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종 (A Sservant of Jesus Christ)
조선의 마케도니안과 미국 선교 본부
안동일 작
많은 세상일이 우연인 듯 하면서 후일 따져 보면 필연적 이었던 어떤 일을 계기로 시작되고 전개되곤 한다. 조선에 개신교가 전해지게 된 그 의미있고 중요한 일도 그렇다. 개신교의 전래가 우리 근 현대사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일대 사변 이었다는 얘기는 여러차례 강조 한 바 있다.
그런데 사실은 무슨 일이 단숨에 뜬금없이 일어나는 법은 드물다. 날줄과 씨줄의 인연이 맞아 떨어져야 일이 성사 되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하고 기적을 말하는데 기적은 바로 우리 이렇게 살아있음이 기적 아닌가. 어떻게 해서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나 되돌아 보면 누구나 이를 실감 한다. 인간사 모든 일이 따져보면 기적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한의사가 되기 위해 적지 않은 나이에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몰두 하고 있는 아내가 예전에 입버릇 처럼 하던 말이 있다.
“우주의 컴퓨터는 오차가 없다”는 말과 “모든 사람들에게는 고생 총량의 법칙이 적용된다.” 는 말이다.
전에는 자주 그랬는데 천주교 신앙이 깊어지면서 그 말들이 쏙 들어가기는 했다. 아마도 우주의 컴퓨터란 ‘성령의 역사 하심’을 뜻하고 고생 총량의 법칙은 세상사 누구에게나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로 새롭게 이해 하고 있겠구나 짐작 된다.
한의학을 공부 하면서 아내는 우주와 인간의 기가 태극에서 발현된 한 가지라는 오묘한 주역 철학을 얘기하면서 그 태극, 음양 오행의 근원이 덕과 선이라는 무릎을 치게 하는 절묘한 햬석을 나에게 들려줘 괄목상대를 다시 경험하게 했다.
조선의 개신교 전래가 꼭 이 때문 만은 아니었겠지만 이 일은 우주의 컴퓨터를 생각하게 하고 고생 총량의 법칙을 생각 하게 하는 일이다. 기적 같았지만 오차없는 안배였고 큰 희생이 있었기에 거저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150년 전인 1884년 1월 당시 미국내 최고 발행부수와 판매를 자랑하던 기독교 주간지인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 ‘ (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ly)의 1월호에 동양에서 온 한 편지가 실렸다.
일본 요코하마를 발신지로 해서 1883년 12월 13일에 작성됐음을 명기한 뒤 ‘마케도니아인의 부름’ (Macedonian Call)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이 주대이(수정)는 미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믿음과 진리의 능력으로 나는 주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으며, 나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 덕분에 저희가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사탄에게 흔들리지 않으니,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짐작 했겠듯이 이 편지는 한국 개신교의 문을 연 이수정이 일본 체류 중 미국 교단에 조선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쓴 것이다. 편지 제목 “마게도니아인의 부름’ 은 신약성서 사도행전의 내용을 인용했다. 사도 바오로가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복음을 전하러 갔다는 대목을 차용한 것이다.
편지의 서두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는 표현은 두고두고 회자 된다. 영어로 정확히 – I RIjutei, a servant of Jesus Christ.- 로 씌어 있다.

이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와 필리페서, 코린토서에서 쓴 첫 인사 문장이기도 하다. 당시 이수정은 세례 받은지 6개월이 겨우 넘은 초보 신자 였다. 그런데 이 자신감 있는 당당한 표현이 미국인 지식인들과 선교사 지망생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멀리는 중세 봉쇄 수도원에 던져진 성령의 불기둥 이었다고 비유했던 교부 어거스틴과의 로마서에 대한 평가, 가깝게는 기독교 신앙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고 상식으로 해석해 윤리학의 수준으로 끌어 내렸던 유럽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과도 같다는 비유를 받았던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만큼의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녔던 것이다.
이 편지로 인해 미 북 장로회 해외선교부는 언더우드 목사를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임명하게 되었고 감리교에선 아펜젤러 목사를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게 된다. 스크랜튼 모자도 이 편지를 읽었다. 세 사람모두 인도와 중국을 당초 선교지로 생각하고 있았는데 이 편지를 보고 조선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세 사람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공헌을 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바.
이 편지를 이수정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선교사가 대필했을 가능성도 널리 언급되기는 한다. 그런데 이 편지를 소개한 헨리 루미스 선교사(당시 미 성서공회 일본 지부장)는 후일 다른 잡지에 이 편지와 이수정을 자세히 소개 하면서 자신이 편지 작성을 도와 준 것은 맞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한문으로 쓰여진 이수정의 원문 문장에도 있었고 이수정이 구두로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술회했다. 이수정은 ‘사도의 직분을 감히 수행하고 있다’는 표현 까지 썼지만 이는 루미스가 삭제 했단다.
언더우드의 회고는 이를 십분 입증한다. 그는 1884년 7월 10일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이수정의 편지를 읽기 전에는 어느 선교지로 갈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추천받은 인도(인디아)는 뭔가 아닌데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수정의 편지를 읽고 나의 마음은 떨리기 시작했고 몹씨 흥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조선에 보내시려고 내게 말씀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으로 가겠습니다.”
이 결정으로 그 우직한 언더우드는 파혼까지 당하게 된다. 그의 약혼자는 천주교인 10만명이 죽었다는 흉폭하고 미개한 조선에는 죽어도 갈 수 없다고 했단다.
그의 편지를 계속 읽어 보기로 한다. 매우 중요한 편지임에도 한글 번역본 전문이 공개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우리 조선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참된 하나님의 길을 모르고 이교도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지 못했습니다. 복음 전파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기독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채 지구의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제 동포 중 다섯 명도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세례를 받았습니다. 기쁘게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며, 우리가 기독교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의 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수정은 셰례 때도 대부였던 성서공회 헨리 루미스 선교사와 함께 성경을 번역 하고 있었다. 그무렵 한문 성서에 한국식 토를 단 이른바 현토(縣吐)성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완성했고 순 한글로 번역한 마가복음을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문장에도 뛰어나고 매우 손이 빠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글 마가 복음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에 들어올 때 손에 들려 있었던 성서로, 같은 해 만주 봉천에서 로스 목사와 백홍준이 만든 누가복음과 함께 최고(最古)의 한글판 성경이다.
이어지는 대목은 천주교 얘기를 하고 있다. 왠일인지 국내의 기독교 언론은 애써 이를 알리지 않는다.
<지난 70년 또는 80년 동안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은밀하게 교리를 전파해왔습니다. 정부는 그들의 종교를 엄격히 금지했고, 개종자들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지키고 의기양양하게 죽었습니다. 이렇게 처형된 사람은 10만 명이 넘습니다. 이 사람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오해가 있었을지라도, 그들의 믿음은 칭찬할 만하며, 이는 우리 백성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제들도 종종 박해를 받았지만, 그들은 위험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현재 정부는 외국과의 교류를 허용하고 국민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에 대해서도 더 관대하며, 비록 공개적으로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인을 박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희생된 조선 사람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 하는데 오해가 있을 지라도..’ 라는 대목이 이채를 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다름 때문이리라. 그런데 뒤에 살펴 보겠지만 이수정은 천주교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던 사람이다. 그의 백부 이병달이 바로 병인 박해 때 순교한 전라도 구례 곡성 지방의 지도자였다. 이수정은 의기 양양(triumphantly)하게,위풍당당하게 순교한 천주교 희생자를 10만이 넘는다고 쓰고 있다.
< 최근에 완석착(Wan Sok-Chak)이라는 중국인 기독교인이 우리 왕에게 신약 성경 한 권을 바치려고 했으나, 정부가 개입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왕은 매우 불쾌해했으며, 이 일은 지금 큰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는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할 뿐이며, 지금이 조선에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나라 미국은 우리에게 기독교 국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이 서둘러 그들의 교사(teacher)들을 보낼까 두렵고, 그런 가르침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비록 저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이 보내실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수고하는 분들과 상의하고 이 일을 위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을 즉시 일본으로 보내주실 것을 가장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가장 좋고 안전한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 말을 신중히 고려해 주시기를 간청하며, 제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저의 기쁨은 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RIJUTEI)>
대단한 편지 아닌가. 미국이 선교사를 파견하지 않으면 독일 프랑스등 다른 나라가 손을 뻗게 되고 그리되면 주님의 뜻과 일치 되지 않을 것이 염려 된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더욱이 프랑스 선교사들은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니 선교가 기독교인의 최고 사명이라 여겼던 미국의 젊은이들이 몸이 달았던 것이다.

1월에 소재된 이 편지는 그후 권위있는 월간 선교 잡지지인 ‘미셔너리 리뷰”(Missionary Review) 3월호에 게재되었고, 이후 다른 잡지들이 이수정의 이 편지를 ‘마게도니아인의 부름’으로 지속적으로 소개했다.
아펜젤러는 시카고에서 열린 장로교 청년 선교대회에 우연히 참석해 장로교 잡지에 실린 이 편지를 읽었다. 감리교인인 그가 장로교 대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하고 단박에 조선으로 선교지를 정했다. 다행히 아펜젤러의 약혼자는 그를 격려했고 기꺼이 동행을 약속 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85년 3월, 요코하마 해변의 카이칸(海岸)교회에서 극적으로 이수정을 만나게 된다. 이수정의 꿈이 이뤄지게 된것이다. 감명은 이수정 본인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두 젊은이의 감명도 그에 못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가기 전에 일본에 들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피선교지의 언어로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있음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젊은 미국인 두 선교사는 갓을 쓴 조선의 중년 사내의 양손을 붇들고 놓을 줄 몰랐다. 선교지에 가서 성경을 번역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조선에는 이미 그 나라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으며 오히려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정 이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었겠는가. 두 젊은 선교사는 두달 가까운 시간 이수정을 거의 매일 만나 조선말을 배웠고 조선의 사정을 익혔다.
조선의 마케도니안 이 주태이 (수정의 일본식 발음이라는데… 글쎄?) , 이 수정은 누구인가. 어떤 인물인가.
이수정은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의 여명기라고도 평하기에도 이른 선교 시작 즈음에 돌연변이처럼 느닺없이 등장하여 40개월 가량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갑자기 사라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수정이 교계에서 주목을 받게된 것은 앞서의 편지가 발굴된 10년 안팍 근래의 일이다.
그는 사고의 틀이 완성되어 변하기 쉽지 않다는 불혹의 나이에 본인이 능동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불꽃같은 선교적인 사역을 이룬 인물이다.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익히 그렇다, 하지만 천주교 입장에서 보면 다른 면이 보인다. 아무튼 마지막 4년 동안 가히 초인적인 정열을 보였다.
1842년 전남 곡성 출생으로 알려진 그는 1886년 일본에서 귀국하던 그해, 조선나이 45세에 즉각 체포돼 울산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때의 자세한 내막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죽음 뿐만이 아니다. 그가 임오군란 때 민비를 도운 공로로 1882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이 되어 일본을 방문할 수 있었고 일본의 농업, 해운, 우편 시설 등을 배우고자 했다는 얘기 부터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의 행적, 과거에는 급제 했는지 벼슬은 어디까지 올랐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그가 무과에 합격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남다른 우국의 정렬이 있었던 그가 농업국인 조선의 낙후된 사정을 구하기위해 일본의 유명한 선진 농학자인 쓰다 센(津田 仙) 박사를 방문했는데.그 쓰다가 일본의 대표적인 초기 돈독한 기독교인으로 이수정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했다는 대목은 꽤 자세히 알려져 있다. 일본측의 기록은 쓰다 센의 인도로 1883년 4월 29일 도쿄 소재 로게츠쵸(霜月町)교회에서 조지 W. 녹스(George W. Knox) 목사와 야스카와 토오루(安川 亨)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정식 개신교인이 됐다고 전한다.
한국 개신교가 공식적으로 확인해 각종 간행물이며 기념관 등에 공표되고 있는 이수정의 활동, 업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글 성경 번역 작업이다. 미국 성서공회 헨리 루미스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입교한 직후인 1883년 5월부터 한문을 아는 조선인들이 성경을 읽기 편하게 한문에 이두로 토를 단 <懸吐漢韓新約聖書 현토한한신약성서>를 제작했는데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3개월만에 완성해 1884년에 낱권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어서 마가복음을 순 한글로 번역했다. 이 성경은 1884년 봄에 번역이 완성되어 1885년 2월에 6,000부가 출판되었다. 이 성경이 ‘신약 마가젼 복음셔언해’로 최초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국에 첫발을 디딜 때 가지고 들어왔던 성경이다.
둘째는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만든 일이다. 이수정은 먼저 친구이자 승려출신의 학자인 손붕구(도꾜 모 대학 조선어 강사)에게 복음을 전해 기독교로 개종케 하였고 당시 일본에 유학온 조선인 30명에게 복음을 전해 이들 중 절반 정도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모여 성경공부를 했고 선교사 목사를 초빙해 예배를 드렸다. 이 모임이 나중에 한인교회로 성장했다. 윤치호 박영효도 그의 안내로 기독교와 접했다.
세째는 앞서 살펴본 선교사 유치 활동을 펼친 일이다. 이수정은 세례문답 때 부터 세레를 준 조지 녹스와 증인인 헨리 루미스에게 조선에 선교사 파송을 피력했고 두 선교사는 선교 잡지에 이 사실을 소개했다. 이수정은 언급한 대로 자신이 직접 편지 형식의 호소문을 작성해 여러 미국 선교 잡지에 기고했다.
이수정은 이 호소문에서 ‘미국 선교단체가 이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전도자를 보내주시겠지만 미국의 선교사들에게는 큰 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협박까지 하면서 조선 선교를 간절히 호소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환상 중에 마게도냐인이 나타나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라는 말에 마게도냐로 건너 감으로써 유럽에 복음이 전해진 성경에 비추어, 이수정은 “조선의 마게도냐인”으로 불렸다. .
이수정은 감리교의 맥클레이 선교사의 요청을 받아 ‘감리교 요리문답’을 한글로 번역했고 ‘탕자회개’와 ‘천도소원’도 한글로 번역해 출판했는데 이것은 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게 보내져 개정 출판되어 많은 사람에게 전도의 도구로 쓰였다. 이수정은 이외에도 동경외국어학교 조선어 강사로 있으면서 ‘조선일본선린호화’라는 교재를 만들어서 조선의 문화와 한글을 가르치며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가 번역한 최초의 한글 주기도문이 발굴되어 아직도 다 드러나지 않은 그의 정렬적이고 다양한 활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수정은 일본내 여러 곳을 다니며 간증 연설을 했고 성경적 깨달음을 자신의 신앙고백적 한시로 표현했는데 그중 한 작품이 쿄토의 유명 기독교 학교 동지사 대학의 설립자 니지마 죠의 생가에 남아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있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과 같고/ 사랑함과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그 나무 뿌리가 마름과 같도다. /사랑하는 마음은 물과 같아서 뿌리를 윤택하게 하나니 가을과 겨울에 나뭇잎이 떨어져도 그 뿌리가 마르지 아니하리라. / 항상 봄과 같아서 싹이 나고 꽃이 만발하여 그 잎이 무성하도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을 믿으면 꽃이 피고 얽히고 설킨 가지마다 열매가 가득하니 그 깊음이 있고 심히 크고 달도다. /그 몸통은 소나무와 잣나무 같아서 눈과 서리가 와도 가히 시들게하지 못하느니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