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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서 바람 소리 듣다 노벨상 소식···파킨슨병도 꺾지 못한 글쓰기

노벨 문학상.  캐나다의 문학가  고전학자  앤 카슨

“장르, 형식 넘나드는 유희적 작품”

‘빨강의 자서전’ 등  한국 내 여러권 번역돼

올해 노벨 문학상은 캐나다의 문학가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76)에게 돌아갔다. 캐나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은 1976년 솔 벨로, 2013년 앨리스 먼로 이후 세 번째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장인 안데르스 올손은 8일(현지시간) “카슨의 거의 모든 문학적 작업은 언어에 대한 문헌학자의 집착과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시인의 열망이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같은 작업 방식이 “고전시와 현대시뿐 아니라 서로 다른 장르와 예술 형식 사이를 넘나드는 유희적이고 반어적인 작품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카슨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 관한 연구를 현대시, 산문 등과 결합한 실험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림원의 잉그리드 칼베리 상임 사무총장은 수상 소식을 알리기 위해 카슨에게 연락했을 당시 그가 아이슬란드에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다”며 “카슨은 수상 소식에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지난해 헝가리 출신 남성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수상하며, 올해는 비유럽 여성 작가가 수상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앤 카슨은 중국의 찬쉐와 함께 줄곧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다.

카슨은 1950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태어난 그는스스로를 ‘생업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친다’고 소개한다.

고등학교 시절 라틴어 교사에게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며 그리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고전학으로 학사(1974)·석사(1975)·박사(1981)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맥길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연구 및 후학 양성을 이어가며 창작 활동에 나섰다.
1986년 첫 작품 <에로스, 달콤씁쓸한>을 출간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여성 최초로 T. S. 엘리엇 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2014년 그리핀 시문학상, 2020년 아스투리아스 여공상을 받았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글쓰기, 신화와 현대적 사건을 결합한 자유로운 글쓰기로 유명하다. 앤 카슨의 책 4권을 한국내에 번역 출간한 난다 출판사 대표 김민정 시인은 “여성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고전부터 현대까지 넘나듦이 큰 작품을 쓰는 작가”라며 “그의 작품에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구분도 없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시적인 서술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같은 자유로운 발화법은 창작을 하려는 사람에게 일종의 ‘성경’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했다.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빨강의 자서전>(한겨레출판)은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에게 죽임당한 괴물 게리온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신화 속 영웅과 괴물의 이야기는 비정하고 아름다운 소년 헤라클레스와 빨강 날개를 단 외로운 소년 게리온의 사랑 이야기로 변주된다. 미국 출간 당시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뉴욕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카슨의 특징 중 하나는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애도의 정서다. 그는 죽음을 포함해 인간의 보편적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발화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녹스>(봄날의책)는 2000년 덴마크에서 사망한 오빠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오빠의 생애를 편지와 사진 등으로 재구성했다. 책은 일반적인 제본 방식이 아닌, 다양한 기억의 파편을 오려 붙여 만든 수첩을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지는 형태로 만들어 상자 속에 담은 독특한 형태다. T. S. 엘리엇 상 수상작인 <남편의 아름다움>(한겨레출판)은 남편과의 결혼과 파탄을 회고한 시적인 작품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아름다움과 욕망이 지속되는 모순을 존 키츠의 시에서 영감받아 강렬한 탱고의 이미지 위에 그려낸다.

현대적 삶과 신화를 접합한 글쓰기 방식은 작가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시인은 “작가는 작은 이야기를 하기 주저하지 않았다. 죽음, 인간의 보편적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발화했다”며 “시·소설·번역·고전을 두루 오가며 미적으로 독창적인 지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카슨은 고대 그리스 문학 번역으로도 유명하다. 한림원은 그의 번역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의 단편과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등을 현대적으로 옮겨냈다.

그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시 창작과 번역 작업도 병행해 왔다. 미국 미시간대, 뉴욕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다. 2005년에는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캐나다 훈장을 받았다.

카슨은 2024년 파킨슨병 투병 사실을 밝혔다. 파킨슨병은 그의 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으며,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글에서 카슨은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수치심은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투병도 그의 창작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후에도 각종 에세이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놓지 않았다. 그해 내놓은 <Wrong Norma>로는 전미도서상 시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시 부문을 받았다.

카슨은 언론의 주목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은 카슨이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은둔적인 성향이 강해 인터뷰를 위한 사진 촬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카슨의 수상으로 역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는 총 19명이다. 2024년 수상자인 한강은 아시아 여성 최초 수상자다. 최초 여성 작가는 1909년에 선정된 스웨덴 작가 셀마 라겔르뢰프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 이후 올해를 포함해 총 119회(113명·공동수상 4회) 수여됐다. 상금은 100만 달러(약 14억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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