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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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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16회

안 동일 지음

사충서원

사실 그랬다. 생각보다 조정에 벼슬이 많지 않았다. 문반 무반 내직외직 합쳐 천을 넘지 않았다. 그간의 당파싸움, 당쟁도 따지고 보면 밥그릇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싸움이 이제는 안동 김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한양의 장동과 이곳 과천 사충의 김문의 손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장김은 순조 헌종에 이어 지금의 임금에 이르기까지 3대의 왕비를 모두 저들 가문에서 차지하면서 나라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가렴주구와 매관매직이 저들의 보도였다.
관직은 돈으로만 사고파는 것이 되어버렸다. 과거제도가 완전히 무너지는 바람에 가난한 유생과 개천의 용이었던 영민한 양민들은 좌절했다. 웃어른을 공경하던 예의범절, 이웃과 서로돕고 나누던 미풍양속도 역시 무너져 내렸다. 사색당쟁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참 오늘 통문계 회합이 있는 날인데 합하께서 한번 납셔 주시면 저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겁니다.”
“그게 오늘이던가요?”
“예 그래요. 오늘은 함흥하고 길주에서도 사람이 온다고 하더군요.”
“함흥이라면 문회를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문회 서원이라면 북관에서는 가장 큰 서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임에 합하 형님이 가실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신 집강이 잘 주재 할 겁니다.”
“맞아요, 아랫사람들한테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
“회합엔 전처럼 병판이 가고 합하 이름으로 촌지나 내리도록 하지요.”
“난 그것도 반대일세, 아랫사람들 그렇게 다루면 안돼요. 습관 돼요 습관,”
“그렇죠, 나중엔 당연하게 여기고 안 주면 섭섭하다고 툴툴댑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참 지난번 김추사 에게 서독을 발행한 일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합하”
누군가가 그 일을 물었다.
“그것이 어찌 도유사님이 하신 일인가? 장유사하고 전총관이 주관한 일일세.”
“제대로 처리도 못하고 망신만 당했다면서요?”
“그게 다 전총관이 예상했던 일이라네.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하지.”
“예상했다니요?”
“아직도 추사를 따르는 자들이 누구인가, 또 추사가 위급해지면 누가 달려오는가 보려 한 것일세.”
“그깟 털 다 빠지고 이빨 없는 노인네 그리 신경 쓸 일 있습니까?”
“그렇긴 한데, 지금 우리한테 위해를 가 할 수 있는 집단은 추사를 따르는 한줌 북학패와 중인 무리 밖에 없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자는 것이기도 했고 어쨌든 잘 마무리 지었네.”
“추사 제자를 자처하는 역관 변광운이 와서 싹싹 빌고 갔어. 큰 권선을 했다지?”
“부자 역관 변가가요? 그 사람 아직도 추사 타령이군요.”
“그렇다니까…”
“돈이 들어왔다니 헛짓 한건 아니겠지만 어차피 중인 돈 아닙니까? 그 추사 노친네, 워낙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지만 왕가의 외씨쯤 되는 이가 왜 그리 중인, 서얼, 천출 중놈들과 체통 없이 어울려 다니는지 도통 마음에 안 듭니다. 심지어는 노복까지 감싸고 돈다지요.”
“누가 아니랍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신분질서야 말로 이 나라 존립의 근간인 것을…아직 고생을 덜해서 그래요.”

같은 시각 사충서원 바로 아래 노들나루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충객관.
봄 가을 향사 때 지방서 올라온 유생들을 위한 객점이다. 음식은 성균관의 진사식당 수준이었지만 숙박이 가능했고 근자에는 술까지 팔고 있었다.
검은 수건으로 아래 얼굴을 가린 장한들이 하나둘씩 안채 큰방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정면에 모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노선비의 영정이 붙어 있었다.
탁자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사발이 큰 한지위에 엎어져 놓여있다.
12등분된 사발의 선 따라 사람들이 앉았고 각자의 위치가 따로 있는지 그 위에 목패들을 올려 놓았다. 12개의 유력 서원들의 이름이 모두 올라와 있었다. 그러면서 지역적 안배가 이루어져 있었다.
과천의 사충, 양주의 석실, 여주의 고산, 충청 괴산의 화양, 황해도 배천 문회, 장산의 봉양, 전라도 장성의 필망. 태인의 무성, 해남의 미산, 경상도 경주의 옥산 평안도 평산의 부영등 전국의 내노라 하는 서원들의 이름이 망라돼 있었다. 하지만 영주의 소수, 안동의 병산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바로 서원 자경단의 통문계 총관들이었다. 얼굴 수건은 관례에 따른 장식인 모양으로 충분히 얼굴이 식별됐다.
“이제 다들 모인 것 같군, 그럼 시작하지.”
가운데 앉아 있는 흑의가 근엄한 목소리로 시작을 선언했다.
“송자 대본원께 인사를 올립시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 정면의 초상을 향해 허리를 두 번 굽혔다.
송자라면 송시열을 이르는 말 아닌가. 이들은 그를 대본원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쪽부터 각 지부의 현황을 보고 하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며 각 지역상황을 얘기했다. 먼저 자신들 자경단의 현황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숫자와 용어가 나왔다. 그리고는 일반 상황이 이어졌는데 거기서부터는 알아들을 만 했다. 삼남의 홍수 북관의 대화재가 거론되는데 사람들의 고단한 삶, 백성들의 고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천재지변의 와중에 백성들의 불온한 동향을 자신들이 어떻게 수집 파악했고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보고였다. 딱한 노릇이다.

서원이 민생파탄, 저항탄압의 복마전으로 변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서원은 부속된 토지에는 조세를 과하지 않았기에 탈세의 근원이 되었고, 소속 노비를 포함해 종사자들에게는 군역을 면제 해 줬기에 양민이 노비가 되어 군역을 기피하는 곳이 되었다.
문중 서원의 경우에는 경쟁적으로 세 과시에 나섰는데 그 패악은 세도정치와 맞물리면서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는 그렇게 먹는데 나라고 못먹을 소냐.’ ‘먹고 보자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다.’ ‘패고 보자 먼저 패는 쪽이 먹게된다.’ 이런 되지 않는 말이 서원 간에는 퍼져 있었고 그 중심에 이들 자경단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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