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
미국의 독립 250주년이다. 그리고 2026년의 절반이 지나갔고 숨이 막히는 더위가 도시를 짓누르는 7월의 문턱에 서 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지금 뛰지 않으면 가을의 결실은 없고 혹독한 겨울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계절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세상 만물의 운명이고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수레바퀴도 계절처럼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긴 시간의 축 위에서는 인류의 노력으로 자유와 평등을 향해 나선형으로 전진해 왔다. 그러나 그 전진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 정치적 분열도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문명 전환기의 진통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를 견디는 인간의 능력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자유와 시장경제를 얻게 되었다. 동시에 극심한 혼란도 겪었다. 인플레이션, 범죄, 불평등이 일상화되자 사람들은 오히려 과거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통제와 결핍 속에서도 ‘예측 가능했던 삶’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향수가 결국 푸틴의 권위주의 체제를 가능하게 했다.
역사는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대 가치를 창조했지만, 공포정치와 전쟁의 피로 속에서 왕정복고를 불러왔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헌법을 가졌지만, 경제 붕괴 앞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를 선택했다. 그 끝은 히틀러였고, 파멸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자유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자유는 권리이지만 동시에 책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이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한다. 그리고 더 강한 권력, 더 단순한 질서에 자신을 맡긴다.
여기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진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에서 뒤처졌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보다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했던 과거’를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은밀한 유혹이다.
새로운 시대는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 다양성과 협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변화를 ‘혼란’으로만 인식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시대를 탓한다. 그렇게 과거에 머무른다. 그리고 결국 낙오한다.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적응력의 문제다. 한여름의 폭염을 견디지 못하는 생명체가 사라지듯, 변화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와 개인은 역사에서 밀려난다.
그럼에도 인류는 늘 전진해 왔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권력을 법 아래 두었고, 미국 독립은 민주주의를 제도화했으며,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끝냈다.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은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직선제 대통령과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이 변화들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헌법, 법치, 시민의 권리, 그리고 참여와 연대의 경험이 과거로의 회귀를 구조적으로 차단했다.
이제 미국은 건국 250주년을 맞는다. 민주주의를 더 발전 시키면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불안에 밀려 과거를 미화하고 AI 시대에 민주주의 효율성을 탓하면서 권위주의 시대로 향할 것인지, 어쩌면 그 기로에 서있다.
폭염 속에서 멈춰 서면 가을은 오지 않는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과정을 견뎌야만 더 넓은 자유와 번영에 도달할 수 있다.
독립 250주년의 미국,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를 위한 효율성이 아니라 역사의 진보를 위한 방향이고, 인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