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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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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2)

 안 동일 작

서(序), 들어가는 장

책은 궁둥이가 쓰는 법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사람마다 자기 얘기를 쓰면 책이 몇 권이 된다고들 하지만 정작 책을 내는 이는 드물다. 지긋하게 앉아 피를 말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야 책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런 재주와 끈기를 나에게 주신 신께 감사해 왔다. 그때의 신은 꼭 그리스도가 아니기는 했다.

미국에 재 이민 오게 된 것도 9순을 바로 앞두고 계셨던 부모님들 구완도 구완이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라는 핑게가 먼저였다. 내가 쓰려 했던 글이 6.25에 관한 것이었다. 생각해 뒀던 주제이자 제목이 ‘한국전 종전에 있어서의 미국의 책임과 역할’ 이다. 꽤나 시사적이면서도 굵직한 주제다.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아무도 제대로 된 탐구와 종합적인 평가를 못 내렸다고 얘기되는 6.25 한국전쟁, 그 한국전쟁을 주요 당사국의 하나인 미국에서 그들의 입장까지 담아 다각도로 조망해 보고 종국의 목표일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평화에 있어서의 미국의 역할과 한국의 바람직한 자세에 관한 현실적이며 설득력 있는 글을 만들어 한 미 양국에 보란듯이 메시지로 전하고 싶었다.

당초엔 대학이나 연구소에 적을 두면서 가능한 쉬운 논문 형식의 저술로 만들고 싶어 이름있는 학교며 연구소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됐었는데 나오기로 했던 돈이 나오지 않게 되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나는 방향을 소설로 틀었다. 소설이야 말로 어려운 부분에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되기에 전거를 일일히 찾아내야 하는 논문보다는 작업이 용이 했기에 실은 자주 그래왔다. 북한 취재기를 쓰다 ‘해빙’이란 소설을 썼고 동북공정을 반박하다 ‘장수왕의 나라’를 썼고, 일제의 만행을 밝히다가 ‘북관 대첩비’를, 안중근 의사의 사라진 유해를 밝혀내려다 ‘고독한 장군’을 썼으며 고질병 갑질을 규탄하려다 추사와 ‘조선여인 금원’을 썼다. 라루 선장은 내 한국전쟁 소설에 등장할 주요 인물의 한 사람이었기에 어느 정도 자료조사는 돼 있는 편이었다.

서설이 길어지는데 이 이야기 까지는 해야만 한다.
6.25와 미국을 주제로 한 소설에 더해 천주교 얘기를 쓰게 된 것은 어머니의 코비드 19 발병과 아내의 두 번에 걸친 수술, 그리고 나의 지병인 혈압과 혈당 때문이었다. 상투적인 스토리일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그런 큰 일이 있을 때 마다 크고 작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그때 마다, 특히 코비드 펜데믹 초기 어머니 발병 때 우리 아파트 뒷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이번에 어머니를 살려만 주신다면 천주를 주제로 멋진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듯 꽤나 건방진 약속을 했던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 나름 대로는 절절했고 진실 됐던 간구였다. 그 당시 코비드 19으로 노인이 병원에서 돌아 가신다면 장례도 못 치루는, 장지도 찾을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때 내 기도가 주효 했는지 어머니는 코비드를 이겨 내시고 이태쯤 더 사시다가 노환으로 지지난해 별세 하셨다.

그런데도 그 약속은 지켜 지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심각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아내의 두 번에 걸친 복부 수술은 결정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게 끔 했다. 거기다 내 경우에는 갑자기 혈당이 널을 뛰면서 저혈당 증세가 심각해지는 것이 아닌가. 성모상 앞을 지날 때 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이 이런 벌을 주시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아내는 본명, 세례명을 베로니카로 하는 천주교 신자지만 나는 아직 가톨릭 신자를 자처하지 않는다. 성모상 앞에서 살려달라고 몇번 절절한 기도를 올리기는 했지만 속내는 그렇다. 지금은 아내를 따라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하고 있고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반에 나가고 있기는 하다.
사실 그동안 나는 종교로 따지면 불교를 신봉 했었다. 지금도 불교의 가르침과 그 철학은 수승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에 반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수승한 것 중의 하나 (One of best)가 아닌 오직 하나 (The only way)라는 것에는 찬동하지 않았다.
아내가 미국에 오면서 여차해서 성당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매우 건전하고 건실하게 변모하는 그녀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았었는데 그녀의 수술은 결정적으로 나를 천주교에 한발 더 다가서게 했고 천주교에 관한 글을 쓰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글을 쓰기위한 자료조사를 핑계로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봤는데 그토록 컨디션이 나쁠 때도 천주교와 개신교 그러니까 기독교 관련 영상과 오디오물을 보고 들을 때면 두통도 덜했고 조금만 시장하면 순식간에 찾아오던 저혈당 증세도 없었다. 특히 조선 천주교 창시 성조들의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들이 절절하게 다가왔고 모든 시름, 아픔을 잊게 했다. 그중 한 공영 방송이 제작한 광암 이벽 선생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 형식의 영상물 한 장면은 나를 그야말로 얼어붙게 만들면서 뜨끈한 심상의 환희를 다시금 맛보게 했다.
광암 선생이 경기도 광주 퇴촌 천진암에서 강학 모임을 하고 있던 동료들을 찾아 한 밤중에 눈길을 헤치고 산을 돌아 강학 장소에 도착해서 문을 벌컥 열고는 “스승님, 도반님들, 제가 오늘 진정한 하늘을 만났습니다.” 하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학창 시절 스터디그룹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아련한 향수를 동반하는 어떤 감정에 가슴이 찌르르해졌고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져야 했다.
2백년의 차이를 둔 70년대 후반이다. 하나는 1700년대, 하나는 1900년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가슴에서 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전신을 돌고 정수리에서 멈춰 서서는 훈훈한 열기를 내뿜는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날 광암에게는 기독교, 천주교 식으로 말하면 성령이 찾아왔던 게다. 그래서 그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환희와 기쁨을 동학들에게 전하기 위해 밤길을 달렸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의 감격과 그 연원을 글로 표현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시작된 성조들, 신앙 선조들에 대한 탐구였다. 그간 내가 품었던 기독교 사상에 대한 의문에 더해 다른 이들의 이런저런 경험담을 담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일단 글의 서두는 시작해 뒀다. 천진암 요사채의 문이 이벽에 의해 벌컥 열리는 광경이었다. 곧 벽에 부딪히는 했지만… 나는 그날 이벽 선생에게 찾아온 성령이 그저 막연한 뜨끈한 감정이 아니라 그동안 스승과 동료 도반들과 고민하고 고심했던 조선의 개혁과 관련한 모습과 방법까지 담은 뜨거운 희소식이기도 했던 것으로 여기고 싶었다. 다분히 아전인수다. 그러니 벽에 부딪힐 밖에…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쳤고 자료 탐구에 골몰했다.

그랬더니 이벽 선생 보다 권일신 선생이 더 가깝게 다가 왔다. 이벽 선생은 본격적으로 천주교 전교와 공동체 결성이 이루어진 1년여 만에 이른바 ‘을사 추조 적발사건’이 일어나면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죽음이다. 아무튼 광암 선생이 떠나고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선생마저 가족의 강요로 배교문을 짓고 냉담자로 돌아섰던 그 시절, 와해되다 시피 했던 초기 천주교 공동체를 다시 조직해 묶어 세운 이가 바로 권일신 선생이었다. 권선생이야 말로 덕망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
그리고 5대 성조 가운데 관에 의해 희생된 첫 번째 인물이 권일신 선생이다. 선생은 저 유명한 진산사건, 전라도의 한 양반 천주교 신자가 어머니의 제사를 유교 격식대로 치루지 않고 그 위패를 태웠던 그 사건 말이다. 그 사건의 여파로 권선생은 그예 희생되고 만다. 그해가 1791년 신해년 이었기에 천주교에서는 신해 박해라고도 부른다. 그 무렵 권선생은 가성직제도라 해서 정식 사제가 없었던 상황에서 자신이 주동적으로 나서 임의로 사제단을 구성 했었는데 이승훈 정약용 유항검 최창현 등 10명 가까운 인물들이 신부로 나섰고 권선생이 그 주장인 주교를 맡았었다.

이른바 수괴였기에 탄압의 칼날을 온몸으로 맞아 끝내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권선생이 더 생존 했더라면 그후의 조선 천주교 역사가 사뭇 달라지지 않았을 까 싶다. 한마디로 말하면 권선생은 개인의 영성 보다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 힘든 이 들과 함께하는 사랑의 천주교를 실천하려 했던 인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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