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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35 )

 안동일 작

“탁덕(鐸德)의 길 순명의 길 ”

 정혁(正革)과  자유  평등

 직암 권일신은 자신의 희생이 민족의 정혁에 꼭 필요한 제물이라고 여겼다.

  놀라운 일은 민족의 정혁이 자신의 사후 1백년 이내에 이루어 진다는 것을 예견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의 사후 그의 유훈을 가장 값 있게 실천했던 평생동지 동섬 조동섬과 그가 고희 무렵 유배지에서 둔 제자 정하상을 거쳐  하상의 모친 유소사(세실리아)의 회고를 통해 확인된다.  후일 자세히 다룬다.   

 그 정혁이 필자는 3.1 혁명이었다고 확신한다.  물론 사백록 권일신의 죽음은 1792년의 일이고 삼일 혁명은 1919년의 일로 정확히는 120년 뒤의 일이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가 짧게는 수년 내에 늦어도 백년 안에 는 예수가 재림 한다고 호언했지만 우리 모두 아는 그 결과에 대해 그를 탓하는 이는 없다. 그의 성가가 떨어진것도 아니다.  시사하는 바 크지 않은가. 

 정혁 (正革)이란 말은   ‘바른(正) 것으로  고친다(革) ‘는 의미로,  새 바른 것을  취하고 옛 것을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혁고정신(革故鼎新)라는 시경의 구절에서  유래한 밀로 원전은 시경.  주역에도 약간 의미는 다르지만 나온다. 사회 제도나 정책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개선하는 ‘개혁’을 의미했는데 점차  두 자로 줄인 정혁은 바를 정자를 쓰면서 이미 있던 왕조를 뒤집고 새 왕조를 세움을 이르는 강경한 말로 까지 통용 되면서 혁명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고  홍경래의 난 때는 이 정혁을 기치로 삼았다. 

 또 혁고정신에서 혁신 이란 말도  나왔다는데 이는 정혁보다  완화된 뜻으로 쓰여진다.  정혁은 또 혁명보다는 완화된 뜻으로 쓰인다.  정혁과 혁신은  ‘현존하는 체제나 제도를 바로잡아 사회를 개선하는 것을 뜻하는 반면, ‘혁명’은 기존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차이가 있다. 

  즉, 정혁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혁명은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데 차이가 있는데 조선 유자들의 개혁 정신은 급진 남인들이라 해도 정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노론의 태두 송시열도 정혁이라는 말을 지주 사용했다. 송시열 사후 득세한  문하들이 펴낸 그의 문집 송자대전 제5권에 수록된  기축봉사에도  정신혁고와 정혁 이란 단어가 여러차례 나온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서가 봉사인데 여기에 정혁을 썼다 하니 이채롭다.  송시열 이래  조선 중 후기의 유자들은 정혁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고 어쩔 수 없이 유학에 기반을 둔 직암과 동료들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외적으로는  조선왕조의 정혁에 두었던 것이다. 

 직암 권일신이 천주학에 몰입하고 공동체를 결성 하려 했던 것은 천주의 평등과 자유 그리고 사랑의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 만난 천주학은 자유와 평등의 가르침 이 었다. 광암 이벽과 만천 이승훈의 처음은 어땠는지 몰라도 직암에게 특히 평등의 정신, 평등의 가르침은  그의 가슴을 뒤흔든 정문의 일침이었다.  그 이후 과정에서 구원론을 공부하게 되고 보혜사 성령을 만나게 되고 신앙적으로 또다른 각성을  하게 됐지만 초심은 변함이 없었다. 직암에게는  자신 혼자만 천국에 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천주학 공동체는 자유와 평등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세상에 알리는, 그리하여 그 훈향으로 세상이 따르 도록 하는 시금석이 돼야 한다는 것이 직암의 생각 이었다. 

조급하게 서둘지 말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차분하게 훈향을 전하더보면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생각하게 되고 이를 따르게 되면 종국에는 정혁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참구 끝에 깨우쳐 파악하고 신봉하게 된  천주학의 정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과 평화는 네 단어 모두 그 당시 사용되던 단어가 아니었다.  사랑 빼고는 모두 한자어 인데도 그랬다. 실은 사랑이이라는 말도 사량(思量) 이라는 한자어 에서 나왔다는 설도 유력하게 통용된다.

 때문에 저자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사랑과 평화 라는 단어 자체도 없는 사회,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이  200 여년 전 까지 이 땅 조선 반도, 한 반도에서 신분 질서를 내세우며  전제 권력을 휘두르며 백성들을 탄압하고 다그치면서 천년 이상 펼쳐져 왔던 것이다.   권일신과 그의 동지들은 그들이 알았건 몰랐건, 의도 했건 의도 하지 않았건  이 땅 자유와 평등 투쟁의 선구자다.  

 한국어 ‘자유(自由)’는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의미의 한자어이며, 서구의 근대 철학 개념인 ‘freedom’과 ‘libert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이 서구 사상을 받아들이고 이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자유(自由)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외부적 제약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확산됐다. 이제는 중국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자(自)’라는 글자의 어원은 코의 상형자이다. 이것은 지금도 자기를 지칭할 때 손가락으로 코 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 납득할 수 있다. 그리고 ‘유(由)’는 ‘경유하다’, ‘따르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두 자를 붙여서 ‘자유(自由)’라고 할 때는 ‘스스로 따른다.’의 의미로 개별적 행위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정통 유교 문헌에서는 오늘날 쓰이는  자유라는 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유학경전 외 다른 고전의 기록으로는  후한서(後漢書)에 자유라는 말이 나오는데 후한 말 탄생하여 이후 오랫동안 유행한 고시 가운데 초중경처(焦仲卿妻)라는 시  속에 “너는 어찌 자유로이 하는가.”라고하여 자유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이 자유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다.

 자유가 중국의 옛 글 속에서 사용될 때는  예를 들어 “어른 말씀이 있기 전에 물러가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대학의 해석으로  정현(鄭玄)은 “떠나고 머무름을 감히 자유로 해선 안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고,  삼국지 연의만 해도 “천자를 어리게 보고 온갖 일을 자유로 하였다.”와 같은 용례가 보이고 있다.  이를 보면 중국 고 문헌 속에서의 자유라는 용어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는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행위에 대해 자유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하지만 사백록 권일신과 성도 들은 자유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자유 사상에 철저 했다. 천주,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자신을 흠숭할 자유, 이웃을 사랑할 자유를 만끽하기위해서 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증거 했던 것이다.   

 평등(平等)은 더 했다. 평평할 평자에 같을 등이라는 한자어인 평등의 뜻은 한문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었지만 매우 불온시 되는 단어 였다.  오늘날 평등은 인간의 존엄, 권리, 인격, 가치, 행복의 추구 등에 있어 차별이 없이 같은 상태를 말하지만 계급 질서가 엄연한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 나라의 근간이라고 여겼던 조선의 왕권과 권력층 사대부들은 평등이라는 말을 입밖에도 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일신과 그의 동지들은 평등에 반대 되는 불평등이야 말로 만악의 근원으로 이것이 원죄라고 여겼다. 에덴 동산에서 너나 없이 신앞에 동급으로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던 인간을 탐욕과 경쟁의 세상으로 몰아낸 것이 바로 평등의 원리를 망각하고 저버린 것, 그 치명적인 잘못이 그 원인 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낙원인 에덴에서 쫒겨난 인간은 계급을 만들었고 왕을 옹립했고 제사장을 만들어 냈다. 만인은 한 사람의 노예로 전락 했던 것이다.  천주학이 말하는 평등은 무조적 적인 동급과 동질, 동상을 요구 하지 않는다.  천주의 가피 속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공평함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평등과 자유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한 쌍이다.   한마디로  평등은 자유의 평등이다. 불평등한 자유는 성립할 수 없고 부자유한 상태의 평등도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오늘날 각국의 헌법에 보장된 정치, 사회, 법적 권리의 평등은 바로 자유의 평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자유와 평등은 동일한 가치로 보완관계에 놓여 있으며 근세에 들어 헤겔이 말한 자유의 신장사도 곧 평등의 확장사다. 역사에서 자유는 일인에서 소수로 다시 만인의 자유로, 즉 만인의 평등으로 진보해 왔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선천적으로 평등하다는 천부인권사상은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이념이고 사회정의를 결정짓는 본질적 요소이며 인권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모두 기독교 신학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점에서 직암과 그의 천주학 동료들은 이 점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갈파했다.

물론 인간과 자연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은 천주학을 접하기 전 부터 이들의 정신세계 속에 깃들어 있었다. 이를 예정론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직암과  동지들은 성경이 인정한 예정론을 부정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 받았다고 기뻐 하고 서로 격려했다. 다만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천주의 예정, 하느님의 선택은 종국에는 모두에게 해당 된다고 믿었음을 애써 강조하지 않았을 뿐.  

 믿는 이 들에게 천주님이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믿음은 자신에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명감까지 생기게 된다.  천주님이 나를 특별하게 사랑하신다는 은총에  감격하게 된다. 내가 바로 그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게  한다. 더욱이 자신의 믿음이  내적으로는 신의 은총을 받아들여 평온과 평화를 찾고  외적으로는 도탄에 빠진 나라를 정혁 하는 일이 된다는 바에야, 신명이 날만도 했다.   

 이들의 이 감격과 신명은  이어지는 박해의 무수한 희생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놀라운 귀감으로 이어졌고 직암 권일신 사후 120년 뒤에 3.1 혁명으로 한차례 만개한 꽃으로 이땅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3.1운동의 핵심 정신은 독립과 자주 정신이다. 외세의 간섭 없이 스스로 나라를 이끌어 나가려는 민족의 강렬한 의지가 표출 된것이 3.1 혁명이다. 그리고  비폭력과 평화 정신이다.  폭력적인 수단 대신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을 통해 정의와 평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자유 평등의 가치를 포명 했다는 점이다.  억압받는 민중이 주체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자유로운 민주 국가 건설을 열망한 정신이 그것 이다. 직암과 그의 동료들이 목숨을 걸어가며 주창했던 바로 그 자유 평등의 가치를 전 백성의  3할이  거리로 나와 목이 메도록 독립 만세로 외쳤던 것이다.

그들도 만세 몇번 부른다고 조국이 독립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 헌병과 순사에게 끌려가 치도곤을 받더라도 설사 목숨을 잃게 된다 하더라도 정말 죄없이 스러져간, 아니 중인 환시리에  목이 뎅겅 댕겅 잘려 나가면서도 원망의 신음 한번 흘리지 않던 천주인들만 하겠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직암 사후 3.1 혁명 운동이 일어나기 까지의 120년의 과정은 다음 호에 일단 간략히 추려 보기로 한다.  이 소설의 시놉이자 근간이기도 할 법 싶다.   필자는 한국 근현대사 최대의 사건으로 31운동과 6.25 동란을 꼽고 있다.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대한민국 현행 헌법 전문.  

(계속)

 

 <위 사진, 지난 2023년 2월 28일 저녁   3.1운동 제104주년 기념 아우내 봉화제가 열린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참가자들이 횃불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 아우내 봉화제는 천안시가 아우내 만세운동의 거사를 알리기 위해 매봉산에 봉화를 올린 유관순 열사의 의거에 착안해 매년 2월 말일 거행한다. 당시 횃불 행진은 코로나19 여파로 4년 만에 열렸다. 3.1운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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