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DC 미 연방의회 를 시작으로 뉴욕 상영 예정
북한 인권 연맹 마영애 총재, 한국 국군 포로회 손명화 회장 등 노력의 결실
” ‘43호’가 뜻하는 비극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
민족의 비극 6·25전쟁이 멈춘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섰다가 북한에 억류돼 탄광과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국군포로들이다.
이들의 삶과 가족들이 감당해야 했던 세월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43호의 운명’ 미국 특별시사회가 오는 9월 28일 워싱턴 미 연방 의회(U.S. Capitol)에서 열린다. 워싱턴 상영이 끝나면 뉴욕 에서도 상영될 예정인데 장소는 플러싱 프라미스 교회로 정해 졌지만 일시는 아직 조율중이다. 이번 행사는 국제북한인권연맹(총재 마영애)이 주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43호의 운명》은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미송환 국군포로들의 비극적인 삶과 그 가족들이 겪은 차별과 연좌제의 고통을 기록한 작품으로 최근인 2026년 9월 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특별 시사회가 개최되면서 한국 내에서도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역시 탈북민인 허명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7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 했다.
영화 제작에 많은 후원을 했고 이번 미 의회 상영을 성사시킨 주역, 북한 인권 연맹의 마영애 총재를 만나 43호의 의미며 영화의 뒷 얘기, 그리고 각오를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핵심 내용은 ’43호’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와 유래를 설명 함으로써 한마디로 전 할 수 있습니다. ‘43호’가 뜻하는 비극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
“북한 당국은 1956년 내각 명령(정무원 결정) 제43호를 통해 미송환 국군포로들에게 공민증을 발급하며 이들을 ‘내무성 건설대’ 등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이때부터 국군포로들은 북한 사회에서 이름 대신 ‘43호’라는 은어로 불리며 최하층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었습니다. “
“가장 잔인한 점은 이 신분이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국군포로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상급 학교 진학이나 군 입대마저 차단당하는 연좌제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아버지에 이어 아오지탄광이나 검덕광산 등 험난한 오지 광산으로 보내져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렇다. 전쟁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멈췄지만, 북한에 남겨진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비극임을 43호 이야기는 우리에게 웅변 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포로가 되었음에도, 오랜 세월 국가가 이들을 온전히 책임지거나 귀환시키지 못했던 미온적 역사를 마총재의 도움으로 되짚어 본다.
1951년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립했던 의제가 바로 ‘포로교환’이었다. 전쟁 중 북한군 총사령부는 “국군과 유엔군 포로를 10만 명 이상 붙잡았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1951년 12월, 막상 교환을 위해 북한이 제시한 국군포로 명단은 11,559명에 불과했다.
북한은 명단이 적은 이유에 대해 대다수의 국군포로가 이미 현장에서 석방되었거나 자발적으로 북한군(조선인민군)에 입대해 ‘해방전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포로들을 강제로 북한군에 편입시켜 전선에 재투입하거나 전후 복구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은폐한 것이었다.
포로를 돌려보내는 원칙을 두고 유엔군과 공산군(북한·중국)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유엔군(미국)의 입장은 포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자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거제도 포로수용소등에 있던 수많은 반공 포로들이 북한이나 중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했다.
북한과 중국은 체면을 구기자 격렬히 반발했다. 결국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진행된 포로교환(빅스위치 작전)을 통해 국군포로는 8,343명만이 남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던 수만 명의 국군포로는 결국 북한의 강제 억류로 인해 남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남겨진 국군포로들을 사회적으로 격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북한은 치밀한 정책을 폈다. 언급한 대로 북한은 1956년 내각 명령 제43호를 통해 이들에게 공민증을 주며 북한 사회에 정착시키는 듯 행동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름 대신 ’43호’라 부르며 아오지탄광 등 가장 험난한 광산과 오지의 강제노동 현장으로 보냈다.
1954년 포로 교환이 끝난 직후부터 북한은 “강제 억류된 국군포로는 공화국 내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고수해 왔다. 이 때문에 남북 대화의 공식 테이블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의제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장벽이 되었다.
북한은 수만 명의 국군포로 중 왜 하필 이 8,343명만 돌려보냈을까? 여기에는 철저한 계산과 분류가 있었다. 북한은 포로수용소 안에서 철저한 사상 교육과 세뇌 공작을 진행했다. 그중에서 “남한으로 돌아가서도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 않거나, 비교적 다루기 쉽다고 판단된 인원”을 우선적으로 분류해 교환 명단에 넣었다.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상태가 너무 나쁘거나 고문 흔적이 뚜렷한 포로들은 숨기고, 외관상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이들을 위주로 송환했다.
반면 사상 개조가 안 되거나, 끝까지 대한민국을 외친 강성 포로, 혹은 탄광 노동력으로 꼭 필요한 인원들은 아예 포로 명단에서 제외했다.
“전후 수십 년 동안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잊혀진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을 전사자 혹은 행방불명자로 처리해 두고 적극적인 송환 대책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1994년 41년 만에 북한을 자력으로 탈출해 귀환한 조창호 중위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비로소 미송환 국군포로들이 북한 최하층에서 생존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후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총 80명의 국군포로가 자력으로 탈북해 남한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정부의 외교적 성과가 아닌, 브로커를 통하거나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개인적 사투’의 결과였다.
현재 귀환한 국군포로 어르신들 중 생존해 계신 분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며, 북한에 남아있는 분들 역시 90세를 훌쩍 넘긴 고령으로 사실상 시간과의 싸움인 상황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자국 군인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클 수 밖에 없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43호분들, 정말 우리가 어떻게 보상하고 보답할 수 있을까?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미송환 국군포로의 규모는 정부와 학계의 추산으로 약 5만~6만 명, 실종자 전체를 합치면 줄잡아 8만~9만 명에 달한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쳤으나 국가의 무관심과 북한의 은폐 속에 아오지탄광 등지에서 ’43호’라는 낙인이 찍힌 채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의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부채다.
이 거대한 희생에 대해 법적·제도적으로 보상하고 국민으로서 보답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귀환에 성공한 80분의 국군포로에게는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억류 기간 동안의 밀린 군인 보수와 일시지원금, 주거 및 의료 혜택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북한 땅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수만 명과 그 유족들입니다.”
북한에서 온갖 연좌제와 멸시를 견디다 탈북한 국군포로의 자녀와 유족들에 대해, 본인이 귀환하지 못했더라도 국가가 마땅한 보수와 유족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 노력이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단다. 미 상원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S.4900)’ 도 이 일환이다. 이 법안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외부 정보 접근성 향상, 탈북민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초당적 법안이다.
“북한에 생존해 있었으나 남한 서류상 ‘전사자’나 ‘실종자’로 방치되었던 기록을 바로잡고, 국립묘지 위패 봉안 및 무공훈장 추서 등 국가유공자로서의 정당한 지위를 되찾아주는 조치가 뒤따라야 합니다. “
탈북 국군포로와 유족 단체(국군포로가족회)는 대한민국 법원에 북한 정부와 김정은을 상대로 불법 억류 및 강제노역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한국 법원은 북한과 김정은이 국군포로들에게 수천만 원씩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며 연이어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비록 북한이 직접 돈을 주지는 않더라도,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를 사법적으로 공식 규명했다는 거대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 연대와 유해 송환국군포로 강제 억류는 명백한 제네바 협약 위반이자 반인도적 범죄입니다. 유엔(UN) 인권 공론화가 그 첫번째 일 입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등을 통해 북한의 포로 억류와 연좌제 만행을 국제 인권 의제로 공식화하고,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이어가야 합니다.”
마총재는 그러면서 우리 일반 국민 동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답은 ‘기억하기’ 라고 강조 한다.
“어르신들과 유족들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은 배상금의 액수가 아니라, “국가가, 그리고 후대가 우리를 잊었다”는 소외감입니다. 이번 다큐멘터리 《43호의 운명》과 같은 작품을 널리 알리고, 교과서와 정규 교육과정에서 6·25전쟁의 결말 뒤에 숨겨진 ‘미송환 국군포로의 역사’를 정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조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 그분들이 아오지탄광의 번호 ’43호’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군’이었음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남겨진 9만 영령들에게 바칠 수 있는 진정한 보답입니다 “
탈북민의 어머니라 불리우는 국제북한인권연맹 마영애 총재는 “국군포로 한 사람의 삶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이 국군포로 위 문제 해결을 자신의 앞으로 일생 과업으로 삼겠다고 선언 했다. 기자와 인터뷰가 진행 됐던 9월 10일의 선언이자 약속이다. 마총재는 자신의 시아버님도 국군포로로서 북한 아오지 탄광에서 50여년동안 노예생활을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국군 포로 문제 해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과 활약을 기대 하면서 이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당시 마라라고 관저에 초청됐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그녀를 청중들에게 소개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 여러분,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여성분은 북한에서 왔고 그것도 평양, ‘내 친구’ 가 있는 곳에서 온 용감한 여성입니다” 라며 자신을 소개했단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내 친구’ 란 김정은을 말한다는 건 맥락을 아는 이들에겐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마총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국군 포로 및 유해 송환’ 문제를 적극적으로 어필할 계획이다.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선 탈북민 인권 문제와 더불어 로버트 어스 공화당 주하원의원실을 통해 백악관으로 꾸준히 메세지가 전달 중이며, 오랜 개인적 인연이 있는 미쉘스틸박 신임 주한미대사를 통해서도 이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급되어지고 있단다.

마지막으로 마총재는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특히 이번 미 의회에서의 영화 상영은 공화당 영김 의원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제작부터 한국 국회 상영에 이르는 과정에는 한국 국군 포로 가족회 손명화 회장 (바로 위 사진 오른쪽)의 노력이 지대 했다면서 가장 절친한 동지인 손회장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공동 활약을 다시금 다짐했다. 손회장은 이번 영화제작비의 절반을 부담했고 (나머지 절반은 마총재) 허감독에게 큰 영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손회장의 부친 손동식씨(이등중사)는 국군포로로 북에서 사망했는데 손회장이 부친의 유해를 가지고 탈북,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 그 유해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엄청난 스토리 아닌가. 한편 마영애 총재 시아버지는 (변상호 씨는) 위패가 서울 현충원에 모셔져 있단다. 안타까운 사실은 변상호 씨는 포로가 되어 납북돼 50년 간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대한민국서는 전사자로 처리돼 있었단다. 안타까운 국군 포로들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는 사연이다.
참 트럼프 대통령도 국군포로의 상황을 어느정도 아는 것 같다는데, 마라라고 만찬 때 마총재의 부군(맨위 포스터 사진, 마총재와 같이 서 있는 이)을 소개 하면서 “이사람은 한국 전쟁 때 포로로 끌려 깄던 한국군의 아들”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 부군의 얼굴에 흐르던 눈물을 마총재는 잊을 수 없단다. 마총재와 그를 도와 이 일을 열심히 해 나가고 있는 캐나다의 김철수씨 등 활동가 들이 크게 고무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활약(?)을 기자도 함께 기대해 본다.
기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포로가 되었음에도, 오랜 세월 국가가 이들을 책임지거나 귀환시키지 못했던 미온적 역사를 어렵고도 지난 하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는 맹렬 투사, 마총재의 손을 꼭 잡고 건승을 빌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안지영 기자)

마총재 시아버지 변상호 씨의 전사확인서
상영회 정보
•영화: 다큐멘터리 ’43호의 운명 (The Fate of Documentary No. 43)’
•일시: 2026년 9월 28일 (월) 오후 4시
•장소: 미국 국회의사당 (U.S. Capitol) 방문자센터 HVC-200
•참석가능인원: 80명
•주관: 국제북한인권연맹 (International Federation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 영화의 내용, 전개, 감독의 의도 등은 뉴욕 상영이 확정되면 그때 스포일러를 피해 다시 전하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