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시민 활동가)
지난 7월 24일, 오리건주 유진에 있는 홀트아동복지회(Holt International) 본사 앞 잔디밭에 관 모양의 종이 상자와 ‘RIP HOLT(홀트의 종말을 고한다)’라고 쓰인 마분지 묘비들이 놓였다. 검은 옷을 입은 입양인 30여 명이 모여 “아기를 팔지 말라”고 외쳤다. 이들은 이 시위를 ‘홀트를 위한 장례식’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난 70년간 이어져 온 국제입양 산업의 쇠퇴를 환영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겪은 분노와 상실을 나누는 자리였다.
홀트는 단순한 입양기관이 아니다. 1950년대 홀트가 벌인 로비 활동은 미국의 국제입양 제도를 설계한 뼈대가 됐다. 그리고 그 제도의 첫 실험 대상이자 최대 공급원이 한국이었다. 홀트는 1955년 한국인 아동 8명을 입양할 수 있도록 법안 로비 활동을 벌였으며, 이것이 국제입양의 시초가 됐다.
이번 시위는 단순한 감정적 항의가 아니다. 배경에는 한국에서 거의 3년에 걸쳐 진행한 해외입양 실태조사와, 지난해 발표된 그 결과가 있다. 조사는 입양 서류 조작을 드러냈다. 입양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아동을 고아로 위장한 사례, 부모에게 자녀가 사망했다고 알린 뒤 실제로는 그 아동을 국외로 입양 보낸 사례, 그리고 입양 가정이 아동의 미국 시민권 취득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아 훗날 성인이 된 입양인이 강제 추방당한 사례까지, 홀트의 역사에는 인권 침해로 규정될 사건들이 수없이 많다.
홀트 측은 1956년 이래 아동과 가정을 위해 헌신해 왔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홀트를 통해 가정을 찾은 수만 명의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이번 행동이 국제입양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개선이 아니라 ‘입양산업’ 자체의 종식을 입양인 자신들이 외치는 것이다.
입양인들의 이야기는 곧 한인 커뮤니티의 이야기다. 한국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의 아동 ‘수출국’이었고, 그 결과 지금 미 전역에는 성인이 된 한인 입양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출생 기록, 친가족의 생사 여부, 심지어 자신이 어떤 경위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일부는 시민권 절차 누락으로 인해 성인이 된 뒤 추방 위기에 놓이고 있다. 미국이 해외 입양인에게 자동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인 까닭이다. 이는 이민자 권익과 시민권 정책을 다뤄온 한인 커뮤니티 단체들의 활동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홀트 앞에서 열린 이 장례식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아동복지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대규모 국제입양 시스템은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움직인 산업이었는가. 그 답을 찾는 일은 이제 침묵할 수 없는, 자신의 뿌리를 되찾으려는 입양인 당사자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우리 한인사회가 응답해야 할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한인사회가 이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것을 넘어, 입양인들의 권리 회복에 함께 연대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설 때다. 한인사회가 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고 진정한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