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케도니안과 미국 선교 본부–
데이즘과 예정설 그리고 화채설
안동일 작
토마스 제퍼슨은 잠깐이라고 했지만 며칠 뒤 찰스 캐럴이 그라프 하우스를 찾아 성사된 두사람의 민남은 잠깐이 아니었다. 오후 내, 서너시간이나 계속 됐던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은 천부인권에 대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 양심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고 인식을 공유했다.
자연 서로의 신관(神觀) 종교관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냉정했고 냉철했던 제퍼슨의 그것이 따뜻해 지고 유화적으로 변했다. 전통적인 유럽식 이신론(Deism)에 따라 신, 창조주를 ‘우주라는 정밀한 시계를 만들고 태엽을 감은 뒤 뒤로 물러선 냉담한 시계공’으로 보았던 그의 신관이 조금 더 따뜻한 ‘선하신 창조주’ (Benevolent Creator)로 변했던 것이다.
제퍼슨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독립 선언서의 대략의 내용의 골자와 순서에 대한 구상은 끝나 있었는데 첫 번째 대목인 인간의 자유의지며 천부인권이 어디서 비롯 됐냐고 하는게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 막혀 있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찰스 경, 인간의 평등성과 자유의지가 창조주가 창조 할 때부터 그냥 주어졌다고 하기엔 뭔가 미진 하고 또 신 (God)에 의해서 주어 졌다고 하면 모든 것이 특정 신에 의해 예정 돼 있다고 주장하는 특정 계파의 손을 들어 주는 격이 될 듯 싶고… 그리고 창조주라는 표현을 쓰면 대뜸 불경스럽다고 선언문을 던져 버릴 위인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 해야 될것 같고…”
“그렇네요, 그냥 창조주 하면 나 부터도 섭섭한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 나또한 창조주 하면 불경하게 느끼는 사람 중 하나이기는 해도 제퍼슨 선생의 원려가 십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신을 상정하신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 됩니다.”
“신이라고 표현은 해야 겠지요?”
“ 그래야 겠지요. 신을 빼고 나면 이 세상이 설명 되지 않습니다.”
“ 그러시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제퍼슨이 자신의 생각을 이어 갔다.
“‘그런데 ‘God’이라는 단어만 덜렁 쓰면, 저 뉴잉글랜드의 깐깐한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네 교파의 신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 않겠습니까? 선언서에 적힐 인간의 권리는 특정 종파를 넘어 보편의 이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생각 입니다.”
제퍼슨은 인간의 이성을 낮은 것으로 폄훼 하는 개신교의 예정설에 대해서는 극렬하게 반감을 표하고 있었고 반기를 들고 있었다. 찰스는 내심으로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명목상 제퍼슨은 성공회에 적을 두고 있었다. 성공회도 예정설에는 고개를 흔드는 편이었다.
따지고 보면 예수회가 탄생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이른바 종교개혁 시기 당시 개혁파들이 내세웠던 것이 성서 중심의 예정설이었고 기존 가톨릭은 사람 중심으로 타락했다는 맹렬한 비난 이었다. 로욜라와 하비에르는 이에 맞서 가톨릭과 교황을 수호하기 위해 규율과 신앙 그리고 소정의 학문으로 무장된 청년들을 모아 ‘캄파니아 드 지저스’ (예수의 동반자 전우)를 설립했던 것이다.
“천주 앞에 붙는 수식어라…”
캐럴은 잠시 생각을 굴려야 했다.
사실 영어권 가톨릭 신자들도 하나님을 ‘God’이라고 불렀다. 다만, 미사때는 라틴어로 테오스라고 표현 했다. 당시 미국 내에서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을 향해 “너희는 성경의 하나님(God)을 믿는 게 아니라 교황을 숭배하는 이단이다”라며 ‘God’이라는 단어의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곤 했다.
사실 성경 원문에는 ‘God’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저 번역된 영어 단어일 뿐이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문 성경에는 엘로힘(Elohim), 야훼(Yahweh), 테오스(Theos) 같은 단어가 쓰였고, 이를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하면서 게르만어 계열의 어원을 가진 ‘God’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쓴 것이다.
영국의 청교도들과 이 땅의 개신교도들은 마치 ‘God’이라는 단어 자체가 자신들만의 전유물 인 양 내세우면서 자신들만 구원하기로 예정한 옹졸한 신으로 만들고 있다는 제퍼슨의 판단은 찰스에게는 천군 만마였다. God 이라고 만 쓰면 .특정 기독교. 특히 예정설을 믿는 극단적 개신교 파벌들의 국가를 세우자는 뜻으로 오해받을까 봐 수식어에 고민 하고 있다는 제퍼슨이 찰스 로서는 고맙기 짝이 없었다.
‘신은 원래 그렇게 자연스레 홀로 존재 하셨는데…’
이렇게 되 뇌이자 문득 찰스는 그들이 독점하려는 ‘God’ 대신, 가톨릭의 전통 교부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Natural Law) 철학의 보편적 개념을 담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유학시절 무척이나 빠져 들었던 자연법 사상. 아리스토 텔레스가 예수를 만나면서 시작 돼 스콜라 학파로 이어져 꽃을 피웠던, 인간을 포함한 세상 자연계를 모두 만든 신이 그 자연에 그렇게 오롯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
“태초의, 원래의, 유일한 의미를 다 담은 내추럴(Natural), 자연 (Nature)계통의 단어는 어떨까요? 태초의 원인이자, 만물에 깃든 유일하고 근원적인 신”의 개념을 담은…”
“그렇습니다. 찰스경. 그거 였습니다.”
캐럴의 제안에 제퍼슨이 대뜸 무릎을 쳤다.
당시 이신론자들과 철학자들에게 ‘Nature(자연)’는 단순히 풀과 나무가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거대한 이성과 질서”를 뜻했다.
제퍼슨은 이내 소리치듯 말했다.
, “그렇다면 ‘자연의 신(Nature’s God)’이 어떻겠습니까? 인간의 이성과 우주의 법칙을 만든,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거대한 창조주 말 입니다.”
“그거 아주 좋은 표현이오, 제퍼슨 의원”
“그리고 그 앞에 누그도 부인 할 수 없는 세상의 질서 자연의 법(Laws of Nature)을 적는 겁니다. 됐습니다. 역시 일등 시민 찰스 선생님이십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논의 끝에 등장한 것이 바로 실제 독립선언서 첫 문장에 등장하는 “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 (자연법과 자연의 신)”이었다. 특정 종교의 경전에만 나오는 신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그 속에 법칙을 부여한 태초의 거대한 신”이라는 의미로 ‘Nature’s God’을 쓴 것이다.
제퍼슨이 책상에 놓여 있던 펜을 들어 달필로 그 단어들을 큼지막하게 쓰고 캐럴을 바라보던 순간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서로 두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여담이지만 두 사람은 당시 어떻게 호칭 했을까? 둘은 동년배가 아니다. 찰스 캐럴이 제퍼슨보다 6살 위였다. 캐럴 1737년생, 제퍼슨 1743년생, 당시 기준으로 6살 차이는 꽤 큰 형님뻘이다.
18세기 후반 서양의 ‘젠틀맨(Gentlemen)’ 계층은 사적으로 아무리 친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헤이, 토마스!”, “어이, 찰스!”라고 이름을 막 부르지 않았다. 식민지도 마찬가지.
평생을 함께 한 정치적 동지이자 절친이었던 제임스 매디슨과 제임스 먼로조차도 사석에서 서로를 “매디슨”, “먼로”라고 성(Last Name)으로 부르거나 서신에서는 항상 “My Dear Sir(나의 친애하는 경)”으로 시작했다.
토마스 제퍼슨을 “톰(Tom)”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세상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적으로 대화할 때는 서로를 “Mr. Jefferson”, “Mr. Carroll”이라고 불렀고, 대화 중간중간 대답하거나 상대의 의견을 환기할 때는 “Sir(각하, 경, 선생)”를 무수히 붙였다.
이 “Mr.”와 “Sir”를 한글 대사로 옮길 때 ‘제퍼슨 씨’, ‘캐럴 씨’라고 하면 갑자기 현대 회사원 같아지고, ‘제퍼슨 선생’이라고만 반복하면 너무 건조해 진다. 그래서 작가는 포에틱 라이선스를 발휘해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서로를 존중하던 격식을 살짝 빌려오기로 했다. 그랬더니 문장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부자 뻘인 벤자민 프랭클린과 존 캐럴 에서도 그랬다.
God 앞의 수식어가 내이쳐로 낙찰 된 뒤 제퍼슨이 물어 왔다.
“캐럴 경, 네이쳐의 갓이 인간에게 선물한 것 가운데 가장 으뜸의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끼? 저는 자유의지 라고 생각 합니다. 지금 쓰는 선언서도 내가 존경하는 로크의 자유의지 사상을 근간으로 담으려 합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지닐 수 있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에 기독교를 내 안에서 폐기 했을 겁니다. 천주교와 캐럴 경은 이 자유의지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요? ”
이신론자 다운 얘기였다. 다행인 것은 제퍼슨이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이해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찰스의 입장에서 그랬다.
체퍼슨의 질문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 그리고 자유의지가 어디서 비롯 됐느냐는 근본적이 질문이었다. 왜 라는 의문 까지 포함돼 있는 질문이었다.
“자유 의지를 그토록 강조 하시니 제가 더 반갑습니다.”
“어떻습니까? 독실한 신자이신 선생은 다르게 생각 하실텐데 그 얘기를 들려 주시지요.”
캐럴은 천주가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이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태초에 주신 선물이 자유의지 였다는 생각은 오래 전 부터 하고 있었다.
찰스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자 굴레 이기도 했던 자유의지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차분히 설명 했다.

자유 의지야 말로 어린 시절부터 찰스를 신앙에 묶어둔 교두보 였다. 자유의지에 대해 어린 찰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는 부찬 캐롤옹이었다. 왜 전능하신 천주 께서 악을 없애시지 못하냐는 당연한 질문을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 때문이라고 대답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어린 찰스의 뇌리에는 이 자유의지와 천주의 은헤가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유의지의 가장 바람직하고 보편적인 표현이 이성과 양심이다. 천주교를 포함하는 기독교에서 인간의 이성과 양심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도구이자, 죄로 인해 타락하여 구속(회복)이 필요한 영역으로 이해된다.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전적인 신뢰는 경계하는 이중적인 관점을 가진다.
그 가운데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고유한 선물로, 진리를 탐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요한 도구다. 그런데 교만해진 이성은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판단의 주인으로 삼는 오류를 범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발아된 인간의 이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겸손과 감사다.
이날 찰스가 토마스에게 간곡히 전한 신앙적 진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성경은 타락한 이성을 맹신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고 구속된 이성’을 바탕으로 성경적 진리를 깨달아 갈 것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창조주가 심어주신 보편적인 양심이 있어, 선과 악을 구별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양심 역시 죄로 인해 오염되어 마비되거나 문화와 상황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찰스기 배웠고 그가 체화한 종교관이었다. .
따라서 신앙인의 입장에서 인간의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성령의 조명에 비추어 건강하게 교정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천주교는 이성과 양심을 버려야 할 악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귀한 능력들이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기준 안에서 바로 서고 회복(구속)되어야, 비로소 참된 선과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역사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마스 제퍼슨이라는 희대의 천재, 희대의 재주꾼을 한걸음 이라도 신앙의 길에 들어 서게 하려면 그 못지 않은 천재 교부들이 무엇을 어떻게 고민 했는지 들려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재퍼슨은 매우 흥미 진진한 표정으로 캐럴의 설명을 경청 했다. 분명코 군데 군데 아는 얘기 였을 텐데도 아는척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찰스의 온화한 목소리로 물 흐르는 초기 기독교 역사를 스펀지 처럼 흡수 했던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인간의 자발적 선택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으나, 시대가 흐르고 교리가 체계화되면서 ‘인간의 타락’이 이 세 가지 능력에 미친 영향에 대한 해석이 정파마다 크게 달라졌다.
초기 교부 시대 (1~4세기)에는 자유의지와 이성의 옹호 경향이 컸다. 초기 교부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과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을 상대로 복음을 변증해야 했다. 이들은 스토아 철학 등의 운명론(결정론)에 맞서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선택의 자유를 강력히 옹호했다.
이성은 신을 인식할 수 있는 고유한 통로로 긍정되었다. 유스티누스, 이레네우스, 오리게네스 등 초기 교부들은 인간이 꼭두각시가 아니며, 자발적으로 신을 따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완전한 선택권 자유의지을 가졌다고 가르쳤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신의 심판과 상벌도 불공정하다는 입장이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예수를 몰랐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성 역시 신의 ‘로고스(Logos, 말씀·이성)’의 씨앗이 뿌려진 결과라고 보았다. 또 이방인이라도 율법 없이 마음에 새겨진 도덕적 기준(양심)을 통해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성경적 전통을 이어받았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학적 대격돌이 일어났다. 영국의 수도사 펠라기우스와 북아프리카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논쟁이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는 그 개인의 문제일 뿐이며, 인간의 이성, 양심, 자유의지는 타락 후에도 온전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죄를 짓지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에 맞서 원죄(Original Sin) 교리를 정립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은 어두워졌고, 양심은 오염되었으며, 자유의지는 죄의 노예가 되었다고 보았다.타락 전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나, 타락 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구원은 신의 주권적인 은혜(Grace)로만 가능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의 은혜가 먼저 임할 때만 회복되어 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악을 행하는 이유는 감정(정서, emotions)이 이성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물욕이나 재물욕 그리고 육체적인 욕심에 빠지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플라톤처럼, 어거스틴도 인간의 이성이 감성을 다스려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찰스는 어거스틴이 신이 전능 하다면 왜 악이 존재 하느냐면서 선신과 악신이 동등한 힘으로 존재한다는 마니교에 빠졌던 일화를 잠깐 들려 주었다. 어거스틴이 회심한 이유도 자유의지 였다고 전해 줬다. 꽤 큰 감동을 받는 눈치였다.
교회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후 서방 기독교는 인간의 자율성보다 신의 은혜의 절대성을 우위에 그리고 중심에 두게된다. 신앙의 새 출발이기도 했다.
중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입되면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기독교 신학 체계 안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화두였다. 이를 중세 스콜라 철학이 추구한 이성과 신앙의 조화 라고 지칭된다.
대표적인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혜는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타락으로 이성과 의지가 상처를 입었지만 전적으로 파멸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이성은 자연 세계의 진리와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위대한 교부 아퀴나스는 양심은 신이 부여한 도덕적 성향(신데레시스)을 지니고 있어 선을 추구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성의 판단을 따라 최고의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은혜를 통해 궁극적으로 완성된다고 설파 했다.
후기 중세에 오면서 아퀴나스의 이성 중심주의에 반대하여 의지의 우위를 주장하는 경향이 다시 강해 진다. 신의 의지도, 인간의 의지도 이성에 종속되지 않는 절대적인 자율성을 지닌다고 보았는데 이는 이후 종교개혁 사상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16세기에 불어 닥친 종교개혁은 단절과 연속성의 갈림길 이었다. 개혁자들은 중세 가톨릭교회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지나치게 낙관했다고 비판하며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철저한 은혜 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창했다.
에라스무스 이래 인문주의 에서는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은혜가 협동하는 것” (신인협동설)이 주류를 이뤘다면 마르틴 루터에 이르면 “인간의 의지는 ‘노예의지’ 일 뿐이며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오직 은혜론이 대두된다.
마르틴 루터에 이어 장 칼뱅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주장했다. 칼뱅은 인간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 선을 행하거나 신을 선택할 자유가 없으며, 구원은 오직 신의 주권적 선택(예정론)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성과 양심 역시 왜곡되어 신령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보았다.
가톨릭은 이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타락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약화되기는 했으나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신의 은혜에 인간이 자유의지로 동의하고 협력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트리엔트 공의회):
17세기 이후 아르미니우스 주의에 의해 개신교 일부에서도 칼뱅의 절대 예정론에 반발하여, 신의 은혜가 선행하지만 인간이 자유의지로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예지예정’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는 찰스는 제퍼슨 가장 존경한다는 존 로크의 이야기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된 기독교 역사 게인 교습 강의의 피날레를 장식 하려 했다. 제퍼슨은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존 로크의 사상을 신봉했고 실제 독립선언서 전반에 그의 사상과 철학으로 채웠다. 그런데 제퍼슨이 화제를 바꿨다.
“ 인간 자유의지 와 신의 권능에 관한 가톨릭의 역사가 매우 진지하면서도 현실적이군요, 그런데 찰스 선생은 화채설을 믿으십니까?” 제퍼슨이 뜬금 없이 이 질문을 해 왔던 것이다.
무슨 뜻에서 어떤 의도로 묻고 있는지는 짐작이 갔지만 캐럴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정쩡하게 답했다가는 오늘 들인 공이 수포로 돌아 가겠다고 생각 됐기 때문이다.
“물론이죠, 믿고 있습니다. 영성체 때 받는 떡은 예수님의 몸이요, 포도주는 피가 틀림 없습니다..”
천주교의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은 성찬례 시 사제의 축성 기도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으나, 그 본질(실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몸(성체)과 피(성혈)로 완전히 변화한다는 교리다. 개신교의 예정설 만큼 논란이 많은 교리 중의 하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