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봄이다. 한 달 넘게 우리를 괴롭히던 눈더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햇살은 따뜻하게 온기를 퍼뜨린다. 동네 지인의 집 마당에는 겨울의 끝자락을 뚫고 매화가 피었다. 봉오리 몇 가지를 꺾어 병에 담아 주었고, 거실 한가운데 두고 매일 들여다본다. 그렇게 봄은 꼭 다시 온다. 아무리 무거운 겨울이라도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겨울 속에 있다.
4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멈출 기미가 없고, 미국의 침공에 10년 동안 맞서 싸웠던 아프가니스탄은 이웃 파키스탄과 전쟁 중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마침내 숙적 이란을 맹폭했다.
가공할 폭격으로 이란은 초토화되었고, 최고 지도자를 비롯하여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은 걸프만의 미군 기지와 에너지 시설을 보복 공격했고, 호르무즈 해협까지 봉쇄했다. 전 세계 원유의 20%가 멈춰 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치솟은 에너지 가격은 더 오르고, 세계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내적으로도 위기다. 반이민 정책은 미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었다. 농장과 식당, 공장마다 일손이 모자라고 관세로 수입물가까지 폭등했다. 여기에 전쟁 비용 지출이 폭증하면서 국채 이자는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이미 국방비를 앞질렀다.
이란 전쟁 첫 일주일 동안에만 113억 달러가 투입됐고, 하루 20억 달러씩 돈이 타들어간다. 이대로 6개월만 이어지면 최소 3천억 달러의 군비가 소모될 것이라고 한다.
18세기 경제학자 아담 퍼거슨은 한 나라의 부채에 대한 이자총액이 국방비를 넘어서면 그 나라는 몰락한다고 했다. 역사학자 닐 퍼거슨은 이를 “퍼거슨 리밋(Ferguson Limit)”이라 이름붙이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프랑스 부르봉 왕조, 오스만 제국, 대영제국과 같은 강대국의 몰락을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부채를 줄이지 않으면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 임계점을 이미 2024년에 넘어섰다. 지금의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나라가 아니다. 사회는 불안하고, 정책은 흔들리며, 동맹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세계인들이 몰려오던 미국은 이젠 서로 떠나려는 나라가 되었다.
미주 한인 사회 역시 불안하다. 서류미비자들은 추방의 공포 속에 일터에서 사라졌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늘고 있다. 합법 체류자 중에서도 ‘역이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이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위기는 언제나 공동체의 힘을 시험한다.
지금이야말로 미주 한인들이 단결하여, 운명 공동체로서 이 위기를 함께 이겨낼 준비를 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시민권을 확보하고,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비즈니스를 제대로 일구며, 정치적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정 관리 능력을 키우고, 각종 세미나와 스터디를 통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로 돕고 배워 가며 끈끈한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미국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첫걸음이다. 겨울이 아무리 길고 혹독해도, 봄은 반드시 온다. 다만 누가 그 봄을 맞이할 준비를 했느냐가 다를 뿐이다. 지금 우리의 각성, 단결, 준비가 미래의 미주 한인사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매화처럼 우리 공동체도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