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인류의 역사는 곧 이동의 기록이다. 부족, 민족, 국가를 넘나든 이주자들은 때로는 주인이 없는 땅을 점령했고, 어떤 집단은 군사력이나 제도의 힘으로 이미 있던 사람들을 몰아내기도 했다.
한편, 수적으로 열세였던 소수의 이주민들이 주류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서 겪는 곤궁과 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된 서사였다. 이방인, 이주민이라는 이름표는 오늘날에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을 뜻한다. 피부색, 언어, 생활방식의 차이는 여전히 벽이 되어버린다.
그래서인지 이민 집단은 자연스럽게 내적으로 강한 결속과 연대 의식을 가진다. 대다수는 시간이 흐르면 결국 동화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소수는 수세대에 걸쳐 자신들만의 문화를 굳건히 지킨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은 예외적 존재다. 역사상 가장 방대하게 흩어진 민족임에도, 오랜 탄압과 유랑 속에서도 언어, 종교, 전통, 공동체 정신을 지켜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대인의 커뮤니티 구축 노하우는 거의 본능적이다. 정착하자마자 회당을 세우고, 이어 커뮤니티센터를 마련한다. 이 커뮤니티센터는 단순한 모임 공간이 아니다. 정체성과 생존, 나아가 집단의 성장 전략까지 아우른다. 미국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JCC)는 19세기 중반부터 만들어져, 처음에는 이민자의 정착, 적응을 위한 영어·문화 교육에 앞장섰다. 이후 미국 내 유대인의 사회경제적 입지가 커지면서, 커뮤니티센터는 정체성과 문화 보존, 지역사회 내 연대와 영향력 확대의 허브로 진화했다. 예산 규모만 해도 많은 곳에서 수천만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의 인적·물적 역량을 꾸준히 집단적으로 결집하는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JCC의 또 다른 특징은 개방성과 공공성이다. 출발점은 유대인이지만, 오늘날 미국 곳곳의 JCC는 타민족, 비유대인에게도 활짝 열려 있다. 스포츠센터, 문화학교, 복지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비유대인과 공유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오랜 편견을 개선하고 다문화 사회 내 긍정적 이미지를 누적시킨다. 여기엔 단순한 배려를 넘어, 소수 민족이 주류 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똑똑한 전략이 담겨 있다.
이와 대비되는 한인 커뮤니티 현실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 내 한인 사회는 보통 한인회나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친목과 권익 보호, 전통행사 개최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아직 많다. 과거 스몰비즈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업종별 협회가 한인 공동체의 에너지원이었다면, 이젠 업종 체계가 무너지고 2세들은 대체로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인회는 점점 동력을 잃고 있다. 시대는 요구를 바꾼다. 이제 한인사회에도 교육, 문화, 복지, 스포츠를 통합해, 한인과 이웃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열린 커뮤니티센터’가 절실하다. 친목단체나 이익 중심 조직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민족 공동체의 구심점을 새롭게 다질 때다. 그래야만 한인도, 그 곁의 타민족도,
함께 성장하고 더 넓은 사회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다. 아울러 한인회(Korean American Association)이라는 이익단체 명칭이 가진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처럼 정부와 여러 재단들의 지원금을 받을 수가 있다.
한인회는 미국의 한인커뮤니티가 있는 곳마다 있다. 그동안 일도 많이 했고 한인 사회의 대표성 역시 가지고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요구에 맞게 자기 발전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민족공동체의 새로운 중심으로 여러 한인단체들과 힘으로 모아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2세들과 지역사회에 문을 활짝 열고, ‘타민족과 함께 사는 삶’ 자체를 우리 공동체의 무기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인회가 지향해야 할 한인커뮤니티센터이고 미주 한인들이 지향해야할 미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동찬 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