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여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에 시달리면서 이른 ‘레임덕’ 시작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한 달 넘게 늦어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선 후임 대법관보다 차기 대법원장에 더 이목이 쏠린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여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에 시달리면서 이른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법원 내에선 ‘이미 사법개혁 3법이 통과된 마당에 어떤 대법원장이 오든 구원투수가 되긴 글렀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조 대법원장과 정부·여당과의 대치 국면이 길어지자 법조계에선 차기 대법원장이 누가 될 거냐는 하마평이 벌써부터 돈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로 1년3개월가량 남았다. 조 대법원장은 70세에 정년 퇴임을 해야 해 대법원장 임기 6년을 다 채우지 못한다. 원래도 짧은 3년6개월의 임기는 정부·여당과 갈등을 빚으면서 이른 ‘레임덕’을 맞았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후임 대법관보다 다음 대법원장이 누가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다음 대법원장이 임기 6년을 온전히 지낸다면 대법관 22명을 임명 제청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방선거에서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대법원장과 정치권의 교착 국면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며 “조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으로서 새 정책을 추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이 추진하던 정책도 임기 말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뒤 사법농단 사태를 거치며 축소됐던 대법원장의 인사·행정권을 복원했다. 그는 취임 직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를 폐지하고 법관 인사제도를 새롭게 개편했다.
법원장 추천제는 각급 법원의 법관이 투표를 통해 추천한 후보 2~4명 가운데 1명을 대법원장이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김 전 대법원장 시절 법관 인사의 민주성을 살리고 대법원장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력 있는 법관 대신 ‘인기투표’를 통해 법원장을 선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각급 법원 소속 판사로만 법원장 추천·보임이 가능해 지방법원장 보임이 막힌 고법 부장판사들의 인사 적체 불만이 쌓였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뒤 법원장 추천제를 폐지하고 고법 부장판사가 지방법원장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임기 내 법관 인사를 통해 고법 부장판사들을 지방법원장으로 단계적으로 보임해 인사 적체를 해소해왔지만 이런 인사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법원행정처 규모도 꾸준히 늘려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법원행정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다만 법원 내부에선 대법원장의 레임덕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장이 개별 재판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애초에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법원의 부장판사는 “이번이 좀 이르긴 하지만 차기 대법원장 후보에 관한 얘기는 대법원장 교체기에 늘 나왔다”며 “레임덕이 있다고 보기엔 일선 판사들에게 미치는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애초에 크지 않다”고 말했다.
새 대법원장이 누가 되든 이미 사법개혁 3법 시행을 되돌리기엔 늦었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한 지방 법원의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외부적 영향력이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차피 사법개혁 3법이 시행되는 마당에서 새 대법원장이 사법부 자체를 뭘 얼마나 바꿀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