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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컬럼>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는 힘, ‘연대’와 법

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2026년의 세계는 전쟁, 반정부 시위, 폭력적 국가권력의 남용이 동시에 폭주하는, 말 그대로 혼돈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인간 사회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체념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권력의 기원과 진화를 역사와 생물학의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면, 야만을 반복하지 않는 길 또한 분명히 드러난다.​

탄자니아 곰베(Gombe)에서 침팬지를 평생 관찰한 재인 구달은, 침팬지 사회가 친구, 적, 동맹, 배신이 뒤엉킨 매우 복잡한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알파 메일은 먹이와 짝짓기 기회를 우선적으로 누리며, 폭력과 위협, 그리고 계산된 동맹을 통해 서열을 유지한다.​
그러나 가장 잔인한 수컷이 항상 오래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공포만으로 무리를 다스리려 드는 ‘폭군형’ 알파는, 어느 순간 아래 계급들의 연합과 반격에 의해 처참한 몰락을 맞는다.​

침팬지 세계에서 폭력적 알파의 몰락은 우연이 아니다. 지배에 지친 개체들이 서로를 그루밍하며 유대를 쌓고, 둘, 셋이 연합해 폭군의 허세를 깨는 순간 균열은 시작된다. 물리적 힘이 아니라, 서로의 등을 맡기는 신뢰와 네트워크가 권력의 균형추를 바꾼다.​
이 패턴은 인간사에서도 낯설지 않다. 폭력에 의존한 권력은 단기적으로는 눈부신 장악력을 보여주지만, 공동체의 신뢰와 생존력을 갉아먹는 순간 장기적으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생물학이든 역사든, 공포 위에 세운 성은 안에서부터 무너진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증언해 왔다.​ 로마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는 공화정이 축적해 온 법적 규칙 대신 자신의 의지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정복 전쟁으로 대중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내부의 정적이 있는 지역은 군단의 군화발로 짓밟았다.​​
강자의 등장에 많은 로마 시민은 질서와 영광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공화정의 붕괴와 독재의 제도화, 그리고 끝없는 내전이었다.

1930년대 유럽의 파시즘 역시 ‘우리’와 ‘그들’을 쪼개고, 특정 집단을 체계적으로 사냥하는 국가폭력 속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이 사실상 정지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권력이 법과 제도를 떠나 특정 지역과 계층을 표적으로 삼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의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헌법과 법, 그리고 공동체를 묶던 ‘사회적 계약’은 그때 파기되고, 공포와 냉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침팬지 사회에서 폭군 알파를 끌어내리는 힘이 개별적 근육이 아니라 ‘그루밍’이라는 유대의 축적에서 나오듯, 인간 사회도 야만을 넘어서기 위해 다른 형태의 연대를 발명해 왔다. 그 핵심이 바로 인권과 법치라는 보편적 규범 아래, 차이를 넘어서 서로를 엮는 촘촘한 네트워크다.​

흑인 민권운동은 폭력적 공권력에 맞서면서도 끝까지 헌법과 법을 붙드는 전략을 선택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불합리한 수색·압수로부터의 자유, 침묵권, 평등보호 등)를 꼼꼼히 학습하고, 체포와 폭력을 빠짐없이 기록해 소송으로 가져가 헌법적 심판대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포의 전염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억압자가 노리는 것은 직접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그 폭력이 가져오는 침묵과 자기 검열이기 때문이다. 기록과 증언, 집단 소송과 거리의 연대는 “두렵지만 물러서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공유하며 공포의 고리를 끊어냈다.​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민주주의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 냈지만, 이 시스템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침팬지의 그루밍이 매일의 반복된 행동이듯, 민주주의도 일상의 반복된 참여와 감시 없이는 쉽게 껍데기만 남는다.​
야만의 시대를 되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은 선거 때마다 참여해, 권력이 ‘민의 위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고, 특정 지역·계층이 부당한 표적이 될 때, “내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지 않고 기록·지원·증언으로 곁을 지키고, 공권력의 폭력과 일탈을 촬영하고, 기록하고, 법정으로 가져가 헌법의 언어로 다시 묻게 하고, 감정의 보복이 아니라, 헌법과 인권의 언어로 싸우겠다는 집단적 합의를 지키는 것이다.​

침팬지 사회의 폭군 알파가 결국 연합된 그루밍 집단에 의해 추락하듯, 인간 사회에서도 공포로 세운 권력은 법과 연대의 네트워크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 문제는 권력의 본성이 아니라, 그 권력을 견제하고 되돌릴 준비가 그 사회의 시민들 안에 얼마나 축적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권력은 힘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 지속되는 권력은 신뢰와 제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제도를 지켜내는 마지막 책임은 언제나 시민에게 있다. (동찬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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