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지난 금요일 퇴근 무렵 엔젤씨가 두 팔로 안기 벅찰 만큼 큰 붉은 장미 다발을 들고 왔다.
월요일이 노동절이니 열심히 일하는 시민참여센터 직원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스 출신인 그녀의 남편이 센터 이사를 맡고 있어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친다. 노동절에 장미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미국 노동절은 1882년 뉴욕 유니언스퀘어 행진에서 시작해 1894년 연방 공휴일이 됐다. 그러나 그 탄생은 씁쓸하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에서 수만 명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며칠 뒤 헤이마켓 광장에서 폭탄과 경찰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1894년에는 풀먼(Pullman) 파업이 전국 철도를 멈추자 연방군이 투입돼 노동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파업이 한창이던 그해 6월, 노동계를 달래려 9월 첫 월요일을 공휴일로 서명했다. 헤이마켓의 날인 5월 1일을 피한 것은 급진 노동운동과 거리를 두려는 계산이었다.
노동절은 처음부터 노동자의 승리 라기보다 국가가 노동을 인정하되 길들이려 한 날 이라는 이중성을 안고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본래 뜻은 분명하다. 8시간 노동, 주말, 아동노동 금지, 산업안전. 오늘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은 시장이 준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조직해 얻어낸 것이다. 노동절은 노동의 가치와 연대의 힘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의 노동절은 여름의 공식 마감이자 대규모 세일의 날로 굳어졌다. 최저임금 인상, 유급병가 확대 같은 제도 개선이 꾸준히 이어졌지만, 노조 가입률은 1983년 20.1%에서 2025년 10.0%로 반토막 났고 민간부문은 5.9%에 불과하다. 플랫폼 기업이 정규직 대신 단기 계약직과 프리랜서를 쓰는 긱경제가 확산되면서 보호망 밖의 노동자는 오히려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AI 혁명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세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첫째,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지고 있다. 스탠퍼드 연구진의 급여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22~25세 청년 고용이 2022년 말 이후 약 13% 줄었고, 신규 졸업자 실업률은 2026년 초 5.6%에 이르렀다. 초급 일자리가 사라지면 10년 뒤 숙련 노동자가 길러질 경로 자체가 끊긴다.
둘째, AI 워싱이다. 실제로는 비용 절감이나 과잉 채용 정리가 이유인데도 AI를 명분으로 내세워 감원하는 것이다. 2025년 AI를 이유로 든 감원은 약 5만5천 건으로 전체의 5%였지만, 2026년 3월에는 AI가 감원 사유 1위에 올랐다. 포레스터 리서치는 이런 해고의 절반이 해외나 훨씬 낮은 임금으로 조용히 다시 채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자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의 명분에 밀려나고 있다.
셋째, 노동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산업혁명이 근육을 대체했다면 AI는 판단·언어·분석을 대체한다. 노조 가입률이 1% 안팎인 금융·보험·전문서비스가 가장 먼저 흔들리는데, 이들에게는 1880년대 공장노동자가 가졌던 집단적 협상의 도구가 없다. 1894년의 노동절이 국가가 노동자에게 건넨 타협이었다면, 2026년의 노동자는 AI 시대에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조직할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누가 가져갈지, 재교육 비용을 누가 질지, 알고리즘에 의한 채용과 해고를 누가 감시할지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와 조직된 힘이 결정한다.
한인사회에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뉴욕·뉴저지 한인 2세가 몰린 금융·법률·IT·회계가 정확히 고노출 직종이고, 1세대 자영업은 AI 노출이 낮은 대신 애초에 노동절의 보호망 밖에 있다. 두 세대가 서로 다른 업종이지만 같은 위험 앞에 서 있는 셈이다. 커뮤니티 차원에서 노동권 법률지원과 AI 시대 재교육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132주년 노동절 아침에 해본다. (동찬 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