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로마 제국의 3세기는 오늘날로 치면 국가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던 대혼란의 시대였다. 황제는 연이어 바뀌었고, 국경은 압박받았으며, 물가는 불안정했고, 제국은 안팎에서 동시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등장한 제51대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사력과 행정개혁을 통해 로마를 구해낸 인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국가의 힘이 어디까지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통치자이기도 하다.
그의 개혁은 냉혹했지만 체계적이었다. 넓어진 제국을 혼자 다스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동서로 권력을 분산시켜 각각 정제(正帝 / Augustus)와 부제(副帝 / Caesar)가 나누어 다스리는 사두정치를 도입해 권력을 분산했고, 군제와 조세 행정을 손질해 제국의 숨통을 틔웠다.
이 조치 덕분에 로마는 즉각적인 붕괴를 피했고 200년의 생명을 연장하였고 동로마는 천년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 대응의 성과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로마는 더 강해졌지만, 시민들에게는 더 감시받고 더 묶인 제국이 되었다.
과거 로마 황제는 ‘제1시민(Princeps)’을 자처했지만, 이제 황제는 신성한 존재로 격상되었다. 원로원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축소되었고, 행정과 세금은 더욱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되었다.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된 지방 엘리트들은 도시를 떠나 거대한 농장으로 이동했고, 일부는 사실상 독립적인 영주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점차 토지에 묶였고, 직업 이동의 자유도 제한되었다. 경제 통제를 위해 시행된 최고가격령은 시장의 반발을 불러왔고, 암시장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제국 통합을 명분으로 실시된 기독교 대박해는 수많은 신앙인들의 희생을 낳았다. 제국은 구했지만 로마의 귀족들과 시민들은 자유를 빼앗겼다.
이 대목은 2026년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계 이민자 사회에도 시사점이 크다. 미국 역시 물가, 이민, 치안, 정치 양극화라는 압박 속에서 강한 통제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위기가 깊다고 해서 자유와 포용의 원칙을 쉽게 접어서는 안 된다. 통제는 단기적으로 질서를 만들 수 있지만, 과도한 배제는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사회의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특히 이민 문제는 더 그렇다. 최근 연구와 정책 논의는 이민이 정치적 갈등을 키우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제도적 설계와 지역사회 접촉 방식에 따라 극단화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보여준다.
즉, 문제는 이민 그 자체가 아니라 질서 있는 경로와 공정한 규칙, 그리고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이 강해지려면 배제의 언어보다 규칙의 명확성과 사회적 통합의 기술이 먼저다.
미주 한인에게 이 문제는 특히 현실적이다.
우리는 늘 “안보”와 “기회” 사이, “질서”와 “자유” 사이, “국가의 힘”과 “시민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생각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로마의 교훈은 분명하다. 위기 속에서 국가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강함이 시민의 숨통을 죄는 방식이라면, 제국은 살아남더라도 공동체는 약해진다. 2026년의 미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더 많은 억압이 아니라, 더 정교한 제도와 더 넓은 신뢰의 복원이다. (동찬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