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미 동북부의 이번 겨울은 유난히 가혹하다. 1월 말 쏟아진 폭설은 채 녹기도 전에 겹겹이 쌓여 거대한 빙벽이 되었고,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폭설은 도심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처음에 낭만적으로 보이던 순백의 눈은 이제 주차 공간을 잠식하고 차량을 파괴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흰 눈을 보며 감탄하는 대신 원망을 쏟아낸다. 이 혹독한 자연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단면과 기이할 정도로 닮아 있다.
물가는 폭등하고 노동력은 증발했다. 엡스틴 파일에 기록된 권력층의 추악한 행태는 상식의 범주를 넘어섰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관세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보도가 크게 다뤄졌다. 그러나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래서 물가가 내려간다는 건지, 단지 정치적 견제일 뿐인지 명확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책은 여전히 논쟁 속에 있고, 시민은 그 결과가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분간하기 어렵다.
엡스틴 사건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앤드루 왕자는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미국의 최고위층 인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 이루어니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법은 모두에게 같은가, 아니면 어떤 이들에게는 예외인가. 시민의 눈에는 그 경계가 흐릿하다.
문제는 개별 사건이 아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명확히 가려내기 어려운 환경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사실상 사회적 빙하기를 살고 있다.
과거의 독재가 진실을 억압하고 감추는 차단의 방식 이었다면, 현대의 권력과 집단들은 ;혼란의 방식을 택한다. 수많은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프로파간다(대중선전)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능력을 마비시킨다. 진실은 이제 더 이상 통합의 가치가 아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진실은 재단되고, 모든 사건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전락했다.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도구까지 더해지며 가짜 뉴스와 왜곡은 더욱 정교해졌고, 사회는 더 잘게 쪼개져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길가에 쌓인 눈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그것은 딱딱한 빙하가 되어 우리의 일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사회적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과 권력이 본질을 흐리고, 시민들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암초처럼 거대해져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상’ 너머를 꿰뚫어 보는 힘이 절실하다. 복잡한 미디어의 메시지를 왜곡하는 매개와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철학적·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진실을 갈구하는 시민의 자세가 회복되어야 한다.
빙하기는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이 사회적 빙하기는 예상보다 훨씬 길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하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진실을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연대에서 시작된다.
치우지 못한 눈이 얼어붙어 발길을 묶듯, 외면한 진실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뜨거운 논쟁이 아니라, 차갑게 식어버린 판단력을 되찾는 일이다. (동찬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