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계 “분노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
인, “저의 선조들이 걸어오신 길이자 늘 헌신하고 싶었던 분야”
대한적십자사 제32대 회장으로 선출된 인요한 전 국민의힘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보건의료·시민사회단체들은 인 전 의원 의료관과 12·3 비상계엄·탄핵 국면에서의 행보를 문제 삼아 “부적격 인사”라고 비판하며 대통령 인준 중단을 요구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도 공개 비판에 나서며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22일 중앙위원회 의결을 통해 인 전 의원을 제32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적십자사는 오랜 의료 현장 경험과 공공보건의료 활동, 북한 결핵 퇴치 및 의료장비 지원 경험 등을 들어 인 전 의원을 혈액사업·병원사업·재난구호사업·인도적 국제협력사업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인사를 발탁한 만큼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통합 인사’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발표 직후부터 보건·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쏟아졌다. 이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성명을 내고 “인 전 의원을 적십자사 회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분노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인 전 의원은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다 대세가 기울자 지난해 말 의원직을 사퇴한 기회주의적 인물”이라며 “친윤 인사일 뿐 아니라, 건강보험이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하다’며 민간의료보험과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한 친기업·시장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인사가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에 부합하는가. 이 대통령은 인준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판은 인 전 의원의 ‘친정’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왔다. 의사 출신인 한지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인사는 결국 그 정권 철학을 보여준다”며 “그런 인물을 대한적십자사 회장에 임명하는 것이 과연 이번 정부가 말하는 ‘내란 청산’이고 ‘실용’인가. 이런 인물이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뉴이재명’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 전 의원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을 ‘가슴으로 이해한다’고 말했고,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면서도 그 책임을 온전히 당시 야당에 돌렸으며, 탄핵에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며 “그 이후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한 성찰이나 사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인 전 의원은 이날 오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2월 의원직 사퇴를 두고 “12·3 불법 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가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에 내린 결단이었다”며 “불법 계엄으로 초래된 헌정질서 훼손과 국민적 불행에 대해 천 가지 말 대신 ‘의원직 사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 소신을 실천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적십자사는 정치와 무관하게 순수한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기관”이라며 “엄중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직무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입장문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 문제 삼은 탄핵 반대 행보에 대한 명시적 사과나 과거 의료민영화 관련 발언에 대한 해명은 담기지 않았다.
결국 논란은 대통령 인준 절차로 옮겨갈 전망이다. 임기 3년인 적십자사 회장은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된 뒤 명예회장인 대통령의 인준을 거쳐 직무를 수행한다. 진보·보수 양 진영에서 동시에 반발이 터져 나온 가운데, 이 대통령이 인준을 강행할지에 따라 ‘통합 인사’라는 정부 설명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인 선출자는 입장문을 통해 “인도주의 사업은 130년간 저의 선조들이 걸어오신 길이자 제가 평생 의사로 살아오면서 늘 헌신하고 싶었던 분야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적십자사는 정치와 무관하게 순수한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기관이자 회장은 소외된 이웃을 보듬으며 어려움에 처한 북한 동포 지원과 인도주의적 국제 협력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세심하게 살피는 자리”라며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우리 사회를 적십자 정신으로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국민 통합에 기여하라는 소명으로 믿는다. 이 엄중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직무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인 선출자는 연세대 의학 학사, 고려대 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1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았다. 2012년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으며, 제22대 국회의원, 유진벨재단 공동 설립,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등을 역임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