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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고구마, 드라마는 사이다···‘참교육’ 이어 ‘김부장’까지 사적 응징에 열광

부조리·범죄에 공권력 제대로 작동 못하는 ‘고구마 같은’ 현실

비현실적 방식의 정의 구현, 시청자에게 강한 카타르시스 제공

사적 제재 콘텐츠 열풍에 “현실과 구분해서 바라봐야” 우려도

최근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에는 하나의 공통된 공식이 있다. 바로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악인을 응징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른바 ‘사이다 응징’ 서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에서는 가상의 조직인 ‘교권보호국’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직접 응징하고, SBS 드라마 <김부장>에선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특수요원 출신 아버지가 직접 범죄자들을 쫓아 가차 없이 응징한다. 앞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모범택시>는 억울한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전직 특수부대 장교들이 악인을 대신 처벌하고,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수십년에 걸쳐 가해자들에게 직접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 대표적인 ‘사이다’ 작품으로 꼽힌다.

이들 드라마의 장르와 배경은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공권력은 무능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피해자들은 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결국 경찰이나 검찰, 법원이 아니라 개인 또는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조직이 가해자들을 응징해서 정의를 구현한다.

이러한 ‘응징’과 ‘사이다’ 서사는 최근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하나의 흥행 공식이 됐다. 현실의 법과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라마 속 개인들이 시원한 방식으로 해결해 주면서 시청자들에게 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서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의 법과 제도, 공권력에 대한 사회적 신뢰 저하가 반영된 문화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흥미로운 액션과 폭력적인 장면의 자극성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비현실적인 방식의 ‘정의 구현’ 욕구가 콘텐츠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긴 시간 고통을 겪는 반면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즉각적인 응징을 보여주는 서사에 큰 공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사이다’ 액션은 원래도 인기가 있었지만, 특히 요즘 여러가지 부조리와 범죄 문제에 대해 공권력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과 무력감이 커지며 드라마에서 시원하게 해결하는 걸 보고 굉장한 통쾌함을 느끼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권력이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하는 것들이 드라마에서 형상화되면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현실에서 공권력이나 사법제도가 잘 작동하면 이런 판타지가 커질 이유가 별로 없다. 이러한 ‘사이다’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현실이 ‘고구마’처럼 답답하기 때문”이라며 “실제 현실에 대한 갈증들이 이런 드라마를 통해 해소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시스템과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높지 않다. 2026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실시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검찰과 국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사법부(19%)와 경찰(22%) 역시 낮은 수준에 그쳤다. 범죄 처벌 수위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낮다고 인식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2025년 ‘국민 법의식 실태조사’를 보면, 성범죄·아동 및 청소년 대상 범죄·소년범죄·도박·마약·부정부패 등 대부분의 범죄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처벌이 약하다’ 또는 ‘처벌이 매우 약하다’고 답했다.

다만 이러한 응징 서사 열풍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실에서는 적법 절차와 인권 보장이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원칙인 만큼, 콘텐츠 속 사적 응징과 현실은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온라인에서 신상 공개나 ‘사적 제재’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현실에서 법과 제도보다 응징을 선호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평론가는 “콘텐츠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를 띄긴 하지만, 현실에선 사실 어렵더라도 공적 시스템을 찾아가는 게 맞다”며 “문화적으로는 공적 시스템이 즉각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빈틈을 콘텐츠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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