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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64)

조선의 마케도니안과 미국 선교 본부–

‘대주교 캐럴과 시계공 출신 고관 보마르세  <1>

안 동일 작

  그날 존 캐럴 신부는 여관의 잉크와 펜을 빌려 피에르 보마르세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이후 보마르세는 확실하게 미국편에 서서 당시 정황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도박을 결행 하게 되고 이 도박은 세계 역사를 바꾼 기폭제가 된다. 

 아 도박이 바로 76년 가을 부터 77년 봄 까지 진행된 미국에 대한 다량의 탄약과 머스킷 장총 해상 공수 작전이었다. 이 방대한 공수 작전의 단초를 존 캐롤의 편지가 열었던 것이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사일러스 딘이 프랑스 무기 반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루이 16세의 재정 대리인 격인 피에르 보마르세 (아래 사진) 를 처음 만난 때는 76년 7월 초로 되어있다. 3월에 파리에 도착한 딘이 7월에서야 보마르세를 만났다는 것은 의아한 대목인데 이 과정에 존 캐럴 신부의 편지가 있었던 것이다. 

 보마르세는 75년 부터 신임왕 루이 16세와 정권 실세 들의 묵인과 비호 아래 소량 이었지만 무기류를 영국의 눈을 피한 밀거래로 스페인령 카리브 연안을 통해 식민지에 반출하고 있었다. 

 때문에 딘은 처음부터 보마르세와의 접촉을 염두하고 파리에 갔었지만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도착 며칠만에 보마르세에게 접근 할수 있는 루트가 마땅치 않다고 보고를 했고 보마르세와 각별한 사이였던  캐럴 신부가 보고의 현장에 우연히 가세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말하지만 신의 안배 였다고 밖에 설명 할 길이 없다. 

 아무튼 7월에 처음 만나 의기가 투합해 전폭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  보마르세와 딘은 이내 머스킷 총 2만 7천 정, 대포 200문, 화약 2만 파운드 에 달하는 방대한 물량의 무기를 수배해 선적 준비를 마쳤고 이 무기들은 차근차근 미 대륙으로 유입됐다. 당초 프랑스 국왕은 보마르세에게 100만 리브르 정도의 예산을 허락 했지만 보마르세와 딘은 무기 공수에 3백만 리브르를 사용했다.  

 이 무기들을 바탕으로 대륙군은 1777년 10월의 뉴욕 사라토가 전투에서 개전이래 최초로 영국 정규군 대 부대에 대해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이 이끄는 대륙군이 퀘백에서 내려온 버고 장군의 연대 규모 영국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사라토가의 대승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예지몽 대목에서도 언급 했듯이 사라토가  전투야 말로 독립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전쟁의 향방을 바꿨으며, 망설이고 있었던 프랑스를 참전하게 해 독립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는 토대가 됐다. 이 승리 직후  프랑스와 미국은 동맹을 맺었고 스페인은 동맹까지 맺지는 않았지만  함께 대영 선전포고를 해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승리의 수훈갑  프랑스제 무기들이 다량으로 본격적으로 대륙으로 들어 오게 했던 결정적 단초가 그 한장의 편지였던 것이다.

 존 케럴 신부는 그날 ‘몽쉘 피에르” (친애하는 벗 피에르)로 시작하는 불어로 쓰여진 편지를 쓰기전  페리 터반 뒷마당에 나가 절절한 기도를 올렸다. 기도라기 보다는 예수회 영신수련을 짧지만 굵게  했다는 표현이 맞는다.  실제 예수회 사제들은 기도(Prayer) 라는 말보다 수련(Exercises)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존 캐럴이  18세 때인 1750년 파리에서 수도자로 예수회에 가입한 이래 몸에 밴 이나시오 영성 기도, 예수회식 관상기도 였다.  예수회에는 독특하고 구체적인 관상 기도법이 있었다. 바로 ‘영신수련’ 혹은 그 안에서 행해지는 ‘관상’이다.

 영신수련 (Spirituall Exercises)은  예수회의 창설자인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정립한 기도 체계다. 보통 예수회 사제 들이 침묵 속에서 며칠간, 혹은 한 달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기도를 말할 때 “영신수련을 한다”고 표현한다. 

 예수회 관상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상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눈을 감고 비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 장면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를 이냐시오식 관상 (Ignatian Contemplation)이라고 하는데 성경의 한 장면을 눈앞에 그리듯 상상한다. 예수님이 계신 곳의 공기, 냄새,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끼며 그 현장 속에 자신이 함께 있다고 가정하고 기도한다. 

 페리 터번의 뒷마당, 델라웨어 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녹음이 막 지기 시작한 수목의 내음을 맡으며 예수회 사제로서 존 캐럴은 ‘영신수련’의 원리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관상했다. 

사실 사제로서 이런 종류의 편지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실 정치 싱황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아닌가. 그리고 무엇 보다 보마르세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그 재기 넘치는 예술가 친구를 피비린내 나는 지금 전쟁의 보급관으로 만들려 하는가? 이것이 사제의 일인가, 아니면 정치인의 일인가?” 하는 자책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벤자민과 모리스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님, 저 재기 넘치는 극작가이자 여자 처럼 곱상하게 생긴 나의 친구 보마르세를 이 거대한 불길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그가 파멸한다면 그 죄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나 이 서신이 억압받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자유의 복음이 될 수 있다면, 저의 미안함과 그의 위험마저 당신의 영광을 위해 도구로 쓰소서.”

 “주님, 이 잉크로 한 인간의 희생을 담보로 한 자유를 써 내려가려 합니다. 만약 이 서신이 뜻 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다면 그것은 나의 오만일 것이나, 만약 성공하여 새 나라가 선다면 그것은 당신의 섭리입니까?”

 캐럴은 사실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듯 한  이 일이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보마르세 개인의 희생을 넘어, 더 큰 인류의 보편적 선을 위한 길임을 맏으면서 펜을 들기로 작정 했기에 이날의 관상 기도는 이를 천주께 아뢰고 힘을 얻기 위한 기도, 수련 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 속으로 파견된’ 예수회 사제의 숙명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초 캐럴 신부는  마르코 복음 4장 30 절 겨자씨의 비유 대목과 이나 시편 107편 23절 바다를 건너는 자들의 기도 대목을 이날 수련의 본문으로 삼으려 했다. 

 성서를 펼쳐 그 대목들을 읽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기랴… 그것은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 작다. 그러나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캐럴은 지금 자신이 쓰려는 편지 한 통이 작은 ‘겨자씨’라고 생각했다.  이 종이 한 장이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 항구에 닿고, 거기서 대포와 화약이라는 ‘큰 가지’가 되어 너무도 어려운 형편의 대륙군들을 덮어주는 모포와 방패가 되는 미래를 시각화 하려 했다. 잉크 냄새 속에서 화약 냄새를 미리 맡는 묵상이었다. 

 시편 107편 이렇게 시작된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서 넓은 바다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시어 폭풍을 일으키시니… 그들이 고요해진 바다를 보고 기뻐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원하는 항구로 이끄셨도다.”

 대서양 횡단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캐럴은 바다를 오가는 전령의 손에 들려 보낼 이 편지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거친 파도의 차가운 물살과 배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청각적으로 묵상하려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인 친구 보마르셰가  ‘하느님이 예비하신 항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캐럴은 눈을 감았다. 겨자씨가 바람에 날려 갈릴리 벌판으로 뿌려지는 모습을 상상 하려는데 겨자씨가 날아간 곳은 영롱한  십자고상이 있는 작은 기도실이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어둡고 무거운 목재 향과 촛불 냄새가 밴, 공간이었다.  정면에는 고난 속에서도 평화로운 표정을 지은 상아색 예수 고상이 걸려 있다. 수백 년 동안 닦아온 오크나무 의자의 매끄러운 기름 냄새, 그리고 아침 미사 때 태우고 남은 유향(Frankincense)의 은은한 잔향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이 냄새야 말로 존 캐럴에게는 ‘영혼의 안식처’ 냄새였다.

 두 소년이 기도실의 앞 쪽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종이를 펴놓고 머리를 흔들며 무언가를 외우고 있었다.  아모, 아마스, 아마트  Amo, Amas, Amat… 바로 루이 르 그랑 콜레쥬 본관 2층 구석  소 채플룸에서  존 캐럴 자신과 피에르 보마르세가 라틴어 격변화를 외우지 못해 교사 신부로 부터 골방에서 외울 때 까지 나오지 말라는 벌칙을 받고 이를 시행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30년 전의 광경 아닌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광경이다. 문득 캐럴 신부는 보마르세 에게도 지금 이순간 주님의 훈향이 임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두 사람은 자주 라틴어 선생한테 공부 못한다고 혼나면서 벌을 서야 했는데 예수고상이 있는 체플룸에만 들어 가면 그토록 평온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서로에게 몇번이고 다짐하듯 확인한 일이다. 

그 평온함이 계속되던 어느날 존은 피에르에게 자신의 결심을 고백한다. 

“피에르, 나는 결심했어, 예수회에 입회해서 수도자의 길을 걸으려 해”

“그렇구나 존, 나도 문득문득 수도자가 되고 싶은데 난 세상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아.  너의 용기가 너무 부럽다 “

 보마르세도 예수회 신앙에 경도 돼 있었다. 그만큼 예수회 라틴어 학교의 가르침은 수승했다. 

 루이 르 그랑은 당시 파리에서 가장 명성 높은 예수회 교육기관으로, 학교 건물 안에 독립된 대성당(Grand Chapel)이 있었다. 하지만 소년들이 벌을 서거나 일상적으로 들어가 평온함을 느꼈던 곳은 대성당보다는  더 은밀하고 집중된 기도가 가능한’학생 전용 소경당(Small Chapel/Oratory)이었다. 

 소 채플룸은 창이 높고 좁아, 오후가 되면 빛이 한 줄기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와 고상의 어깨에 머문다. 낙제점 때문에 혼나고 기가 죽은 두 소년에게 그 빛은 마치 ‘괜찮다’고 말하는 하느님의 손길처럼 보였다.  라틴어 격변화에 서툴러 무릎을 꿇은 두 소년 위로, 낡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먼지 섞인 빛, 그 빛 속에서 존은 장차 자신이 가야 할 좁은 길을 보았고, 보마르세는 그 빛이 빚어내는 극적인 음영 속에서 생의 가장 순수한 막(Scene)을 목격했다.

 소년 존 캐럴. 그는 그곳에서 ‘순명(Obedience)’의 원형을 보았던 것이다. 질서 정연한 채플실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안정감을 느꼈던 것이다.

 세속적 욕망과 예술적 기질이 넘치던 소년 보마르세에게 이 공간은 역설적으로 ‘탈출구’였다. 세상의 복잡한 규칙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과 절대자만이 마주하는 그 순간의 순수함에 경도되었던 것.

. “나도 수도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고백은, 그 정적이 주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예술가적 선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파리 시내의 마차 소리와 복도의 발걸음 소리가 두꺼운 석조 벽에 가로막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오직 두 소년의 고른 숨소리와 낡은 기도서의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그 ‘절대적 침묵’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위안이 되었었다. 

 그 깊은 침묵 속에서 존은 자신의 목소리 마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듯한 고독 속에서,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주 세밀한 음성을 들었다. 처음에는 뜻 모를 음성이었지만 마음이 평온해 지는 음성이었고 나중에는 고요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음성이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성을 듣지 않고는 1초도 더 살아갈 수 없는 갈급함에 가까워 졌고 존은 분연히 수도자 순명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1752년 존 캐롤이 예수회에 정식 가입할 때 4촌인 찰스와 함께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해 줬던 친구가 보마르세 였다. 

 추억의 르그랑 소 채플룸에서 시작된 관상은 캐럴의 처음 의도 대로 황의 겨자씨와 바다의 폭풍으로이어졌고 종국에는 십가 소상의 찡그리고 있었지만 온화한 예수의 얼굴로 끝을 맺었다. 

그러면서 존 캐롤은 편지의 작성이 주님의 음성이라고 식별 했고 차분하게 그날 관상의 내용을 써 내려 갔다.  존 캐럴은 이날 문제의 편지를 쓰기 전에  영신수련에서 강조 되는 ‘영적 식별’의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내친김에 예수회의 영성에 대해 좀더 알아 보가로 한다.  예수회 영성, 좁혀 말하면 영신 수련이야 말로 이 글을 관통하는 수승한 종교 철학이고 기도법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천주교, 한국의 천주교 공히 예수회에 의해 전파 됐고 탄압을 겪었으며 융성을 이루기도 했다는 사실은 누차 강조한 바 있다.   한국 예수회 안내 팜프릿을 상당부분 참조 했다는 것을 밝혀 둔다. 

 예수회 영성은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른 전통적인 기도와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독특한 차별점을 갖는다. 

‘가장 큰 특징은 언급 했듯이 머릿속으로 성서의 장면을 생생하며 그리는 상상 기도다. ‘이냐시오식 관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단순히 성서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오감을 동원해 성서 속 현장의 소리, 냄새, 풍경을 느끼며 자신을 그 장면 속 인물로 투영한다. 

 인간의 인지 능력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하는 실재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기도다.

 

 다음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한다’는 활동 중의 관상이다.  예수회 영성은 기도를 성당이나 특정 시간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관계, 일,  심지어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이 일하고 계심을 찾아내는 활동 중의 관상(Contemplation in Action)을 강조한다.  세상을 떠나 고요함을 찾는 ‘수도원적 영성’과 달리, 복잡한 일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현장 중심적 영성’을 지향한다.

 그 다음으로 중시 되는 것이  영적 식별을 위한 ‘의식의 성찰’ (Examen)이다. 예수 회원들이 하루에 두 번 반드시 실천하는 성찰 기도(Examen)는 매우 체계적이다.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반성을 넘어, 하루 동안 내 마음에서 일어난 ‘영적 움직임'(위로와 메마름)을 살피며 하느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지 분별한다.  

 막연한 은혜를 구하기보다,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식별(Discernment)의 도구로서 기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냐시오 영성에서 ‘영적 식별’은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과 흐름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인지(선한 영)’ 아니면 ‘나를 가로막는 것인지(악한 영)’를 분별해내는 과정을 말한다.

 냉철하고 이지적인 예수회 철학 (신앙)에서 가장 인간적이 대목이다. 존 캐럴도 여기에 매료 됐다. 착한 영, 악한 영, 로욜라도 하비에르도 이것이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착한 영 나쁜 영의 식별의 유효함은 다음과 같이 설명 된다.  첫번째로 그 과정을 통해 기도자는  영적 위로 (Spiritual Consolation)를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때의 위로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다. 하느님께 향하는 움직임 속애 마음이 하느님을 향해 열리고 사랑과 희망이 커지는 상태를 말한단다.  

 예를 들면 사제들은 어려운 사도직 이며 가난한 지역 봉사를 고민할 때, 객관적으로는 힘들고 걱정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평화와 용기가 솟아난다고 말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보다 “주님이 함께하시니 가보고 싶다”라는 깊은 확신과 자유로움이 생긴단다.  에너지가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반대로  영적 고뇌와 황폐의 순건을 겪기도 하는데 (Spiritual Desolation) 하느님과 멀어지는 움직임 이 있게 되면서 마음이 어둡고, 소란스러우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상태다. 이때가 나쁜영이 도래한 때다. 

  기도를 시작하려고 할 때 갑자기 지루함, 불안, 짜증이 밀려온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냥   편하게 살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좁아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서 과거의 좋은 결심들이 의심스럽게 느껴지고, 무기력함이나 불안한 조급함에 시달리게 된다.  정말 나쁘다. 

 진정한 위로의 예는 규율이 엄하고 노동의 강도가 센  입회를 생각하면 떨리기도 하지만, 그 삶을 상상할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가진 것을 놓아도 괜찮겠다”라는 자유로운 마음이 든다면 이는 선한 영의 이끎일 가능성이 크다.

 거짓 위로가짜 기쁨의 예로는 “내가 수도자가 되면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겠지?”라는 생각에 흥분되고 우쭐한 기분이 다. 이는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뿌리가 ‘자기애’에 있어 금방 피로해지고 공허해지는 ‘악한 영’의 유혹일 수 있다.

 “너 같은 죄인이 무슨 수도자야? 넌 끝까지 못 버틸걸?” 같은 비난과 절망적인 생각이 둔다면 이는 황폐함의 예에 해당한다.  이런 생각은 나를 성장시키기보다 주저앉게 만들므로 분별해서 물리쳐야 다.

 성 이냐시오(로욜라)는 마음이 어두울 때(황폐기)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바꾸지 말라고 가르다. 어둠 속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 대신 마음이 평온할 때( 위로기) 내렸던 결심을 꿋꿋이 지키며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내 마음의 ‘날씨’를 살피는 법을 익히면, 일상의 사소한 선택부터 인생의 중대한 결정까지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찾아낼 수 있다.

영신 수련의  다음은 사도적 열망 ‘마지스’ (Magis)다.  예수회 기도는 언제나 하느님의 더 큰 영광(AMDG)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기도의 결과가 개인의 평안에 머물지 않고, 타인을 위한 봉사와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사도적 투신’으로 연결되도록 돕는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 (AMDG – Ad Maiorem Dei Gloriam) 예수회의 모토인 이 원칙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것이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이 되는가?”를 묻는다. 

 캐럴은 ‘미국의 독립’이라는 대의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종교적 자유라는 더 큰 선을 향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친구를 위험(보마르세의 파산이나 정치적 위협)으로 밀어넣는 것이 과연 ‘영광’에 부합하는지 치열하게 자문했다.

영신수련의 끝은 무관심(Indifference, 번역이 조금 어색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함 정도로 이해 하면 좋다)의 덕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무관심’은 무책임이 아니라,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을 배제하고 오직 하느님의 뜻에만 자신을 열어두는 상태를 말했다. 캐럴의 경우에도  보마르세를 향한 미안함이라는 ‘인간적인 정’과 사명이라는 ‘공적인 의무’ 사이에서 자신을 비워내기로 했던 것이다. 

 그랬다. 기도를 마친 캐럴은 예수회  ‘무관심의 덕’ 상태에 도달해,  ‘대의’를 위한 펜을 들었다.

“나의 벗, 피에르(보마르세).

지금 자네의 손에 들린 이 종이는 델라웨어 강의 차가운 습기를 머금고 있네. 하지만 이 안에는 불보다 뜨거운 수만 명의 갈망이 담겨 있네.

자네는 일찍이 무대 위에서 세상을 조롱하고 정의를 노래했지. 이제 그 무대를 대서양 너머 이 광활한 대륙으로 옮겨보지 않겠나? 로버트 모리스와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네의 그 천재적인 재주가 필요하네. 아니, 재주를 넘어 자네의 ‘영혼’이 필요하네.

중략

자네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역사가 기록할 가장 거대한 서사시가 될 걸세. 비록 그 길이 가시밭길이고, 자네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도박일지라도 말일세. 사제인 내가 자네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을 용서하게. 그러나 나는 믿네. 자네의 심장이 왕의 금고보다 더 큰 자유를 향해 뛰고 있다는 것을.

친구여, 자네의 배에 실릴 것은 화약과 총만이 아니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정의이자, 죽어가는 이 땅의 희망일세. 자네가 이 부탁을 수락하는 순간, 우리는 지상의 친구를 넘어 영원한 대의의 동지가 될 것이네.

전령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네. 나의 기도가 자네의 결단과 함께하기를.”

이 편지의 압권은 “친구를 넘어, 부디 섭리의 도구가 되어주게.” (프랑스어: “Plus qu’un ami, soyez l’instrument de la Providence.”)였다.     “자네의 재주를 넘어 자네의 영혼이 필요하네”라는 대목 뒤에 붙은 이 문장은 보마르세를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신의 계획’ 안에 있는 인물로 격상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캐럴은 편지 끝머리에 예수회 모토이자 루이 르 그랑의 교훈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라는 믄구를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크게 썼다.  “Pour la plus grande gloire de Dieu.” 

분명코  보마르세의 심장을 요동치게 뛰게 할 것이라 확신 하면서… 

어린시절 둘은 얼마나 이 말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뿌르 라 플뤼 그랑드 글로아르 드 디외” 무슨 일만 있으면 손을 마주치며 구호처럼 외쳤었다. 프랑스어 운율이 너무도 촣았다. 공식어인  라틴어 Ad Maiorem Dei Gloriam 보다 훨씬 좋았다. 

. 존 캐럴이 보마르세를 만난 것은 10대 중후반 파리의 라틴어 학교 에서 였다.  라틴어 학교(Latin School)’라는 명칭은 현대의 단일한 학교 이름이라기보다는 당시 중등 교육 기관인 콜레주(Collège)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1750년대 당시 프랑스의 중등 교육은 주로 가톨릭 수도회(특히 예수회)가 운영하는 콜레주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을 ‘라틴어 학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교육 과정의 핵심이 라틴어였기 때문다.

단순히 라틴어 회화만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당시의 교육은 자유학과(Liberal Arts)에 기반을 둔 인문학 중심이었다. 고전 언어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완벽하게 습득하여 키케로, 버지릴우스 같은 고대 작가들의 문학을 읽고 분석다.

 수사학(Rhetoric)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보마르세의 화려한 대사와 존 캐럴의 설교 능력은 여기서 기초가 닦였다고 볼 수 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철학 및 신학을 배우는데 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을 다뤘다. 특히 예수회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연극 공연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는 보마르세 같은 극작가에게는 최고의 실습장이었다.

 말한대로 보마르세와 존 캐럴이 만난  곳은 라틴 스쿨의 정점에 있었던 파리의 루이 르 그랑 콜레주(Collège Louis-le-Grand)였다. 찰스 캐럴이 다녔던 그 학교다. 

 존 캐럴은  1748년 14살때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북부 지방인 생토메르(St. Omer)에서 공부한 뒤, 파리의 루이 르 그랑 으로 진학 했다. 거기서 만난  보마르세는 시계공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상류 사회로 진출하기를 원했다. 그가 귀족 자제들과 어울리고 ‘피가로의 결혼’ 같은 지적인 희곡을 쓸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 콜레주에서의 고전 교육이 있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성공하려면 ‘라틴어를 구사하는 교양’은 필수였다. 그가 나중에 궁정에서 활약하고 외교관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교육 덕분이었다.

  당시 라틴어 학교생활의 특징는 엄격한 규율이었다.  수업은 새벽부터 시작되었고, 학교 내에서는 오직 라틴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규칙이 있는 곳도 많았다.  귀족 자제들과 재능 있는 중산층 아이들이 섞여 공부했다. 보마르세 같은 인물에게는 인맥을 쌓는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종과 피에르 두 사람은 17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  계급의 용광로 루이 르 그랑 명문 콜레주에서 학교 복도와 교실을 그리고 기도실과  기숙사를 공유했다. 

보마르세에게 그 시절은 “희곡 작가로서의 언어적 감각을 키운 시절이었고, 존 캐럴에게는 가톨릭 지도자로서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해준 시절 었다.  찰스 캐럴은  2-3년 후배 였다. 

  아무리 계급의 용광로 라 해도 저 외국 변방인  영국의 식민지에서 온 불어도 잘 못하는 존과 하층민 출신 보마르세는 가 동변상련의 우정을 쌓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자들의 연대’ 였다. ‘이방인’들의 유대감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존 캐럴은  프랑스어가 서툴렀고, 보마르세는 시계공의 아들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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