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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정주영 연기한 ‘국민 아버지’ 최불암…20년 인연 재조명

 ‘야망의 25시’ 청년 정주영부터 ‘영웅시대’ 천태산까지…각별했던 동행

 프란치스코’며칠 전 염수정 추기경의 병자성사를 받아  ‘프란치스코’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87)이 29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생전 고(故)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나눈 20여 년의 각별한 인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3년 시작됐다. 농촌에 애착이 깊었던 정 회장은 MBC TV 드라마 ‘전원일기’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정 회장은 최불암을 집으로 초대해 “지게도 못 지면서 어떻게 농사 드라마를 하느냐”며 핀잔을 줬다. 이어 “지게는 목의 힘으로 지는 것이다. 목을 당겨야 중심이 잡힌다”고 직접 가르쳤다. 최불암은 늙은 지게꾼의 목덜미가 청자처럼 갈라져 있다는 정 회장의 조언을 실제 분장에 반영하기도 했다.

최불암은 브라운관에서 직접 정 회장을 연기하기도 했다. 1983년 MBC ‘야망의 25시’에서 청년 정주영을 맡았고, 2004년 MBC ‘영웅시대’에서는 정 회장을 모델로 한 세기그룹 천태산 회장의 노년기를 연기했다. 정 회장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와 말끝을 올리는 억양을 세밀히 재연했다. 그러나 100부작 기획이던 ‘영웅시대’가 외압설과 미화 논란 속에 70회로 조기 종영되자, 최불암은 “50대 시절만 다뤄 통일에 대한 염원이나 정계 활동 등 그분의 생각과 활약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정 회장의 권유는 최불암을 정치로 이끌었다. 1992년 정치가 싫어 일본으로 피신했던 최불암은 귀국 후 안양 유세장에 들렀다가 언론에 노출되며 통일국민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강부자·이주일 등과 함께였다. 최불암은 “나라가 돌아가는 틀을 넓게 볼 수 있어 연기자로서도 큰 득이 됐다”고 돌아봤다. ‘전원일기’에서 둘째 아들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유인촌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입각했을 때는 “‘공부도 안 시키고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들었냐’며 울분을 토하던 100회 특집 장면이 떠올라 애잔했다”는 소회를 남겼다. 유인촌은 30일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빈소리가 차려지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 고인을 추모했다.

최불암에게 정 회장은 삶의 나침반이자 스승이었다.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됐음에도 헬기 탑승을 밀어붙였던 강원도 유세 날, 조종사가 떨고 최불암이 꽁꽁 언 김밥을 넘기지 못할 때 정 회장은 “밥이 어니까 더 꼬소하다”며 웃었다. ‘이봐, 해봤어?’로 대변되는 특유의 배포와 낙관주의였다.

정 회장은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일한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엉터리다. 난 7시간은 자야 힘을 쓴다”며 “잠 안 잔다고 자랑하는 사람과는 절대 일하지 마라. 병든 사람이거나 사기꾼”이라는 뼈 있는 조언을 건넸다. 박동규 교수의 해변시인학교를 함께 찾았을 때는 라면값을 보태달라는 청에 정 회장이 30만 원을 꺼내자, 최불암이 20만 원을 보태 “재벌 총수와 2대 3으로 돈을 냈다”며 껄껄 웃기도 했다.

2001년 정 회장의 장례식에서 추모시를 낭독했던 최불암은 생전 그를 “단순소박하면서도 치밀했던 스승”으로 회고했다. 시대를 개척한 기업인과 그 삶을 온몸으로 연기했던 배우는 2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 역사 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됐다.故 최불암, 별세 전 염수정 추기경 병자성사 받아

 

한편 최불암씨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염수정 추기경의 병자성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30일 천주교계 등에 따르면, 염 추기경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인의 병실을 방문해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병자성사는 병마로 고통받거나 위중한 신자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베풀고 구원을 비는 가톨릭 의식이다.

고인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력을 유지했으나,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3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힘써 왔던 고인은 전날 오후 10시께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2018년 10월 염 추기경 주례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섬긴 성자의 뜻을 본받고자 본인이 선택한 ‘프란치스코’였다. 당시 세례식과 함께 1990년에 먼저 세례를 받은 아내 김민자 씨와 혼인 갱신식을 진행했다.

사단법인 제로캠프 관계자는 이날 “선생님 발인을 11월 2일 오전 7시로 일단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인 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열린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이다.

염 추기경은 이날 고인의 장례미사도 집전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에 마련됐다. 장례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헌신해 온 고인의 뜻을 기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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