고 알라스카 주정부 사이의 협상에 달렸다.
이재명 정부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본다. 부디 이 사업과 투자는 협상을 잘 해서 크게 성공하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