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연설 통해 확대된 부정선거 주장 꺼냈지만…
뉴욕타임스·CNN 등 다각적 팩트체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2020년 대선에 중국이 개입해 선거를 조작했다”며 한층 확대된 부정선거 주장을 거듭 꺼냈다. 뉴욕타임스와 시엔엔(CNN) 등 미국 주요 언론은 새로 공개된 정보가 그의 부정선거 주장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다는 팩트체크 결과를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이 수백만 미국인의 유권자 정보를 확보했다 △미시간주에서 민주당의 조직적인 유권자 등록 부정이 있었다 △베네수엘라가 미국 선거에 개입해 조작했다 △유권자 명부에 많은 비시민권자가 등재되어 있다 △미국 투표 기계에 치명적인 취약점이 존재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기밀 해제 문서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대중에게 알려진 내용이거나, 전국의 선거 관계자들이 해결하기 위해 관리해 온 취약점을 다루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낙선한 2020년 11월 대선을 포함해, 이번에 공개된 기밀 정보 중 어느 것도 외국 정부의 개입이나 부정 때문에 선거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유권자 명부 접근 주장
백악관은 공개된 문서를 근거로 중국이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2억2천만명의 미국인 유권자 등록 파일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개인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병역 상태, 정당 등록 정보, 투표 이력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대다수 주에서 별다른 논란 없이 유권자 정보의 일부를 공식적으로 판매해 오고 있지만, 백악관은 중국이 이 파일들을 불법 구매나 해킹, 절취 등의 방식으로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미 정보당국은 오래 전부터 중국의 유권자 정보 수집 및 불법 해킹 시도를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 중국 해커들은 2015년 연방정부 서버를 침해해 인사관리처로부터 2천만건 이상의 민감한 기록을 탈취한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10월 작성된 국가정보위원회의 보고서는 중국이 선거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개입하려 한 활동 수준을 “낮은 수준”이자 “탐색적 조처”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2020년 11월 대선 이후 트럼프가 임명한 국가정보국 인사들 역시 중국이 선거 개입을 검토했으나 미·중 관계 악화를 우려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중국이 득표 수를 조작했음을 시사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미 정부 기관의 관련 정보 평가는 중국이 “적어도 2008년 이후 모든 선거 주기 동안 그래왔듯” 유권자 정보와 여론 동향을 수집해 정책에 반영하려는 “장기적인 노력을 지속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오히려 “베이징 당국이 개표나 선거 결과 전송 등 선거 인프라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고 명시했다.
투표 기계 취약점 주장
백악관은 이날 미국 투표 기계(전자 투표 및 개표 시스템)가 최소 5개 외국 세력에 의해 해킹될 수 있다는 정보 보고서를 기밀 해제했다. 미국은 주마다 투표 방식이 다른데, 화면을 터치해 투표하거나 종이 투표지를 기계에 넣어 자동으로 개표하는 방식이 널리 쓰인다.
2020년 1월 작성된 국가정보위원회 보고서는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이 유권자 등록 데이터베이스나 전자 명부 등 선거 데이터에 “접근해 잠재적으로 조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다만 이 보고서는 미국 선거가 주·카운티 단위로 고도로 분권화되어 운영되기 때문에, 침해가 발생하더라도 국지적 수준에 그칠 뿐 “선거 결과를 바꿀 만큼 광범위한 규모의 조작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표 기계 취약성에 대한 음모론은 현재 ‘리버티 보트’로 사명을 바꾼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스’를 줄곧 겨냥해 왔다. 트럼프는 2020년 11월 대선일부터 2021년 1월6일 지지자들의 의회의사당 난입 사건 전날까지, 도미니언과 관련된 음모론을 소셜미디어에 30차례 가까이 게시했다.
당시 트럼프의 변호인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등은 도미니언 기계가 핵심 경합 주에서 트럼프의 표를 빼돌리는 데 사용됐다고 주장하며 소송 4건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이들은 중국과 베네수엘라 정보 요원, 투자자 조지 소로스, 조지아주 선거 관계자 등이 공모해 도미니언 기계를 해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2021년 미시간주 연방판사는 관련 주장을 제기한 변호사들에게 제재를 내리며 해당 소송을 “사법 절차에 대한 역사적이고 심각한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또 도미니언 관련 음모론을 앞장서 전파했던 폭스뉴스는 도미니언 쪽이 제기한 명해훼손 소송으로 2023년 7억8700만달러(약 1조원)라는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미시간에서의 유권자 등록 부정 주장
백악관이 공개한 문서에는 미시간주 서부 국경 도시 머스키건에서 유권자 등록을 진행하던 한 단체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심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전직 직원들이 할당량을 채우고 급여를 받기 위해 유권자 등록 양식에 허위 정보를 기재하도록 권장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사안 역시 이미 대중에 공개된 내용이다. 2020년 10월 머스키건시의 한 관리는 지역 언론을 통해 자체 사무실에서 수백 건의 ‘규정 위반’ 유권자 등록 신청서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신청서들이 실제 투표용지 발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관계자들은 이 조사가 오히려 ‘미국 선거 보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선거 관리 시스템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당국에 알렸고, 허위 유권자 등록 양식으로 가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거나 투표를 제출한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연방수사국은 2025년 9월 “조사 결과, 형사 범죄나 국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공식 조사를 종결했다.

베네수엘라의 미국 선거 개입 주장
백악관은 이번 자료에 베네수엘라가 개표 후 감사나 수작업 재검표로도 발각되지 않는 방식으로 투표를 바꿔치기하는 실험을 투표 기계에서 실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이 주장은 마약 밀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우고 ‘엘 포요’ 카르바할 전 베네수엘라 정보국장이 오랫동안 제기해 온 음모론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트럼프에게 편지를 보내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한 바 있다.
문제의 투표 기계들은 ‘스마트매틱’이라는 회사가 제조한 것이다. 트럼프 진영은 이 회사가 베네수엘라 정권과 연계되어 미국 대선을 조작했다고 근거 없이 비난해 왔다. 스마트매틱 쪽 자료에 따르면, 창립자들이 베네수엘라 출신이고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선거 사업을 진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6월 기밀 해제된 중앙정보국(CIA) 메모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이미 2006년에 베네수엘라와 스마트매틱이 “베네수엘라 외부의 선거 결과를 조작할 능력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베네수엘라 정권이 자국 내에서 선거를 조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부 관계자들이 투표 시스템의 소스코드와 내부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미국 선거 시스템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또 스마트매틱의 소프트웨어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단 한 곳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매틱은 해당 카운티에 제공한 시스템이 단순 기표용일 뿐, 개표나 집계, 표 저장 기능은 수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마트매틱 대변인은 시엔엔에 “이미 여러 차례 반박된 완전한 허위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전했다.
유권자 명부 내 비시민권자 등재 주장
이날 새로 공개된 국토안보부 문서는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네바다주에 약 25만 명의 비시민권자가 유권자로 등록되어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백악관조차 이 분석이 정부 공식 데이터보다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업용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음을 인정했다. 실제 정부의 정밀 시스템을 통해 25개 주에서 6800만 건의 등록 기록을 대조한 결과, 불법 등록된 비시민권자는 총 2만 8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설령 명부에 비시민권자 이름이 일부 등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실제로 투표에 참여했다는 정황은 이번 문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선거 전문가들은 비시민권자가 실제로 투표를 실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당시 자신이 득표수(인기투표)에서 약 200만표 차이로 밀렸던 이유가 미등록 이민자들의 불법 투표 때문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운영하는 부정선거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2년 사이 누적된 10억표 이상의 합법 투표 중 비시민권자의 투표 사례로 확인된 건은 100건 미만이다. 진보 성향의 브레넌 정의센터가 2016년 대선 표 2300만 건 이상을 전수 분석한 결과에서도 의심 사례는 단 30건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