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청, 공소청…출범, 검찰청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검찰청이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 형사사법체계에 따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이 2일 동시 출범했다. 검찰이 주도하던 권력형 부패범죄와 대규모 금융범죄 등 중대범죄를 도맡아 수사하게 된 중수청은 축사와 기념촬영, 현판 제막을 포함한 ‘화려한 행사’를 치렀다. 반면 공소청은 비공개 개청식을 연 뒤 업무에 복귀하며 ‘조용한 출발’을 알렸다.
중수청은 이날 오전 10시 본청이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 르네스퀘어 로비홀에서 개청식을 진행했다. 행사가 열리는 로비홀에는 폭 4~5m 길이의 간이 무대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고, 80여명의 내빈석이 따로 마련됐다.
이날 개청식에는 중수청장 직무대행을 맡은 전종민 중수청 차장과 윤호중 행안부 장관, 오동운 공수처장,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 노경필 법원행정처장, 서영교 국회 법사위원장, 새로 임명된 지방중수청장 6명이 참석했다.
전 차장은 인사말을 통해 “중대범죄 앞에서는 단호하되, 국민의 자유와 권리 앞에서는 한없이 신중한 수사기관이 되겠다”며 “저희를 향한 우려를 흘려듣지 않고 하나하나 답해 나가며 회의적인 시선을 신뢰로 바꿔 놓겠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축사를 통해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더라도 국민을 위한 책임까지 나눠선 안 된다”면서 “중수청뿐만 아니라 경찰청과 공소청을 비롯한 형사사법기관 모두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청식 전후 로비홀은 새로 임용된 중수청 본청·서울청 소속 수사관들과 취재진 등 수 백명이 몰리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련된 좌석이 모두 차자 일부 직원들은 홀 뒷편에 서서 개청식을 지켜봤다.
첫 출근을 한 중수청 수사관들은 대체로 상기된 표정이었다. 로비에 모인 직원들은 휴대폰으로 간이 무대와 스크린을 촬영하거나 익숙한 얼굴을 찾아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한 수사관이 “고민 많이 하더니 어떻게 옮길 결심을 했느냐”고 묻자 다른 수사관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한 수사관은 “플레이어로 직접 뛰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다만 중수청이 초기 혼란을 서둘러 수습할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 직원은 “연말까지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소속 기능 인원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50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지방중수청 곳곳에서는 이날까지 전산과 민원 시스템, 인력과 사무실 정비 등이 완료되지 않아 수기로 민원을 접수하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
앞서 검찰 현판을 떼어낸 공소청은 이날 오전 10시 비공개 출범식을 진행했다. 출범식은 공소청사(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내부 직원들만 참석한 채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정현 공소청장(검찰청장) 직무대행은 개청식 기념사를 통해 “검사로서 오랜 시간 근무해왔기에 오늘도 다른 날과 큰 차이 없이 담담하고 차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오늘부터 공소청의 존재 이유를 국민들께 다시 증명하고 신뢰를 회복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이 직무대행은 비공개 개청식 이후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 공소청으로 잘 안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공소청은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한 공소청 관계자는 “출범식은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15분 남짓 진행됐다”며 “중수청과 달리 장례식장 분위기”라고 전했다. 공소청 정문을 빠져나가는 일부 직원들은 “이제 수사관님들은 어떻게 호칭을 부르느냐”, “그냥 주임으로 부르면 되지 않느냐”는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공소청은 비공개 출범식에 앞서 공소청의 출범과 조직 개편 내용, 법령 정비와 사건 이관 기준 마련 등을 알리는 자료를 배포했다. 공소청은 “기존 훈령·예규·지시·지침 1022개의 전면 정비 작업을 진행했고, 개정 형사소송법에 도입된 구속영장청구 전 면담, 사실관계 확인 제도의 실무 운영 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