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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74)

조선의 마케도니안과 미국 선교 본부–

데이즘과 예정설 그리고 화체설 3

 안동일 작

찰스 캐럴이 토마스 제퍼슨과 다시 만나 독립선언서 채택의  뒷 얘기를 나눈 것은  향리 아나폴리스에 내려가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정식 대륙회의 대의원 직을 수락하고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7월 하순의 일 이었다.
정확히는 7월 22일 이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주선해서 이루어진 시티터반 에서의 작은 정찬 자리에서 였다. 벤자민은 진작 부터 존 캐럴 신부를 포함하는 캐럴 형제에게 저녁을 대접 하고 싶다고 채근 했었는데 그때야 시간이 맞았던 것이다.
벤자민  노인은 자신의 집으로 초대 하겠다고 했지만 캐럴 형제가 번거롭게 그럴 필요 있냐며 극구 사양해 시티 터반에서의 저녁으로 낙착됐고 벤자민은 찰스가 정식 대의원이 된 것을 여럿이 축하해야 한다면서 여러 사람을 부르려 했으나 캐럴 형제가 극구 말려 제퍼슨 과 벤자민의 오른팔 격인 밥 모리스가 참석하는 선에서 절충을 봤다.

캐럴 형제가 시티터반의 중형 파티룸 로즈 홀에 들어 섰을 때 벤자민과 제퍼슨이 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일찍들 나오셨습니다. “
“귀한 손님 모시는데 일찍 와 있어야지요.”
육중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선  벤자민 프랭클린은 특별히 존 신부를 강하게 포옹해 반가움을 표시했다. 몬트리올에서 돌아온 이래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존 신부도 노인의 넓은 등을 꼭 안았다.
“통풍은 좀 어떠 십니까?”
“신부님 덕에 많이 좋아 졌습니다. 몬트리올서 구해 주신 제수이트 나무가 특효 약 입디다.”
서로 간의 반가운 인사가 끝나고 캐럴 형제가 테이블에 앉았다. 존 신부와 제퍼슨도 초면은 아니었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 들이 여러 장 펼쳐져 있었다. 독립 선언서들 이었다.
인쇄본도 있었고 필사본도 몇 장있었다. 필사본은 완성 본이 아니라 여러 글씨체로 앞부분만 씌어 있었다.
“서기국의 티모시가 어떤 글씨체가 좋겠냐고 해서 살펴보고 있던 중 이었소.”
대룩회의 에서 서명용 양피지에 정서를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역사적인 문건이기에 공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찰스는 인쇄본, 실물 선언서를 주 의회에서 보았지만 존 신부는  처음보는 것 이었다. 그는 신문으로만 선언서를 읽었다. 지금 같으면 신문에 인쇄본의 사진을 실었겠지만 당시는 사진이 나오기 전이었다.
“잠깐 봐도 되겠습니까?”
“이걸로 보시오 신부님”
벤자민이 각지의 의회로 송부된 인쇄본을 건넸다. 인쇄본은 한장으로 돼 있었다.
“다시 봐도 아주 좋습니다. 정말 명문장입니다. 내용도 그렇고… 제퍼슨 선생 역시 대단하십니다.”
선언서를 단숨에 읽은 존 신부가 말했다.
“ 다 박사님과 캐럴경이 도와 주신 덕분입니다.”
의외로 제퍼슨은 겸양의 언사를 던졌다.

그때 찰스가 이탤릭 체로 큼직하게 쓰여있는 견본용 필사본 서문의 ‘자연법과 자연의
신’ (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 이라는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내리듯  짚어가며 말했다.

“제퍼슨 선생, 메릴랜드에서 활자화 된  이 문장을 보고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자연의 신 천주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지요, 이제 이 문서 덕분에, 여기 존 신부님이 이 땅에서 당당하게 천주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 되었습니다.”
“캐럴 의원님이, 메릴랜드에서 민병대를 모으고 의회를 설득하는 대업을 치르는 동안, 저는 그날 하숙방에서 의원님이 제게 건냈던 만물과 우주에 깃든 신의 섭리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뜨거운 눈빛을 기억하며 펜을 움직였습니다. 그 문장에는 의원님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제퍼슨 군에게 들었습니다. 우리 몽쉐르의 정문의 일침이 큰 힘이 되었다고…”  벤자민도 나섰다.
“그나저나 찰스경 께서는 신문에 공연한 말씀 하셔 가지고 제가 계면쩍게 되었지 않습니까?”
제퍼슨이 찰스를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그도 메릴랜드 신문을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서가 채택되었을 당시, 메릴랜드 가제트(Maryland Gazette)를 비롯한 식민지 각 지역 신문들은 수일에서 수주일의 시차를 두고 전문(Full Text)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보도했다.
당시 신문들은 대부분 일주일에 한 번 발행됐다. 필라델피아에서 인쇄된 공식 전단지(Dunlap Broadside)를 전령이 말을 타고 각 지역으로 배포 한 뒤에야 신문사들이 활판을 새로 짜서 인쇄할 수 있었다. 아나폴리스에서 발행되던 메릴랜드 가제트의 경우, 7월 11일 자 신문에 선언서 전문을 실었고 볼티모어에 발행되던 저널( Maryland Journal)은 하루 앞선 10일 이를 보도 했다. .
당시 신문들은 편집인의 주관적인 해설이나 감상적인 헤드라인을 크게 뽑기보다는, 대륙회의에서 넘어온 선언서  전체를 지면에 그대로 싣는 방식을 취했다. 대중이  직접 읽고 판단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메릴랜드의 가제트와 저널은 당대 신문 중 유일하게 이 선언서의 주 저자가 ‘토마스 제퍼슨’이라는 사실을 명시해 보도했다.  당시 대중은 이 선언서를 의회 공동의 저작물로 여겼고 제퍼슨의 존재는 1790년대가 되어서야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이는 매우 이례적인 특종이었다.

7월 초에 발행된 신문들에는 대표들의 명단이 없었다. 대륙회의 의장인 존 핸콕과 서기 찰스 톰슨의 이름만 인쇄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던럽은 말미에 인쇄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밝혔다. 자기 인쇄소의 홍보이기도 했지만 용기있는 행동으로 평가 받는다. 인쇄물에는 세명의 이름만 있게된 셈이었다.  그런데도 메릴랜드의 신문들은 이들 세명 이외에도 초안 작성자로 토마스 제퍼슨을 거론했던 것이다. 찰스 캐럴을 인용 한 것으로 거의 확실시 되는 일이다. 신문들은 정확하게 실명을 명시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 신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대륙회의에 정통한 지역 유력 인사의 전언이라고 하면서 보도했기에 조금만 유추해 보면 누가 봐도 찰스라는 것을알 수 있었다. 특히 메릴랜드 저널은 10일 자 신문 1면에 전면으로  “아메리카 13개 연합주, 독립을 선언하다”라는 문구를 화려하고 장식적인 서체로 크게 인쇄하여 독립의 극적인 순간을 강조 했다.
“두 신문 발행인 들이 너무도 강하게 몰아붙히는 바람에 실토 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벤자민이 또 나서 상황을 정리 했다.

“그게 신문 발행인들의 할 일이지, 잘한 일이오, 언제 알려져도 알려질 자랑스러운 일인데, 나나 대륙회의가 나서기도 뭣했는데 찰스 몽쉐르가 잘한 일이오”

찰스 캐럴은 열악한 환경의 지역 신문들의 최대 후원자 였고 경영의 고문이기도 했다. 캐럴 뿐 아니라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세사람 모두 언론, 신문과 관계가 깊었고 언론자유를 종교 자유 못지 않게 강조했고 이를 구현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정부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가 “정부 없는 신문을 택 하겠다”고 까지 이야기 했을까? 이 이야기는 따로 장을 정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선언서 채택의 뒷 얘기가 이어 졌다. 정찬 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고 또 참석하기로 돼 있는 밥 모리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랬다.
7월 하순의 무더운 필라델피아 시티터반의 은밀한 방. 초저녁 큰 촛불이 일렁이는 가운데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찰스 캐럴, 그리고 존 캐럴 신부까지 미 대륙 최고의 지성과 영혼의 지도자가 역사적인 문서의 탄생 뒷얘기를 나누는 이 장면은 , 구세계,식민지의 종교적 차별과 박해를 끝내고, 신세계 공화국이 나아가야 할 ‘종교 자유의 신기원’을 다짐하고 확인하는 자리였다. 뒤에 얘기 하겠지만 이날 모임은 독립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또 정립한 중요한 결정들의 씨앗이 잉태 된 자리이기도 했다.

찰스 캐럴의 방문 이후 제퍼슨은 보름 가까이 홀로 하숙집 랜턴 하우스의 방에 틀어 박혀 캐럴과의 대화 영감을 바탕으로 이미 자신이 썼던 버지니아 헌법 초안이나 존 로크의 철학서, 그리고 영국의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등을 옆에 쌓아두고 피를 말리며 문장을 만들고 다듬었다.
6월 24일, 뼈대를 완성한 제퍼슨은 땀 범벅이 된 셔츠 차림으로 하숙방에서 초안을 들고 나와 벤자민 프랭클린과 존 아담스를 각각 ‘개별적으로’ 찾아가 피드백을 구했다.
제퍼슨은 훗날 이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초안을 의회 보고하기 전, 작성위원이기도 한 프랭클린 박사님과 아담스 씨를 따로 찾아가 그들의 수정을 요청했다. 그들이 직접 친필로 써넣은 수정 사항은  두세 개(Two or three only)에 불과했으며, 아주 사소한 어휘 수정(Merely verbal)이었다. 그런데 정작 의회에서는…”
제퍼슨은 자존심이 강한 문장가였기에 “별로 고친 거 없다”고 짐짓 덤덤하게 말했지만, 실제 역사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두 선배가 가한 수정은 꽤 많았고 모두 ‘신의 한 수’들 이었다. 실은 의회의 무자비한 삭제 수정에 대한 불만이 이 회고의 방점이다.
역사적으로 규명된 이 단계(5인 위원회 검토 단계)에서 이루어진 수정은 총 40여 군데에 달하는데 .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벤자민 프랭클린이 붉은 펜으로 “신성한”에서 “자명한”으로 고친 부분이다. (Sacred → Self-evident)
제퍼슨의 원래 문장은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신성하고 부정할 수 없다(sacred & undeniable)고 믿는다.” 고 되어 있었는데 칠순의 노정치인이자 인쇄업자, 과학자였던 프랭클린은 ‘신성한(Sacred)’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독교적·종교성을 지우고 대신 수학이나 과학 법칙처럼 인간의 이성으로 당연히 알 수 있다는 뜻의 ‘자명한(Self-evident)’으로 고쳐 썼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또 다른 수정으로는 “피바다”를 “파멸”로 바꾼 것이 유명하다. 제퍼슨의 원래 문장은 영국 왕 조지 3세가 우리를 “피바다에 빠뜨리려(deluge us in blood)” 한다고 아주 감정적이고 격렬하게 썼다.
프랭클린은 이 거친 표현을 지우고, 깔끔하게 “파멸시키려(destroy us)” 한다고 정돈해 주었다. 후배의 과한 감정을 깎아준 것.
또 존 아담스의 날카로운 터치는 “식민지”를 “국가”로 (Colonies → States) 바꿨다.
아담스는 제퍼슨이 습관적으로 쓴 ‘식민지(Colonies)’라는 단어를 배격 했던 것이다. 그는 선언서가 발표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영국의 하속이 아니라며, 이를 ‘국가(States)’로 과감하게 고쳤다.

6월 28일 (금요일) 위원회의 검토를 끝낸 깨끗한 수정본(Fair Copy)이 마침내 대륙회의 본회의에 정식 제출되어 낭독된다. 제퍼슨이 완성한 초안은 큰 종이로 총 4페이지 분량이었다.
제퍼슨은 나중에 수정될 것을 대비해 종이의 윗부분이나 여백을 넓게 남겨두었다. 현재 의회도서관에 남아있는 이 초안을 보면, 제퍼슨 특유의 정갈하고 날카로운 글씨 위로 수많은 단어가 지워지고(Canceled), 행간에 다른 단어가 끼워 넣어진(Interlined) 흔적이 가득하다.
이 과정에서 제퍼슨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경험을 했다.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대륙회의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제퍼슨의 초안을 난도질하듯 수정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초안을 한 줄 한 줄 검토해 제퍼슨이 쓴 총 150여 개의 문장 중 무려 4분의 1에 달하는 86군데를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이때 제퍼슨은 본의회장 구석에 앉아 입을 꾹 다문 채, 자기 자식 같은 문장들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며 거의 고문에 가까운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고 훗날 회고했다. 옆에 있던 존 아담스가 언성을 높여 가며 대신 싸워줘야 했을 정도였다. .

제퍼슨이 크게 두려워했던 것은 뉴잉글랜드 출신의 완고한 청교도 의원들이 선언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거나 “기독교 국가로서” 같은 특정 종교의 색채를 덧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이나 타 종교인들은 독립 공화국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본회의 의원들은 제퍼슨이 심어놓은 서문의 핵심 문구, 즉 ‘자연법과 자연의 신(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이라는 표현만큼은 손대지 않고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특정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양심과 이성을 존중하는 ‘정교분리’의 사상적 초석이 그대로 살아남은 것이다.
다만, 의원들은 선언서의 중간과 끝부분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종교적 표현을 슬쩍 추가했다. 의원들은 선언서 중간에 제퍼슨이 신을 염두하고 쓴 ‘인류의 재판관’이라는 표현을 ‘세계의 최고 재판장(Supreme Judge of the world)’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또 선언서 맨 끝 문장은 제퍼슨이 “우리의 목숨과 재산, 신성한 명예를 걸고 서로 맹세한다”고 썼는데 의원들은 그 바로 앞에, 신의 섭리에 대한 굳건한 신뢰로(with a firm reliance on the protection of divine Providence)’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제퍼슨은 이 수정을 두고 “의원들이 괜한 종교적 수사를 덧붙여 문장의 명료함을 흐려놓았다”며 투덜댔다지만 제퍼슨이 깔아놓은 보편적 인권과 종교 자유의 본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제퍼슨으로서는 무척 아쉬운 부분이 눈물의 노예제 폐지 조항’이었다. 제퍼슨이 온 힘을 다해 썼으나, 본회의에서 통째로 가위질당해 제퍼슨을 밤새 울게 만든 유명한 ‘노예무역 규탄 조항’이다.
제퍼슨은 초안 3페이지에 영국 왕 조지 3세의 죄악 중 가장 무거운 죄로 “인간의 본성 자체를 침해하여,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잡아 와 노예로 팔아치우는 처참한 장사를 부추겼다”며 노예무역을 맹비난하는 장문의 글을 써넣었다.
비록 제퍼슨 본인도 노예를 거느린 남부 지주였지만, 이 선언서만큼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문학적·사상적 결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 조항은 사우스카롤라나와 조지아 등 남부 농장주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완전히 삭제되는데, 이때 제퍼슨은 모멸감 까지 느꼈다고 일기에 썼다.

“이 붉은 글씨가 프랭클린 박사님이 하신 수정이군요?”
테이블 위에는 최초의 수정본도 있었다. 찰스가 붉은 펜으로 ‘Sacred’를 쓱쓱 지우고 ‘Self-evident’를 쓴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왜 몽쉐르도 불만이시요? “
“아닙니다. 박사님의 붉은 펜, 이 부분은 문장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이성(Reason)의 옷을 입혀야만 온 세상의 핍박받는 영혼들이 이 문서 아래로 모여들 수 있다는 심모원려가 느껴 집니다. ‘세크리드’ 란 말을 안 봤을 때도 고개를 주억 거렸습니다.”
“그렇죠? 역시 예수회 몽쉐르이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신부님?”
벤자민은 존 신부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군이 쓴 ‘신성한’ 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뒀다간, 우리 5인 위원회의 저 꼬장꼬장한 청교도 로저 셔먼 영감이 ‘신성한 청교도 공화국’을 만들자고 덤볐을 걸세. 그 꼴을 보기 싫어서 내가 얼른 ‘자명한’ 이라고 바꿔버린 거지! 셔먼 그 친구는 성경 구절이 아니면 법전도 안 믿는 친구니까 말이네, 핫핫하!”

그때 밥 모리스가 땀을 흘리며 로즈 룸으로 들어왔고 역시 따들레한 인사가 끝나자 정찬이 시작 됐다.

의외로 밴자민이 존 신부에게 식사 기도를 부탁 했다. 모리스의 눈이 둥그래졌다.
“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오늘 이자리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계실것을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존 신부는 자리를 생각 해서 식전 기도와 식후 기도를 함께 했다. 이런 자리서 식후기도는 이루어지지 않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찰스만이 그 사정을 일고 있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다음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는 좌중의 신자들이 하는 대목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서 가만히 있었지만 찰스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짐짓 큰소리로 외쳤다. “Receive it now and forever.”. 그러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랐다. 그 순간 찰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자부심이 차 올랐다.

‘ 주님 이 중요한 자리에 주님의 찬미가 이렇게 등장 했습니다’

정찬이 시작 되면서 전채가 나왔고 식전주가 돌려 졌다. 주종은 역시 마데이라 였다.
“신부님 오늘은 허락해 주시는 겁니다.”  와인을 따르면서 노인이 신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과음만 하지 마십시오” 존 신부가 찰스와 모리스를 번갈아  보며 찡긋 했다.
통풍으로 고생했던 벤자민은 여행 내내 존 신부의 걱정하는 눈 때문에 딱 한잔 밖에 마시지 못했었다. 트랜튼 터반에서 반갑게 모리스를 만났을 때 였다.

“찰스 캐럴경의 대륙회의 정식 입성을 축하하며 건배!”
“치어스”  다섯개의 잔이 챙 하고 부딪혔다.

첫잔을 단숨에 비운 벤자민 노인은 자신의 잔을 채우곤 다른 사람들이 잔에도 첨잔 한 뒤 또 한번의 건배를 제안했다.
“존 캐럴 신부님의 숭고한 박애 정신을 위하여 건배.”  다시 잔 부딪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벤자민 노인은 이날 작정을 했는지 이번에는 토마스 제퍼슨을 위한 건배를 제안했다.
“청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인 문건을 완성해낸 우리의 자랑 토마스 제퍼슨 선생을 위해 건배”
잔이 또 부딪혔고 이번에는 존 신부 까지도 잔을 비웠다.

이날 메인 디쉬는  스테이크 였다.  프랭클린이 준비한 술은 마데이라 가운데 육류와 잘 어울린다는 ‘부알’ 과 ‘말바시아’ 였다. 부알은 중간 당도로 건포도, 무화과, 구운 설탕의 풍미가 특징이다. 말바시아 (Malvasia}는 풍부하고 달콤한 풀바디 스타일. 다크 초콜릿, 커피, 캐러멜 향이 특징. 부알이 먼저 나왔고 말바시아는 메인코스 때 나왔다.

마데이라 세잔이 커푸 들어가자 거나해진 프랭클린이 아까의 뒷담화를 계속 이어갔다.
“다시 뉴잉글랜드 영감들 얘긴데, 신부님, 난 이 마데이라 마실 때 마다 그 북쪽 뉴잉글랜드 완고한 영감탱이들 생각이 난단 말이오, 마데이라 때문에 종국에는 보스턴 티 사건이란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 존 핸콕 의장도 보스턴 사람 아니오?  이들 때문에 , 때문에 내가 붉은 펜을 들 수밖에 없었지!”

벤자민 노인은 자신이 특정 교단 편중 방지, 천주교 인정을 위해 노력 했다는 것을 특히 존 신부에게 강조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당시 매사추세츠를 비롯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독립에는 가장 앞장섰지만, 종교 문제만큼은 타협이 없는 철두철미한 이들이었다. 프랭클린이 특별히 저격하는 인물은 두 사람이었다.
먼저 로저 셔먼 (Roger Sherman)이다. 그는 코네티컷 대표로 제퍼슨, 프랭클린과 함께 독립선언서 ‘5인 위원회’ 멤버였다! 하숙방에서 초안을 마지막 검토할 때 제퍼슨과 프랭클린 바로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던 인물이다. 아주 독실하고 완고한 청교도(회중교회) 신자였으며, 자수성가한 법률가답게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사무엘 아담스였다. 무역상 출신 존 핸콕은 이들 보다는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저기 매사추세츠의 새뮤얼 아담스 좀 보게나. 영국 놈들 몰아내는 데는 앞장서면서도, 가톨릭 성당 근처만 가면 아직도 로마 교황 음모의 소굴이라며 진저리를 치지 않나. 그런 완고한 청교도들의 눈초리를 뒤로 하고  대륙 전체를 하나로 묶으려면, 종교색을 뺀 이성의 언어가 필수였네.”

찰스 캐럴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사무엘 아담스도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들려 주려는데  그때 식당 사람들이 메인 디쉬인 스테이크를 룸으로 들여 왔다. 이집 사장 존이 웨이터 두사람과 함께 들고 왔다.
손님이 손님인 만큼 터반 측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은빛 촛대 사이로 잘 구워진 소고기 덩이가 마데이라 와인을 졸여 만든 진한 갈색 소스에 적셔진 채 커다란 접시에 담겨 놓여 졌다. 그 옆에는 프랑스식으로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 소금을 뿌린 노란 감자 요리(프렌치프라이의 시초)가 영양의 보고 브로콜리와 함께 곁들여져 있었다.

18세기 후반의 스테이크(Beef Stake)는 오늘날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먹는 두껍고 정형화된 안심·등심 구이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당시에는 고기를 두껍게 굽기보다는 쇠고기 등심(Loin)이나 우둔살 부위를 다소 얇게 저미듯 썰어 석쇠(Gridiron)에 직화로 굽거나, 무쇠 팬에 버터와 함께 빠르게 지져내는(Pan-seared) 방식이 대세였다.그리고 꼭 소스를 새로 요리했다. 소스는 고기를 구워낸 팬에 남은 육즙(Brown drippings)을 베이스로 만들었다. 팬에 샬롯(Shallots)과 마늘, 타임(Thyme) 같은 허브를 다져 넣고 볶다가, 이때도 마데이라 와인을 듬뿍 부어 알코올을 날리며 반으로 졸인다. 여기에 진한 쇠고기 육수(Beef Broth)와 전분를 더해 걸쭉하게 만든 뒤, 마지막에 차가운 버터를 한 조각 떨어뜨려 풍미를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소문난 요리사 출신 터반 사장 존이 적당한 크기로 크게 썰어 각자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벤자민에게 먼저 주려 했더니 그가 손으로 존 신부와 찰스를 가리켰다.

스테이크의 맛은 정말 훌륭했다.  벤자민이 잔에 담긴 붉은빛 마데이라 와인을 한 모금 머금은 뒤, 소스를 얹은 스테이크를 썰어 한입 먹으며 감탄의 눈빛을  쏟아냈다. 이어 벤자민 뿐 아니라 좌중의 사람 모두 감탄의 소리를 냈다. 사이드 디시 감자요리 또한 매우 뛰어 났다.  움직이는 백과사전 벤자민 프랭클린의 음식 안목 이었다.
프랭클린은 젊은 시절 한때 채식을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건강한 대식가이자 미식가(Founding Foodie)”였다. 특히 그의 감자 사랑은 유명하다. 프랑스 대사로 가 있던 시절, 프랑스에서는 감자를 천한 음식, ‘한센병을 유발하는 독성 식물’이라며 기피했다. 이때 감자의 보급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던 프랑스 약학자 파르망티에(Parmentier)를 도와 프랭클린이 디저트까지 모든 코스에 감자가 들어간 ‘감자 만찬’을 열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만찬이 프랑스 궁정과 사교계에 감자를 유행시킨 결정적 계기였으며, 이것이 훗날 우리가 아는 프랑스식 감자튀김(프렌치프라이)의 대중화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다.

요리 얘기 하다가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이날 정찬은 요리와 와인도 훌륭했지만 그 대화 내용은 더 훌륭하고 의미있는 것이었다. 존 신부의 기도대로 천주가 그 자리에 함께 있어 대화를 이끌었음이 틀림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날 정찬 중의 대화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파리 출발이 확정되고 앞당겨 졌고, 참석자 모두가 뉴욕에서 고생하고 있는 조지 워싱턴 장군을 앞으로 누가 뭐래도  굳건하게 돕자는 결의를 했다.  대륙회의 보급 총관 밥 모리스는 캐럴 형제의 도움으로 구축된 프랑스 파이프라인을 더 세게 가동 하기로 했고,  토마스 제퍼슨과 존 케럴 신부는 종교의 자유, 그리고 언론 자유,  특히 징집 대상이 될 젊은이들의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더 매진하기로 의기를 투합했다.  떠들레한 벤자민 노인의 인물 품평으로 대륙회의 내부 사정과 현안을 새로이 인식한 찰스 캐럴은 이날 대화로 대륙회의 내 전쟁위원회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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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법원 권도형 美 송환 결정…한국 요청 기각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