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ICE 요원의 총격에 의한 르네 니콜 굿 이라는 여성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미국 사회의 파탄 난 민주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사람이 죽었다. 마땅히 국가의 공권력이 적정했는지, 사실관계는 무엇인지 밝히는 수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사회는 거대한 두 개의 벽으로 갈라졌고, 각자의 진영은 죽음을 수단 삼아 서로를 향한 증오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미국은 지금 사실(Fact)을 놓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믿음(Belief)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쪽은 공권력의 폭주라며 분노하고, 다른 한쪽은 법 집행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맞선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직 상대를 궤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선동만이 SNS와 미디어를 가득 채운다.
이 현상은 역사 속 집단 광기의 전조와 닮아 있다. 과거 로마의 쇠퇴기나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기에 나타났던 전형적인 징후는 공동체의 공통 분모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국가라는 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논의하는 대신, 누가 노를 잘못 저었는지를 두고 서로를 배 밖으로 밀어내는 데 혈안이 된 형국이다.
미국이 지금 놓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가치는 절차적 정의와 이성적 합의다. 민주주의는 결과의 정당성만큼이나 그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의 공정성을 먹고 산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내 편이 이기면 정의, 네 편이 이기면 음모라는 극단적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역사는 증명한다. 사실을 왜곡하여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고 정적을 제거했던 세력은 일시적인 승리를 맛볼지 모르나, 그들이 만든 광기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덮친다.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정치는 결국 더 큰 혐오를 만들어내며 국가의 근간을 갉아먹는다. 지금 미국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배양된 증오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우리 한인과 같은 소수계(Minority)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거대 정파 싸움이 격화될수록 사회는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가른다. 극우 세력의 결집은 필연적으로 배타적 민족주의를 동반하며, 이는 언제든 소수계를 사회 혼란의 희생양(Scapegoat)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극단적 선동은 이민자 사회를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침입자로 묘사하며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미네소타의 사건처럼 공권력과 이민 행정 이슈가 결합된 사건에서 소수계는 자칫하면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정치적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 미쳐가는 분노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첫째, 이성의 닻을 내려야 한다. SNS를 타고 흐르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와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분노는 전염성이 강하다. 우리 내부에서도 진영 논리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소수계 공동체는 한순간에 와해된다. 사실을 확인하고, 법치와 절차적 정의가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둘째, 진영이 아닌 가치에 투표해야 한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위험하다. 누가 더 보편적인 인권과 진실, 그리고 소수계의 권익을 대변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사실 왜곡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에게는 단호히 등을 돌려야 한다.
셋째, 전략적 연대와 조심스러운 행보가 필요하다. 혼란의 시대에 극단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표적이 되기 쉽다. 우리는 타 소수계 및 합리적인 다수 시민과 연대하여 혐오 반대와 진실 규명 이라는 보편적 가치 아래 뭉쳐야 한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논리적이고 조직적인 목소리로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1월 19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날이다. 그는 분노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분노를 진실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킹 목사가 맞섰던 것은 단지 인종차별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절차와 법,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 구조 그 자체였다. 그는 총이 아니라 진실로, 증오가 아니라 양심으로 싸웠고, “부당한 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정의가 작동하는 과정을 끝까지 요구했다.
미네소타의 비극은 미국에 던져진 엄중한 경고장이다. 진실이 사라진 자리엔 폭정만이 남고, 분열된 나라엔 미래가 없다. 미주 한인들은 이 거대한 폭풍 속에서 증오의 불길을 지피는 땔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성을 지키는 보루가 될 것인가. 역사의 부메랑은 이미 던져졌다. 우리는 그 칼날을 피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동찬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