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복잡하고 심각하다.
2026년의 미국과 인류는 단순한 불황이나 갈등이 아니라, 문명의 방향타 전체가 흔들리는 ‘복합위기’ 앞에 서 있다.
링컨이 연방의 분열을 막고, 루스벨트가 경제 붕괴를 수습했듯,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 거인의 리더십이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위기 그 자체보다, 위기를 키우는 ‘무능하고 편협한 리더십’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문명사적 격변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그 한가운데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보호무역은 물가상승과 공급망 붕괴라는 부메랑이 되었고 세계 질서를 극겹히 해체시키고 있고, AI는 생산성을 높였지만 일자리를 위협하고, 가짜 뉴스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기술의 역설’을 낳고 있고, 기후재앙 앞에서 인류가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달리고 있다.
이 폭풍우 속, 지금 이 나라의 선장은 누구인가. 과거의 위기는 오늘보다 단순했다. 19세기엔 전쟁에서 져도 국토는 남았다. 그러나 핵과 AI, 기후 위기가 얽힌 오늘의 실패는 인류 전체의 퇴보를 의미한다. 이제 대통령의 결정 하나가 단순히 4년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0년의 국가 생존을 가른다.
역사는 이미 가르쳐 주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과 즉흥적 보복 정치는 최악의 대통령을 만든다.
제임스 뷰캐넌은 남북전쟁 직전, “헌법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 결과,나라는 두 동강 났다. 리더의 방관은 중립이 아니라 직무유기이며, 곧 파멸의 다른 이름이다.
링컨의 뒤를 이은 앤드류 존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흑인 인권 보호를 위한 의회의 노력을 거부권으로 막고, 남부 기득권의 편에 섰다. 신념의 독선이 민주주의를 마비시킨 것이다.
이 두 대통령의 실패는 오늘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갈등을 방치하는 회피와, 자기 진영만 돌보는 독선이 결합할 때, 국가는 회복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위기의 시대에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세 가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갈등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뷰캐넌처럼 법 뒤에 숨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AI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관세가 물가를 흔드는 그 현장으로 직접 가서 국민을 설득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통합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대파와 밤새 토론해서라도
합의점을 끌어내는 ‘능동적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의 도덕적 나침반을 바로 세워야 한다. 존슨처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인권과
정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표가 안 되더라도, 100년 뒤 미국의 가치를 지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 대응이든, 기술윤리 확립이든, 대통령은 지지율이 아니라 국민의
생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셋째, 제도와 규범을 존중하는 품격을 보여야 한다. 권력은 칼이 아니라 방패다. 반대편을 적으로 만들며 ‘내 편’만 챙기는 정치는 국가를 병들게 한다. 워싱턴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아
민주주의의 기틀을 닦았듯, 법치의 경계를 지키는 절제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훌륭한 국민이 위대한 대통령을 만든다. 그러나 대통령의 품격과 결단이 그 국민의 위대함을
완성한다. 지금 우리가 찾는 대통령은 완벽한 초인이 아니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비판에 귀를 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 줄 아는 사람이다.
역사는 이 순간의 리더를 냉정하게 기록할 것이다. 그가 ‘제2의 링컨’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제2의 뷰캐넌’으로 추락할 것인가. 대통령의 날, 다시금 링컨과 루스벨트를 생각해 본다. (동찬 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