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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73)

조선의 마케도니안과 미국 선교 본부–

데이즘과 예정설 그리고 화채설 2

안동일 작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화채설 안 믿는다고 한자 적어내면 일등 시민님께도 시민권 나오고 공직에도 진출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으시고 있으셨던 것을 보면…”

“잘 알고 계시는 군요.”

한자 적어 내면 정도의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캐럴은 그렇게 대답했다.
앞서도 언급 했듯이 당시 메릴랜드에서 천주교인이 공직에 진출 하려면 개종 하고 화채설(Transubstantiation)을 부정해야 했다. 바로 18세기 영미권 천주교 박해 역사의 핵심을 찌르는 대목이다.

영국과 그 식민지였던 메릴랜드에서 천주교인의 공직 진출을 막기 위해 시행한 법을 ‘심사법(Test Act)’이라고 불렀다. 공직에 임명되기 전, 일종의 사상 검증 선서를 해야 했는데 그 서약의 핵심 내용이 바로 “나는 천주교의 화채설을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성공회도  빵과 포도주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Holy Communion)를 하는데, 왜 하필  화채설이 천주교인을 걸러내는 완벽한 감별사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신학적 이유 말고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

성공회와 천주교는 영성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랐다. 천주교의 화채설 (化體說 )은 미사 중 사제가 축성하는 순간, 밀가루 빵과 포도주의 본질(Substance)이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살과 피’로 완전히 바뀐다고 믿는 선언이자 믿음 이었다.  겉보기만 빵과 포도주로 보일 뿐 진짜 신의 몸과 피라는 입장이다. 13세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에서 이 실체변화론이  공식적인 교리로 채택되었다.

성체성사는 아다시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만찬에서 기원한다.
그때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는 내 몸이며, 내 피다”라고 말하며 이를 기념하라고 했다. 그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 모여 신앙을 고백하고 빵을 나누는 이른바 ‘주님의 만찬’을 거행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그의 현존을 체험하는 전례였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성체성사는  성당에서 거행되는 장엄한 미사의 형태로 발전했다. 성체에 대한 신심이 깊어지면서 성체를 눈으로 보고 현양하는 문화가 발전했다. 미사 중 성체를 높이 들어 올리는 거양성체, 성체를 모셔두고 기도하는 성체조배,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 제정되었다.
“교황청이 공식화 하는데에는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특별한 이적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것을 다? ”
“어렸을 때 옆집 흑인 노예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입니다. 남미 출신 히스페닉인  그녀는  성당과 신부가 없어 성체 성사를 못한다고 늘 무척이나 아쉬워 했습니다.  “

“그렇습니다. 성체 성사는 천주교 미사의 전부 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성사 입니다.”
노예 라는 단어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인단 그렇게 답하고 캐럴은 성체와 관련된 이적에 대해 간략히 설명 해야 했다. 제퍼슨이 캐럴 같은 지성인은 그런 이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란치아노의 성 롱기누스 성당의 이적은 가톨릭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성체 이적 이다. 찰스 캐럴 처럼 교회사와 신학에 밝은 인물 뿐 아니라 천주교인이라면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건이다.
8세기 중엽인 752년 여름, 이탈리아 란치아노의 성 롱기누스 성당에서 한 수사(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그는 학식이 높았으나, 미사 중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성체 성사 교리에 대해서는 남모를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가 축별 기도(성변화 기도)를 마친 순간, 그의 눈앞에서 제대 위의 성체(빵)가 실제 인간의 살로, 포도주가 실제 인간의 피로 변화했다. 성체는 이내 다섯 개의 덩어리로 응고되었다. 당황하면서도 감격한 신부는 눈물을 흘리며 신자들에게 이 기적을 증언했다. 다섯개의 덩어리는 주교좌 성당과 급기야는 교황청에 까지 보내졌고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히 한 지역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그간 의구심을 표했던 적지 않은 이들에게 주님이 직접 경종을 울린 일이라고 인식 되면서 가톨릭 전체 전례에 큰 변화를 몰고 왔던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가톨릭인들 에게는 필수적인 상식이었다.

그후 이적은 여기저기서 일어 닜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3세기 라테라노 공의회의 채화설 공식화 이후 일어난 볼세나의 기적이다. 이는 이적을 넘어 기적으로 표현 된다.
공의회 이후 50년 쯤 지난 1263년, 프라하 출신의 베드로 신부는 로마로 순례를 가던 중 이탈리아 볼세나(Bolsena)의 성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그 역시 성체 안에 예수님이 실제로 현존하는가에 대한 신앙적 회의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공의회에서 틀림없이 변한다고 했지만 그랬다.
미사 중 그가 성체를 쪼개는 순간, 성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나와 신부의 손가락과 제대 위를 적시고, 성체 밑에 받치는 천인 ‘성체포(Corporal)’에 뚝뚝 떨어져 얼룩을 남겼다. 깜짝 놀란 신부는 미사를 중단하고, 당시 인근 오르비에토(Orvieto)에 머물고 있던 교황 우르바노 4세를 찾아가 전말을 고하고 죄를 청했다.

교황은 즉시 성체포를 거두어 조사하게 했고, 이적을 목격한 이들의 상세한 자술서를 근거 삼아 이를 공식 기적으로 인정했다. 교황의 감동은 가톨릭 교회의 전 세계적인 대축일인 ‘성체 성혈 대축일(Corpus Christi)’ 제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이지적인 성자도 이 기적을 내용으로 해서 대축일 찬미가를 지었을 정도로 유명한 일이다.

볼세나와 오르비에토는 모두 이탈리아 중부의 중소 도시다. 구체적으로 볼세나는  라치오(Lazio)주에 위치한 호숫가 마을이며, 오르비에토는 그와 인접한 움브리아(Umbria)주의 고성 도시다. 두 도시는 주는 달리 하고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이웃 마을로 약 11마일(약 18km) 정도 떨어져 있다.

피 묻은 성체포(Sacred Corporal)는 7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보관되어 있으며,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성체포는 당시 우르바노 교황이 머물던  오르비에토의 대성당(Duomo di Orvieto) 내 ‘성체포 경당(Chapel of the Corporal)’에 안치되어 있다. 이 대성당 자체가 사실상 이 기적의 성체포를 모시기 위해 새로 증축됐다. .
현재는 유물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성당 내부 경당의 대리석 감실 안에 보관되어 있다. 성체포는 빛과 습도에 취약한 천 소재이기 때문에 상시 노출해 두지는 않지만, 매년 부활시기부터 성령강림대축일 사이, 그리고 이 기적으로 인해 제정된 성체 성혈 대축일(Corpus Christi) 등 주요 전례 시기에는 일반 신례자와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제대 위에 공개된다. 특히 성체 성혈 대축일에는 이 성체포를 앞세우고 오르비에토 시내를 도는 성대한 행진이 열린다.

과학적 조사 결과 과거에는 이 붉은 얼룩이 빵이나 천에 자라는 ‘붉은 누룩곰팡이(Serratia marcescens)’ 같은 박테리아일지 모른다는 과학계의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인 2015년, 교구의 허가를 얻어 첨단 자외선(UV) 분석 등을 포함한 비파괴 정밀 과학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체포에 남은 대칭형의 붉은 자국들이 실제 인간의 혈액(혈장과 혈청 성분)임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13세기 프라하의 베드로 신부가 품었던 의심을 거두어 주었던 그 기적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며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시작된 15세기 루터, 장 칼뱅 등 개혁가들은 가톨릭의 실체변화 교리와 미사의 희생 제사적 성격을 비판하며 각자 다른 성찬론을 주장해 화체설은 신구 교를 가르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럼에도 가톨릭 교회는 이에 맞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해 실체변화 교리를 재확인하고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재현하는 거룩한 제사임을 다시금 선언했다.

“어차피 천주교 내에서 교황과 교황청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일이라는 인상은 지울수 없습니다. 그려…”

성공회에 적을 두고 있는 이신론자 제퍼슨은 그렇게 반응했다.   성공회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화채설을 ‘미신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 처럼 .

저들은 영성체를 할 때 그리스도가 영적으로(Spiritually) 임재하는 것이지, 빵이 물리적인 살덩어리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성공회의 39개조 신앙 조항 제28조에는 “화채설은 성경으로 증명할 수 없으며, 많은 미신의 원인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화채설을 부정한다”라는 문장에 서명하라는 것은, 성공회 신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천주교 신자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통째로 부정하고 배교한다는 뜻이 되었다.

영국 국왕이 교회의 수장인 성공회 입장에서, 천주교인은 단순한 종교 소수자가 아니라 ‘로마 교황(외국 군주)의 명령을 따르는 잠재적 반역자’였다. 천주교인을 공직에서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데, 겉보기에 천주교인과 성공회교도는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예배 형식도 비슷하고, 읽는 성경도 비슷했고 , 영성체도 했었다.
하지만 “미사 때 쓰는 빵이 진짜 예수의 살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독실한 천주교인은 영혼을 걸고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신앙이었다. 화채설을 부정하는 선서를 하는 순간 자신을 지탱 해 주던 천주교가 떠나간다고 생각 됐던 것이다. 화채설 부정 선서는 천주교인의 양심을 볼모로 잡고 그들을 합법적으로 공직에서 솎아내기 위한 가장 정교한 ‘정치적 덫’이었다. 교황의 권위도 떨어 뜨리면서…

“밀가루 빵이 예수의 몸으로 변한다… 그것도 천 칠백년 전에 죽은 사람의 몸으로 변한다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라면 몰라도 이성적으로 어떻게 설명이 되는지 캐럴 경 같은 분은 어떻게 설명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만든 밀가로 빵 아닌가요?  ”
“제퍼슨 선생, 우리 천주교인들에게 그 작은 빵 조각은 단순한 밀가루가 아닙니다. 영국 왕의 감시를 피해 메릴랜드 주방 구석의 뜨거운 장작불 위에서, 가문의 여인들이 숨을 죽이고 무쇠 틀로 한 장 한 장 구워내던 인내의 상징이지요. 소금 한 꼬집 들지 않아 투박하고 질기지만, 우리에게는 자유와 신앙 그 자체입니다.”

그랬다. 18세기 말 미국(당시 식민지 및 건국 초기)의 천주교인들이 성사(미사) 때 사용했던 제대빵(Altar Bread), 즉 성체 성혈 성사용 축성 전 제병은 요즘 우리가 보는 아주 얇고 기계로 찍어낸 흰 전병과는 제조 과정과 형태에서 차이가 있었다.
제병을 대량 생산하는 수녀원이나 전문 종교 성물 공장이 없었기에 메릴랜드의 캐럴 가문처럼 부유한 천주교 집안의 사유지 안에 있는 사설 경당이나, 순회 신부(Jesuit Missionaries)가 들르는 비밀 미사 거처(Mass House)에서 가정에서의 비밀스러운 제조로 준비했다.
신부가 직접 구우거나, 신부의 안전과 미사를 돕는 가문의 여성들(혹은 신뢰할 수 있는 하인들)이 극도의 보안과 경건함 속에서 침묵하며 구웠다.
교회법에 따라 재료는 오직 밀가루와 물뿐이었다. 이스트(효모)나 소금, 설탕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무교병(Unleavened bread)이었다. 요즘의 성체는 새하얗고 매끄러우며 입안에서 금방 녹지만, 18세기의 제병은 훨씬 투박하고 거칠었다. 두께도 요즘 전병보다 훨씬 도톰하고 단단하여, 씹을 때 바삭하거나 질긴 빵의 식감이 남아 있었다.무쇠 판 안쪽에 십자가, 그리스도를 뜻하는 문장(IHS), 또는 희생양(Lamb of God) 같은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구워져 나오면 제병 표면에 이 문양들이 볼록하게 인장처럼 박혀 있었다.

“제퍼슨 선생, 성공회인들에게는 그저 상징에 불과한 빵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 영성체로 얼마나 많은 천주교 인들이 위안을 얻었고 신심을 키웠는지 모릅니다. 저 만해도 일주일에 한번 이라도 영성체를 하지 않으면 온몸에 힘과 의욕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들은 우리의 이런  영혼의 위안을  인질로 삼아 공직과 자유를 박탈했던 것입니다.”

” 그런 위안을 느끼신 다는 것에 십분 동의 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갑니다. 그게 신앙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종교적 신앙을  국가의 법률로 규정해 탄압하고 인간의 양심을 시험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이지요. 저 역시 진작부터 문제의 심사법이 참으로 야비하고  야만적인 법 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래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 입니다.제가 초안을 잡는 이번 선언서에는 이 부분을 꼭 담을 작정입니다;”
“김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

” 하지만  화채설 또한 결국은 교황의 권위에 따르는 것이라는 생각은 금할 수 없군요, 교황의 권위가 신성 불가침이라는 천주교인들의 생각을 옳은 것이라고 여기기에는  제 이성이 아직 탄탄합니다. 허허허”

“당장에 더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정도 만이라도 천군 만마를 얻은 셈입니다.”

그러면서 캐럴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퍼슨 의원, 이성만으로는 인간의 고독과 종말의 공포를 위로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특히 우리 천주교인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영국 군인들이 들이닥칠 때, 메릴랜드의 천주교 어머니들이 의연히게 버틸수 있었던 것은  차가운 논리가 아니라 전날 가슴에 받아 모신 주님의 성혈이었고   투박한 나무 구슬로 엮은 묵주였습니다. ”

“참 캐럴 경도 묵주기도를 하십니까? 놀랄 정도로 열심히들 하던데…”

대뜸 묵주기도에 대해 물어왔다.

“물론이죠,  실은 하루에 50단을 하기로 잦정 했지만 못지키는 날이 더 많습니다. 허허허”

묵주기도의 역사는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자들의 시편 기도에서 유래: 당시 수도원에서는 수도자들이 매일 성경의 시편 150편을 바쳤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일반 평신도들은 이를 따라 하기 어려웠다. 대신 주님의 기도나 성모송을 150번 바치며 시편 기도를 대체했던 것이 그 시작. 이때 횟수를 세기 위해 매듭을 지은 줄이나 구슬을 사용했다.

13세기 초, 성 도미니코 교부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이단에 맞서 싸울 무기로 묵주기도를 널리 전하라고 권고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1571년 가톨릭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과의 레판토 해전에서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교황 비오 5세는 모든 신자에게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청했고, 승리 후 이를 기념해 10월 7일을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했다.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유익은 영혼의 평화와 복음의 묵상에 있다.  묵주기도는 단순히 성모송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바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활, 수난, 부활에 이르는 ‘신비(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를 성모님의 시선으로 깊이 묵상하게 된다. 즉,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예수님 중심의 기도다.

가톨릭 교회는 이 기도가 악의 유혹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하고, 가정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이끄는 강력한 영적 무기라고 가르친다.  반복되는 기도문을 조용히 읊조리며 손가락으로 묵주알을 굴리는 행위는 심리적으로도 큰 안정감을 줍니다. 복잡한 소음에서 벗어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무는 깊은 명상의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묵주 기도는 마리아에 대한 기도로 알려져 있는데…”

” 우리는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자식의 죽음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그 거룩한 어머니에게, 이 모진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 함께 울며 빌어달라고 동정(同情)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악의 유혹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하고, 가정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이끄는 강력한 영적 무기 입니다. ”

“지나번에 캐럴경이 천국에 올라간 영홍들에게  가장 큰 일이 세상에 남아있는 가족 친지 들의 기도를 듣는 일이라는 말씀 매우 현실적으로 들렸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어린시절 파리에서 수녀님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

“참, 제퍼슨 선생은 영혼의 존재를 얼만큼 믿습니까?”

“믿기야 하죠, 영혼이 없다고 하기에는 인간사와 세상사에 설명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

캐럴은 고개를 끄덕였다.

“캐럴 경, 나는 인간의 ‘이성(Reason)’이야말로 신이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 믿습니다. 이성이 독립 독립적 양심을 낳고,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지 않소? 그런데 경이  말하는 그 보이지 않는 ‘영혼(Soul)’은 이성 위에 군림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

“제퍼슨 선생, 순서가 틀렸습니다. 영혼은 뿌리이고, 이성은 줄기이며, 양심은 그 줄기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단순히 숨 쉬는 생명력이 아닙니다. 신의 형상을 닮은 영적 실체이지요. 그 영혼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이성’입니다. ” 이성은 영혼이 눈을 뜨고 세상을 관조하는 창문과 같습니다.”

”  저는 늘 이성 그리고 영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궁금 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영혼은 언제 인간의 몸에 깃들게 되는지…또  잉태 되는 순간, 혹은  태어나는 순간 들어 온다면 영혼도 자라기도 하는 걸까요?”

제퍼슨 같은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유치하기 까지한 의문이었지만 실은  근본을 꿰 뚫는 의문이었다.

” 영혼은 도대체 언제 인간의 육신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까? 어머니의 태중에 처음 씨앗이 맺히는 순간(잉태)이오, 아니면 세상 밖으로 나와 첫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탄생)이오? 만약 잉태의 순간이라면, 보이지도 않는 세포 조각에 온전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뜻인지요?”

제퍼슨 다시금 물어왔다.

“우리 교회는 ‘잉태되는 바로 그 순간(Conception)’에 신이 각 인간에게 고유한 영혼을 직접 창조하여 불어넣으신다고 가르칩니다. 임신중인 어머니의 몸에는 두개의 영혼이 있게 되는 셈이지요.”

” 태중에서 발길질을 하고 어머니와 교감하는 그 생명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육신이 아무리 미미한 씨앗의 형태일지라도, 신의 시선 안에서는 이미 완성된 하나의 우주입니다. 영혼이 없다면 생명은 시작될 수 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갓 태어난 핏덩이의 영혼과, 평생 학문을 닦고 세상을 경험한 노학자의 영혼이 같단 말씀 이신지요? 육신이 자라고 이성이 자라듯, 영혼도 시간과 함께 자라나는 것입니까? ”

“그 질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영혼의 ‘크기’는 자라지 않지만, 영혼의 ‘깊이와 광채’는 자라납니다.
신이 주신 영혼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갓난아기의 영혼이라 해서 조각나 있거나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육신이라는 그릇이 아직 작고 이성의 창문이 닫혀 있어 그 영혼의 빛이 세상 밖으로 온전히 드러나지 못할 뿐이지요. 아기가 자라면서 영혼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영혼을 담은 육신과 이성이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 그럼 자란다는 표현을 쓸 수 없는 것이군요”

” 그러나 영혼이 진짜 ‘자란다’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총과 덕행,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사람이 이성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양심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믿기 힘든 신앙을 지켜낼 때, 그 영혼은 점점 더 투명해지고 신의 빛을 더 많이 반사하게 됩니다. 반대로 죄를 지으면 영혼은 때가 타고 어두워지지요.  그러니 제퍼슨 선생  영혼은 육체처럼 물리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신을 향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양심’은 무엇일까요? 이성과 구분 됩니까? ”

” 양심은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신이 새겨놓은 ‘자연법의 목소리’입니다. 이성이 아무리 발달해도 영혼의 양심이 마비되면 인간은 정교한 괴물이 될 뿐입니다. 이성은 양심의 목소리를 논리적으로 해석할 뿐, 양심 그 자체를 창조하진 못합니다. 믿기 힘든 신비를 받아들이는 믿음 또한,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영혼의 가장 고결한 결단이지요.”

“믿기 힘든 일을 밎는 것이야 말로 진정헌 믿음 이라는 말씀 귀변 같지만 가슴을 우리는 그 무언가 있기는 합니다. ”

” 제퍼슨 의원 당신이 그렇게 존경 해 마지 않는 존 로크 선생이 기독교 에서의 이적 과 기적 등 신비로운 현상을 인간 이성으로 설명 할 수 있고 이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는 사실 알고 계시오?
“금시 초문이올시다.  그럴리가… 이성을 중시한 로크 선생이 성경속의 ‘기적’과 ‘계시’를  합리적으로 해석했다니…”

“로크의 말년 저작인 ‘기독교의 합리성’이라는 책 가지고 계시지요?
“제 서가에 꽂혀 있습니다.”
” 제대로 읽지 않으신 게요. 아니면 읽으셨어도 잊어 버렸거나…”

그랬다. 존 로크는 말년에 저술한 ‘기독교의 합리성'(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1695년)이라는 책을 통해 이성과 신앙은 대립하지 않으며, 성경의 핵심 메시지와 기적, 계시 모두 이성적으로 입증 가능하고 합리적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책이 기독교 사상을 비판 비난한 책으로만 알고 있었다.

존 로크가  기독교의 초자연적 요소들을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낸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남들이 흥분만 했을 때 캐럴은 이책을 너무도 꼼꼼히 읽었던 것이다. 런던 시절의 일이었다.

로크는 신이 인간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방식인 계시 (Revelation) 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 대신 이성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명확히 분류했다.
그는 이성에 반하는 것(Contrary to Reason): “1+1=3″이라거나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한다” 같은 모순된 주장은 계시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도구인 이성을 파괴하는 계시는 진짜 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계시를 구분 하면서  이성 위의 것(Above Reason)을 상정했다. 이적과 기적이 그것이다 .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 예수의 구원 등은 인간의 순수한 이성만으로는 유추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로크는 이를 ‘이성을 초월했지만, 이성에 반하지는 않는 진리’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검증 도구로서의 이성을 상정 했다.   로크는 어떤 계시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정말 ‘신으로부터 온 진짜 계시인가’를 판별하는 최종 검증관은 결국 인간의 이성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기적(Miracle)을  해석하면서 로크는  ‘계시를 증명하는 합리적 신분증’ 이라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성론자나 이신론자들은 기적을 자연 법칙을 깨뜨리는 미신으로 보아 거부했지만, 로크는 오히려 기적을 이성위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합리적인 증거(Evidence)로 수용했던 것이다.

그 논지가독특했다.  평범한 인간이 “내가 신의 대리인이다”라고 주장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눈먼 자를 뜨게 하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한다면, 이성적인 인간은 ‘이 사람의 배후에 자연 법칙을 움직이는 신이 있구나’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논지였다.

로크는 기적을 국가의 무력이나 강요 없이, 인간이 이성적 관찰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실증적 증거라고 해석했다. 즉, 기적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신비주의가 아니라, 이성을 설득하는 ‘시각 자료’인 셈이라는 얘기다.

그는 성걍의 가치를 무한한 것이라고 했다. 그 의 성경(Scripture) 해석은 “단 하나의 단순하고 합리적인 핵심”이라는 말로 요약 된다.  당시 기독교는 복잡한 삼위일체 논쟁이나 난해한 신학 교리로 교파가 갈라져 싸우고 있었다. 로크는 성경을 철저히 경험론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해석하여 교리를 단순화했다.

로크는 성경이 요구하는 구원의 필수 조건은 복잡한 신학이 아니라 “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임을 믿고, 그의 도덕적 가르침에 따라 참회하는 삶을 사는 것” 단 하나뿐 이라고 주장했다. 복음서를 분석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다만 성경을 이성의 한계를 보완하는 지침서로 보았다는 점이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가 이성이 발낟하지 못한 대중 들을 이성으로 끌어 들이는데 최고의 수단이기도 하다고 했다. .

본래 자연법과 도덕은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지만, 일상에 바쁜 대 다수의 평범한 대중(노동자, 농민 등)이 철학자처럼 심오한 사색을 통해 이를 깨닫기는 어렵다.

” 신은 모든 인간이 쉽게 도덕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성경이라는 명확한 텍스트 형태로 자연법을 요약 제공해 준 것입니다.” 성서에 관한 그의 결론이다.

로크는 이성을 배제한 채 “신에게 직접 계시를 받았다”며 감정적 체험만 앞세우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을 ‘열광주의자(Enthusiasts)’라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 근거 없는 영적 체험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을 기만과 오만에 빠뜨릴 뿐이며, 모든 영적 체험은 반드시 성경의 문자와 합리적 이성의 통제 하에 검증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존 로크에게 기독교는 미신이나 맹목적 복종의 종교가 아니었다. 그는 “신은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에게 결코 비이성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기적과 계시는 이성을 파괴하는 현상이 아니라, 이성의 한계를 보완하고 인간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신이 정교하게 설계한 장치로 해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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