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폭증에 원전 재평가
마이크로소프트, 스리마일섬 원전 전력 20년 구매
사고 원자로 아닌 피해 없던 원자로 재가동 추진
미국에서 30여 년간 멈춰 있던 원전 부활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자, 한동안 밀려났던 원전이 다시 미국 전력 수급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미국 원자력 산업이 AI 시대의 전력난과 기후 대응 요구를 배경으로 재평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마지막 원전 건설 붐은 1990년 무렵 끝났다. 이후 미국 전력 산업의 무게 중심은 천연가스와 풍력, 태양광으로 옮겨갔고, 원전은 비용 부담과 안전성 논란 속에 전력 정책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력 수요가 다시 빠르게 늘고,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면서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보글 원전을 운영하는 서던컴퍼니의 크리스 워맥 최고경영자(CEO)는 “지금의 수요를 감당하려면 모든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며 원전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글 원전은 미국에서 가장 최근에 신규 원자로가 들어선 원전이다.
원전은 한때 미국 사회에서 미래 에너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원전 건설비가 치솟고 전력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분위기는 식기 시작했다.
원전 불신을 키운 결정적 사건은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였다. 당시 부분 노심용융 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전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1979년부터 1988년 사이 계획됐던 원전 67개 사업이 취소됐다.
최근에는 정반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날씨와 시간대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전력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면서 원전이 기후 대응 논의에 다시 들어왔다.
여론도 바뀌었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약 60%는 원전 추가 건설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2020년 43%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도 원전에 눈을 돌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래드 스미스 부회장 겸 사장은 “우리는 분명히 더 많은 원전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원전에 낙관적인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원전 운영사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20년 전력 구매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스리마일섬 원전에서 사고 피해를 입지 않았던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리마일섬은 미국 원전 사고의 상징처럼 남아 있지만, 이번에 재가동이 추진되는 것은 1979년 사고가 난 원자로가 아니다. 해당 시설은 현재 ‘크레인 클린 에너지 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만 원전 부활의 걸림돌은 여전히 비용과 공사 기간이다. 원전은 역사적으로 건설비가 많이 들고 완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 원전 업계로서는 새 원전을 다시 대규모로 지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비용과 공사 기간 문제를 넘기 위한 대안으로 소형모듈원전, 이른바 SMR이 주목받고 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가 작고, 공장에서 반복 생산하듯 제작·조립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을 목표로 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형 원자로 건설에 힘을 싣고 있다. WSJ에 따르면 행정부는 이번 10년 안에 대형 원전 사업이 시작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웨스팅하우스 원자로 건설에 8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새 원전 건설과 별개로,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과 출력 향상도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새 원전을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이미 가동 중인 원전에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방안이 중요해지고 있다.
원자력 활용 논의는 우주 개발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르면 2030년까지 달 표면에 원자로를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달에서는 2주간 밤이 계속되기 때문에 태양광과 배터리만으로 장기 활동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핵융합 발전도 원자력 전력 공급의 한 축으로 거론된다. 상업화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많지만, 헬리온에너지와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 등 미국 민간 기업들은 2030년대 초 상업용 전력 생산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원전 부활이 실제 대규모 건설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비용, 인허가, 안전성, 지역 주민 반발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나 AI가 전력 수요 구조를 바꾸고, 탄소 감축과 에너지 안보가 동시에 요구되면서 미국은 다시 원전이라는 오래된 선택지를 꺼내 들고 있다고 신문은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