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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기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셀 스틸 박 전의원의 주한 미국 대사 내정 소식에 부쳐

                                                                            마영애 (국제 북한 인권 연맹 총재, (주)마스 코리안소세지 대표)

지난 7일 클로스터 탈북민 추모비 건립 1주년 기념식을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성황리에 끝낸 뒤 기뻐하던 나와 우리 동지들에게 또 한번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소식이다.  다름 아니라  박은주 위원장님이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하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지난 2007년 박은주 (미쉘 스틸 박 의원의 한국이름)의원이 캘리포니아주 조세 형평국 위원장일 때 만나서 교분을 쌓았고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스틸 의원이라는 호칭 보다는 한국 이름의 그 호칭이 익숙하고 친근 하기에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

그는 누구보다도 우리 탈북민의 사정을 잘 아는 여류 정치인이며 한국의 평화적 통일과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신경 쓰는 정치인이다. 더욱이 그의 부모님이 북한 출신 실향민이다.

박 위원장과 나의 인연의 하일라이트는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내가 탈북민과 북한 주민의 실상에 대해 20분간 연설 할 수 있게 했던 일이다. 그날의 기적과도 같았던 전당대회 연설이 나를 탈북민 인권 운동가로 만들었고 또 자신감을 갖게 해 사업 적으로도 성공하게 됐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일은 2007년 2월10일 센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켈리포니아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의 일이다. 그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유력 주자 중 한사람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주도한 캘리포니아 공화당 선출직 공직자 그룹이 모인 대회 였는데 박은주 위원장의 남편인 션 스틸 씨가 직접 차를 몰고와 나를 싣고  그 대회장 까지  데리고 가서 성사된 일 이었다.

그때 나는 한국 정부로 부터 경원 받고 있을 때로 난민 신청을 하고 있었던 신분적으로도 불안했지만 탈북민 선교회를 결성해 활동 하던 시기였다. 그런 나를 박의원이 불러 주었던 것이다. 그날 대회장에는 영 김의원도 있었다. 그분도 그때는 연방 의원이 아니라 어떤 의원의 보좌관 일 때 였다. 그 때 박위원장(스틸 대사님)은 긴장하고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주면서 “영애씨 평소에 나한테 말하던 대로 그냥 차분하게 말하면 돼요” 했다. 나는 그날 탈북 할 수 밖에 없던 북한의 실상을 고발했고, 중국에서의 탈북민 북송을 맹렬히 규탄 했다.

그리고 내 연설은 스틸 위원장의 보좌관인 피터 김(하도 고마와 그이름도 기억 한다)이 통역을 했는데 정말 잘 해준 것 같았다. 내가 말할 때 한국 사람들은 웃지 않았는데 그가 통역 하고 나면 미국사람들이 모두 웃거나 격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줄리아니 시장님의 리엑션 (반응)이 아주 컸다는 기억이다. 연설을 마치고 내려 왔을 때 수고 했다며 안아주던 박위원장과 영김 의원의 따스한 모습을 아직도 기억 한다. 그날 이후 나는 탈북민 인권을 위해 나서기로 작정했고 등록 하고 있었던 신학교 공부에 더욱 매진해 학위를 따기로 했다.

이러니 내가 박위원장(위 사진)을 각별히 생각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이 연방하원의원에 당선 됐을때 누구보다 기뻐 했고 워싱턴으로 찾아가기도 했고 그분이 선거에서 아깝게 졌을 때(6백표차)는 며칠 씩 밥을 먹지 못했다. 그분이 이제 남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하는 주한 미국 대사가 된다고 하니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싶다. 정말 잘된 일이다.

그날 전당대회 연설 이후 나는 각고의 노력을 펼쳐 국제 북한 인권 연맹(International North Korea Human Rights Alliance)를 결성해 총재직을 맡았고 종교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1천8백회 이상의 찬양, 간증 집회를 열고 탈북 인권 선교사로 활동 해 왔다.

동시에 사업가로도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는데 (주)마스 코리안 소세지를 설립하여 “평양순대” 라는 브랜드를 런칭, 미주 약 30여개의 거래처 에 납품하여 탄탄한 강소기업으로 우뚝 서 탈북민 자립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워싱턴 DC 권역인 아난데일에 지점을 설치,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모든 일의 본격적인 출발이 미셀 박 스틸 신임 주한 미 대사 내정자와의 인연에서 비롯 된 일이다. 현재 북한 내 2천5백만 주민 가운데 약 30만~40만 명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에서 신분을 숨긴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입국해 공식적인 신분을 회복하고 정착한 탈북민은 약 3만5천 명 정도다.

인권 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자유를 찾아 탈북을 시도했으나 중국, 몽골,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제3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망했거나 강제 북송 후 처형된 사례는 약 1만 건에 달한다. 지난 7일 건립 1주년을 맞았던 추모비는 바로 이들, 이름 조차 남기지 못한 탈북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한 상징으로 서울서 제작 돼 지난해 4월 7일 뉴욕 항에 입항했고 7월에 천신만고 끝에 건립됐다.

다시 한번 박 내정자 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연방 상원의 인준절차가 별 탈 없이 진행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하고 있다. (4/17)

 이 기고는 4월 17일자 뉴욕 한국일보  발언대 (오피니언) 란에 게재된 글로 필자 마영애 총재의 허락을 받아 몇 글자 수정 후 본보에 재수록한다.  <안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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