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1세대의 땀으로 일군 성벽이 무너지고 있다. 2025년, 미주 한인 사회는 문명의 전환점과 커뮤니티 소멸이라는 이중의 파고 앞에 직면했다. 팬데믹의 긴 그림자, AI가 주도하는 기술 패권경쟁, 그리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인류의 질서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2025년은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자율적 대리인(Agentic AI)으로 진화하며 산업과 노동의 정의를 새로 쓰는 해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영역까지 침투한 AI는 인류에게 대규모재교육(Reskilling)이라는 숙제를 던졌다.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와 공급망 재편은 자국 우선주의를 고착시켰다.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미주 한인 사회의 기반은 과연 안전한가.
기존 시스템의 유통기한은 끝났다. 1970~80년대 이민 1세대가 구축한 청과, 수산, 네일 등 직능별 협회는 한인 경제의 든든한 보루였다. 그러나 지금 그 중심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신규 이민은 끊겼고, 차세대는 부모의 가업을 잇지 않는다. 1세대의 은퇴와 함께 친목형 협회들이 수명을 다하면서, 커뮤니티의 경제적·사회적 정체성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100년 한인 이민사가 생존의 역사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스템을 통한 지속 가능하고 발전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K-컬처의 과실은 어디로 갔는가? 전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넷플릭스와 구글이 K-콘텐츠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동안, 정작 그 토양인 미주 한인 사회는 소외되었다. K-푸드와 K-뷰티를 비즈니스화하고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전략과 거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 혜택의 정보와 이것을 서비스 할 기관들의 운영 기금이 충분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소외 계층들이 많다는 것이 한인 커뮤니티의 현실이다.
자본축적 자산가들의 사회적 책임이 성패를 가른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을 지탱하는 힘은 자본가의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에서 나온다. 미국 주류 자본가들이 재단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고 엄청난 투자를 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안녕이 곧 자신의 자본을 지키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미주 한인 사회의 책임 있는 자산가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커뮤니티가 흘러가는 대로 방치하는 방관의 시대는 끝났다.
첫째, 일회성 기부를 넘어 노인·저소득층·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전문 비영리기관 지원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AI 혁명에 대응할 커뮤니티 차원의 재교육 시스템과 정보망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한인 자본과 청년 인재를 결합해 한류 산업의 실질적 이익이 커뮤니티 내부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생존은 구걸이 아니라 전략이다. 과거의 영광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주 한인 커뮤니티는 박물관 속의 이름표로 남게 될 것이다. 자본을 가진 이들이 공동체의 방향을 설계하고 대규모 투자를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자 공동체 리더로서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그래서 2025년이 가기전에 자본을 축적한 한인 자산가들이 커뮤니티의 현실을 되돌아 보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전략적 고민을 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동찬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