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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컬럼> 철학이 없는 지식이 만든 야만의 시대

 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밀양이 고향인 후배가 봄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사진 속 밀양의 거리와 도심, 옛 가옥 정원에 활짝 핀 벚꽃. ‘아,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지겨웠던 겨울을 한 방에 날려버린 그 만개한 벚꽃 사진에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데 꽃만큼 좋은 건 없다.

그런데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산업이 하나씩 멈춰 서고 생산이 곤두박질치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전쟁을 시작했을까. 왜 멈추려 하지 않을까. 매일 쏟아내는 폭탄과 미사일로 얼마나 많은 시설을 부수고 사람을 죽였는지 자랑하는 데만 열중한다.

현대 문명은 과거 어떤 황금기보다도 압도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왕족이나 귀족만 누리던 의학 혜택과 정보 접근성을 이제 대부분의 사람이 누린다. 옛날에는 ‘신분’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했지만 이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교통과 통신,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지식의 전파와 소통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아 교육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기술적 진보를 이끈 현대 교육이 생존과 경쟁을 위한 ‘도구적 지식’에만 몰두했다는 것이다. 인간 내면의 단단함을 기르는 ‘수신(修身)’은 아예 가르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지역사회와 이웃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강했지만, 이젠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되면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공동체 의식이 해체되고 있다. ‘나’는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빈곤해졌다.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이 시대에 인류는 깊이 사유하고 기다리는 능력을 잃어 가고 있다. 철학이 없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지혜는 부족하고, 연결은 밀접하지만 유대는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은 가장 풍요롭지만 가장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특정 목적을 위해 침략을 하고 건물을 파괴하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자랑을 하는 괴물들이 날뛰어도,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만 계산할 뿐 인류애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언론도, 국가도, 지도자도 없다. 철학 없는 지식 교육이 인간을 맹수보다 더 폭력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배우지 못했다. 오로지 성적을 올리고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지식 암기만 했다. 나와 공동체, 친구, 부모, 형제, 친척, 선생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그저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부부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부딪히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심지어 폭력적인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시대의 진보와 함께 우리 속의 폭력성도 진보했던 것이다.

조선 왕조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교육이었다. 먼저 사람이 되고, 그다음으로 지식을 쌓으며, 마지막으로 그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단계적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유년기에는 소학(小學)으로 기초 예절과 글자, 그리고 ‘사람의 도리’와 습관을 익혔다. 청소년기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해 논리적 사고와 문장력을 키우고, 개인 수양을 넘어 국가를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학문을 배웠다. 성인기에는 배운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자세로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다. 덕분에 세종 때 기틀을 다지고 정조 때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두 번의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진보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과학적 폭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모든 불행의 뿌리는 철학 없는 지식만을 가르쳐 인간을 더욱 맹수화하는 교육에 있다.
벚꽃이 피는 봄처럼, 우리 마음에도 따뜻한 변화가 필요하다. 비록 미국 사회에서 소수 중의 소수이지만 한인 커뮤니티 차원에서 먼저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교육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해 보면 좋겠다. (동찬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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