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찬 (뉴욕 시민참여 센터 대표)
냉전 승리 이후 서구, 특히 미국은 스스로 만든 ‘꿈의 궁전’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의 최종 목적지이고, 결국 모두가 미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오만한 확신이 그 성벽을 이뤘다. 지금 밀리 전 합참의장과 에릭 슈미트, 키쇼어 마흐부바니교수가 공통으로 던지는 경고는 간단하다. 서구의 위기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사상적 오만과 노후화된 시스템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밀리와 슈미트는 미래 전쟁이 드론, AI, 로봇이 지배하는 전장으로 급변했는데도, 미국 국방 시스템은 여전히 느리고 비대한 조달 절차와 구식 무기 중심 사고에 묶여 있다고 비판한다.
마흐부바니는 서방이 “자기만 옳다”는 믿음에 갇힌 채, 아시아, 브라질, 인도, 아프리카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의 시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자세 자체가 전략적 자살행위라고 지적한다.
정치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심해질수록,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니, 권위주의가 오히려 전쟁과 패권 경쟁에는 더 효율적이지 않나”라는 유혹이 고개를 든다. 단기 동원력만 보면 그 말이 맞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가 강조하듯, 미래 패권의 핵심은 민간 혁신을 군사력으로 얼마나 빨리 전이시키느냐에 있다.
AI와 같은 파괴적 기술은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 실패가 허용되는 스타트업 문화, 권위에 도전하는 연구와 토론이 있어야 제대로 자란다. 정보가 억압되고 비판이 봉쇄된 권위주의 체제는, 단기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장기 혁신과 전략 수정 능력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지금의 혼란은 민주주의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그 위에 쌓인 관료주의와 기득권의 안일함이 체제를 갉아먹어 온 결과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개방형 플랫폼을 지키고 고치는 일은, 더 이상 ‘고귀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AI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인 생존 전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이자, 미래 전쟁의 시험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드러난 건, 서구의 고가 무기 체계가 저가 드론·소모전술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허겁지겁 ‘혁신’을 따라가고 있는지다.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는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면서도, 서방 제재에는 대거 동참하지 않으며 “유럽의 전쟁을 세계의 절대 기준으로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이어진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서구의 도덕성에 깊은 의문을 남겼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약 56~60%가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에 반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처에 대해서도 다수가 부정적이다. 상당수는 이 전쟁이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는커녕,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느끼고 있다.
결국 두 전쟁 모두, 서구가 여전히 군사력을 과시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 신뢰·동맹 피로·국내 피로라는 비용이 급격히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2026년 미국 중간선거는 단순한 정당 싸움이 아니다. 질문은 훨씬 더 직설적이다.
“과거의 향수에 기대 버틸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혁신을 감수할 것인가.”
여론조사들은 이란 군사 행동에 대한 반대 여론, 해외 개입에 대한 피로감,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외교·안보까지 정파적 싸움에 휘말려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유권자가 던지는 표는, 미국이 어떤 리더십과 전략에 미래를 맡길지에 대한 신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같은 과거 회귀형 구호에 표를 던지는 건, 사라진 세계에 집세를 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존 진영의 안일한 현상 유지, “그래도 우리가 맞다”는 자기 위안 역시 답이 아니다. 진짜 필요한 건, 세계를 미국식으로 개조하겠다는 오만을 버리고, 다극화된 세계에서 실리를 챙기면서 동맹과 경쟁국을 동시에 관리할 현실 감각, 관료제를 해부할 의지, 권위주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할 최소한의 민주적 본능이다.
지금 미국이 찾아야 할 인물은, 카메라 앞에서 말 잘하는 스타 정치인이 아니다. 썩어가는 제도와 낡은 국방·외교 시스템을 과감히 도려낼 냉혹한 집도의다.
표를 던질 때, 분노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질문은 이거다.
“누가 나와, 내 세대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냉정한 답이 모일 때, 미국은 비로소 무너지는 꿈의 궁전에서 걸어 나와,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동찬 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