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땀 흘려 번 돈 에는 무게가 있지만 , 쉽게 번 돈 에는 날개가 있다.”
이 말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만, 오랜 시간 땀과 노력으로 쌓은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의 양이 아니라 그 돈을 만들어낸 과정과 그것을 지탱할 실력이다.
16세기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막대한 금과 은이 유입되면서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풍부한 귀금속이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인플레이션과 산업 경쟁력 약화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장기적인 경제 쇠퇴를 겪었다. 스페인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외부에서 쉽게 빼앗아 들어온 부보다 스스로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력과 경쟁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35년간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나라를 되찾았다고 해서 삶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전쟁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국민의 삶은 극도로 어려웠다.
그 잿더미 위에서 우리의 부모 세대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마음 하나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광산과 병원에서, 그리고 뜨거운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흘린 땀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거저 주어진 기적이 아니다. 제국주의자들 처럼 남의 나라의 재부를 약탈한 것도 아니다. 한 세대의 식민지와 전쟁의 생존력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흘린 땀이 만든 결과다.
미주 한인 이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1902년 12월 제물포를 떠난 초기 이민자들은 낯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다.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한 이들의 작은 시작은 120여 년이 지난 오늘 200만 명이 넘는 미주 한인 공동체의 뿌리가 되었다.
그 길에는 1992년 4·29라는 깊은 상처도 있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수많은 한인 업소가 약탈과 방화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약 4억 달러에 달했다. 평생의 노력으로 일군 가게와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다시 일어섰다. 가게 문을 다시 열고, 자녀를 교육시키고, 사업을 다시 일으켰다. 전문직과 기업으로 진출하고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냈다. 4·29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가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선 회복의 역사 미주 한인 이민사의 새로운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이제 미주 한인 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첫째, 한민족의 역사가 그랬듯이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기술과 전문성, 정직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둘째, 성공의 결과뿐 아니라 성공에 이르는 과정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가르쳐야 한다.
셋째, 개인의 성공을 공동체의 자산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경험과 지식, 자본과 네트워크를 후배들과 나누고 새로운 리더를 키워야 한다.
과거 이민 1세대의 목표가 ‘생존과 정착’이었다면, 이제 우리 세대의 과제는 성장한 공동체가 미국 사회에 더 큰 가치를 돌려주는 것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과거의 고난이 아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흘린 땀,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킨 땀, 낯선 땅에서 삶의 터전을 만든 땀, 그리고 4·29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선 땀이다.
쉽게 취득한 부와 명예와 권력은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지만, 땀으로 다져진 성취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무게를 가진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은 결과 그 자체가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구어온 땀의 정신과 다시 일어서는 의지다.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그것이 광복 81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값진 일이다. (동찬 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