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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황혼기와 같은 오늘의 미국

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로마 공화정은 5세기 동안 ‘원로원과 로마 시민(SPQR)’이라는 깃발 아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존속했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 이 견고한 시스템은 단 한 사람,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했다. 250년을 맞이한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이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와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무너뜨린 과정은 단순한 무력 쿠데타가 아니었다. 그는 공화정 내부에 축적돼 있던 모순을 정교하게 활용했다.

첫째, 포퓰리즘과 민중의 분노를 조직했다. 당시 로마 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토지 집중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기득권인 원로원에 맞서는 ‘민중의 대변자’를 자임하며, 제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생활고를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대체했다.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한 열광으로 치환된 것이다.

둘째, 원래 로마 군대는 공화국과 법에 충성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군인들의 생계와 토지,전리품을 장군 개인이 보장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충성의 방향은 점차 ‘국가’가 아닌 ‘사령관’으로 옮겨 갔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널 수 있었던 힘은 공화정의 공권력이 아니라, 카이사르에게 사적으로 묶인 제13군단의 군사력이었다.

셋째, 비상사태를 일상 정치의 수단으로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전쟁과 위기를 명분으로 ‘종신 독재관’에 올라섰다. 원래 한시적이고 예외적이었던 독재관 직무를 상시적 지위로 바꾸면서, 공화정의 핵심 원칙인 임기제와 권력 분립은 사실상 기능을 잃었다.

카이사르 사후,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의 외형과 제도를 상당 부분 유지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1인 통치 체제인 제정을 완성했다. 시민들은 혼란스러운 내전 대신, 안정과 질서의 독재를 선택했다. 로마는 그렇게 광화정을 서서히 버리고 황제의 시대로 들어섰다.
오늘날 미국의 모습은 공화정 말기의 로마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250년 전 건국의 주역들이 설계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사실상 무너졌다.

첫째, 정치적 양극화와 증오의 정치는 로마의 파벌 싸움을 연상시킨다. 상대를 협상과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이 되었고 의회 민주주의의 기반인 대화와 절충은 사라졌고 상대 진영을 굴복시키는 전쟁만 남게 된다.

둘째, 법과 제도보다 특정 지도자의 의중이 우선하는 풍토가 굳어졌고, 사법부와 행정부의 독립성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 이는 공화정 말기, 공익보다 계파 정치에 몰두하며 무능을 드러낸 로마 원로원의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셋째,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과 절차를 부정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둥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제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수록, 시민들은 더 쉽게 ‘강력한 한 사람’에게 해결을 위탁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로마 시민들이 ‘빵과 서커스’에 만족하며 권력의 집중을 방치했을 때, 공화정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오늘의 미국 시민에게 주어진 과제 역시 그리 복잡하지 않다.
첫째, 민주주의는 느리고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이 비효율 자체가 권력 집중을 막는 최소한의 방파제다.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카이사르형 인물’에게 열광하기보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하고 고치는 데 시간을 들이는 인내가 필요하다.

둘째, 가짜 뉴스와 선동, 음모론은 고대 로마 광장에서 웅변가들이 동원하던 정치적 무기와 다르지 않다. 파편화된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과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비판적 사고가 지금의 디지털 광장에서 더욱 요구된다.

셋째, 민주주의는 투표와 법 절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웃을 곧바로 적으로 상정하지 않는 일상적 포용성,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최소한의 존중이 양극화의 파국을 막는 마지막 안전장치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비슷한 구조와 패턴을 달리한 채 되돌아온다. 로마 공화정의 몰락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 무기력, 그리고 시민들의 방관에서 시작됐다. 미국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종주국’이라 부를 자격을 유지하려면, 지금 손에 쥔 한 장의 투표용지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각자의 루비콘강 앞에 그어진 마지막 방어선임을 자각해야 한다. (동찬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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