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브루클린 그린우드 공동묘지 정문 앞을 지나다 보면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남미 정글에서나 들릴 법한 새 울음소리,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초록빛 앵무새 떼다. 퀸즈의 대학가와 공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잿빛 겨울 하늘 아래 열대나 아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새들이 전신주 위에 앉아 서로에게 소리를 지른다.
이 새의 이름은 몬크 앵무, 혹은 퀘이커 앵무. 고향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남미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이국적인 애완동물 붐을 타고 JFK 공항을 통해 미국에 들어왔는데 이때 수송 상자가 파손돼 무더기로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게 전해지고, 여기에 애완용으로 기르다가 버려지거나 집을 탈출한 개체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이름은 수도사를 뜻하는 몽크(Monk)와 수행자를 뜻하는 퀘이커(Quaker)에서 따왔지만, 실제로 이 새들이 보여준 건 경건함이 아니라 뉴욕에서 가장 시끄럽고 억센 생존력이었다.
처음엔 다들 이 아열대 새가 영하의 도시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앵무새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냈다. 나뭇가지를 엮어 거대한 아파트형 공동 둥지를 지은 것이다. 그것도 열이 새어 나오는 전신주와 변전소, 가로등 위에. 인간이 만든 인프라를 난방 설비 삼아 겨울을 난 셈이다. 먹이가 궁할 땐 뉴욕 시민들이 마당에 내놓은 새모이통까지 뒤져 잡식성으로 식성을 바꿨다.
이 정착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비둘기, 참새, 까마귀, 블루제이 같은 텃새들과 둥지 자리와 먹이를 놓고 부딪혔고, 까마귀나 매의 공격도 받았다. 그런데 이 앵무새들은 텃새의 둥지를 빼앗는 대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전신주라는 빈 공간을 통째로 개척하였다. 포식자가 오면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으로 서로에게 경보를 울리며 집단으로 맞섰다. 그렇게 텃새와 정면 충돌하지 않으면서 자기들만의 영토를 넓혀 갔다.
물론 인간도 가만두지는 않았다. 변전소 주변의 둥지가 화재와 정전을 일으키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둥지 철거가 벌어졌다. 초기엔 유해 외래종으로 분류돼 포획과 퇴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자 앵무새들의 반응은 후퇴가 아니라 보강이었다. 둥지를 더 크고 더 견고하게 다시 지었다. 지금 그린우드 공동묘지 정문과 퀸즈 곳곳에는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 살고, 한때 제거 대상이던 이 새들은 이제 뉴요커와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와 보는 명물이 됐다.
이 서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민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노동력이 필요할 땐 문을 열어 주다가, 그 필요가 옅어지면 침입자로 취급하는 패턴이다. 앵무새도 처음엔 애완용으로 수입됐지만, 탈출하거나 버려지자 스스로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자 곧바로 생태계 교란종으로 분류돼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과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만의 견고한 공동체를 지어 올렸다. 이민자들이 낯선 땅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를 지탱해 온 방식과 다르지 않다.
지금 미국의 자국민 우선주의자들은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고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망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앵무새의 이야기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텃새와의 초기 갈등은 분명 주거와 먹이를 둘러싼 경쟁이었다. 그러나 앵무새들은 텃새의 둥지를 빼앗는 대신 전신주라는, 누구도 쓰지 않던 공간을 개척했다.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이 꺼리는 3D 업종과 새로운 산업을 개척해 미국 경제의 외연을 확장해 온 것과 정확히 같은 그림이다. 결국 텃새와 앵무새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법을 찾았다.
뉴욕의 앵무새들은 살아남았고 이제는 이 도시의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회색빛 콘크리트 정글에 남미의 색깔과 소리를 불어넣은 이 이방인들은 도시를 망친 게 아니라 도시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미국의 이민 정책은 늘 통제와 배척, 그리고 포용과 다양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브루클린의 전신주 위에서 당당히 울어대는 초록 앵무새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방인의 유입은 정말 생태계를 망치는 교란인가, 아니면 도시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생명력의 확장인가.
텃새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뉴요커로 정착한 앵무새들처럼,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이라는 거대한 둥지를 지탱하는 단단한 나뭇가지가 되어 있다. (동찬 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