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탁덕(鐸德)의 길 순명의 길 ”
성사(聖事)와 권도탁덕 그리고 실로암
직암은 그날 아침도 은은하고 온화한 성령이 자신에게 찾아와 있음을 느꼈다. 늦가을 신새벽 바람이 다소 매웠지만 문득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생각들이 더없이 뭉클하고 따스했던 것이다.
여사울 존창의 공동체 마을의 서당으로 쓰이는 가옥의 앞마당 우물가에 있었다. 닭도 울기 전, 동이 트기 훨씬 전 이었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신새벽에 눈이 떠져 옆에 자고 있는 동섬과 승훈이 잠을 깰까봐 조용히 일어나 마당으로 나온 참이었다. 어스름 달빛과 별빛을 따라 우물가로 갔더니 다행이 두레박에는 물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이 집 우물은 공명이 컸는지 큰 두레박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커서 자는 사람들이 깰까봐 걱정 했는데 다행이었다.
찬물을 한모금 마시고 얼글에 끼얹자 가슴이 짜릿해 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로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추운 겨울 새벽에 눈을 뜨면 찬물에 세수를 하고 사물잠을 외우곤 책방에 들어 글을 읽었던 것은 어려서 부터의 습관 이었다.
직암은 우물가 바위에 앉았다. 몇해 전의 천진암 강학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찬물 세수와 사물잠은 주요 일과 였는데… 어스름 별빛에 비쳐지는 우물가를 쳐다 보려니 교덕서에서 자주 본 실로암 우물이 떠올랐다. 야소가 눈먼 이를 눈뜨게 해준 그 우물이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나는 자신과 도반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대부분의 주요 도반들은 지금 각방에 나뉘어 잠들어 있었다.
홍낙민과 유항검 정약전 정약종이 큰방에 있었고 최인길과 최창현 윤유일과 이총억이 건너방에 있었다. 동섬과 승훈과는 떨어져 있는 별채 방에서 잤다.
일동은 어제 밤늦도록 앞으로 의 일을 숙의했고 대강의 할 일들을 정리 했다.
서둘지 않기로 했다. 천주 공동체는 차근 차근 형성해 나가면서 주위에 훈향을 전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기로 했다. 야소를 믿으면, 천주학을 받아 들이면 헛된 욕심이 사라지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겨 생활이 건전해지고 성실해 진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직암이 보기에도 게도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목표였다. 내중 조용히 있던 유일이 꺼낸 의견이었다.
‘귀감이 되는 생활’과 ‘근주자적 근묵자흑’은 이들의 구호가 됐다. 권도 탁덕들은 건전하고 바른 생활을 하면 주변이 따라 온다고 심혈을 다해 모범을 보이면서 가르치기로 했다. 각자 지역을 정해 공소를 건설하고 사제로서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양근, 여주지역은 직암 자신과 유일이 맡고 천안 예산 내포 지역은 존창이, 전주와 그 일대는 유항검이 맡기로 했고 원주와 강원도 지역은 정약전이, 경상도 지역은 홍낙민이 맡기로 했다. 중요한 도성 한양은 최씨 숙질이 중인 역관 의원들을 중심으로 계속 전도를 펴나가기로 했고 정씨가의 막내 재간동이 약용이 성균관을 중심으로 반촌에서 뜻을 펴기로 했다. 승훈은 임지를 맡지 않고 전국을 주유하며 지도하는 부 주장을 맡기로 했다.
일신은 정식 가르침을 받은 승훈이 주장인 주교를 맡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승훈을 위시해 모두들 천부당 민부당한 일이라고 하여 주장인 주교를 맡기로 했다.
어제 회합에선 찰고와 기도문에 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신자로서의 구두 교리시험이 찰고(擦考)였다. 이 찰고에 합격해야 세례도 받을 수 있고 본격적으로 신자로서 활동 하게 된다. 전에 광암은 시도 때도 없이 찰고를 행했는데 주요 기도문을 하나라도 제대로 외우지 않으면 불호령을 던지곤 했다.
그때 부터 주영광송, 주기도문, 사도신조를 한문으로 암송했는데 한문에 익숙치 않은 이들은 장벽이 상당히 높게 느껴졌었다.
因父 (인부) 及子 (급자) 及聖神之名 (급성신지명) 阿門 ( 아문)으로 돼 있는 영광송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在天吾父(재천오부) 願爾名聖(원이명성)으로 시작되는 주기도문과 我信上帝(아신상제) 全能的父 (전능적부)로 시작되는 사도신경은 어렵기 짝이 없었다. 권도 사제들은 앞으로 이 한문 기도문과 함께 쓰일 힌글 기도문을 만들기로 했고 최 창현과 정약종이 이를 맡기로 했다.
앞으로 찰고에서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는지 확인은 해야 겠지만 찰고 전체를 부드럽게 진행하기로 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야 세상에 났느뇨?” 하고 물으면 찰고자도 하대어로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났느니라” 라고 답해야 했다. 어색했다.
중요한 일이 성사(聖事) 였다. 그 때문에 권도 사제단을 세우는 것이기도 했다.
권도 사제들은 공소 마다에서 성사를 맡아 주례 하기로 했다. 교덕서와 승훈에 따르면 원래 성사는 신앙 생활의 중요한 단계나 시기와 관련해 일곱 가지가 있는데, 우선 세 가지에 만 주력 하기로 했다. 세례 , 성체 , 고해 , 견진 , 혼인 , 성품 , 종부 성사 가운데 우선 세례와 성체 그리고 고해(고백)성사만을 집례 하기로 했고 종부 성사, 병자 성사는 성사가 아닌 기도로 대신 하기로 했다. 밀떡과 포도주로 진행되는 성체 성사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 했지만 승훈이 성체 성사야 말로 첨레의 꽃이라고 들었다면서 아쉬운대로 쌀떡과 청주를 사용해서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해 그러기로 했다.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처주, 야소가 실제로 첨례 때 마다 우리 몸에 머물러 계신디는 것을 믿는 성사라고 했다.
성사는 중요했다. 그대는 이제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라 이제 신자로서 은총을 받을것이니라 이렇게 말로만 하면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하더라도 실제로는 그 기쁨과 감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경건한 예식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천주님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온몸으로 체험 하는 것이 성사였다.
세례 성사는 주지하는 대로 칠성사 중 제일 먼저 받는 성사로, 이 성사를 받고 신자가 되어야지만 나머지 6가지 성사도 받을 수 있게 된다. 고해 성사는 신자가 세례 이후 지은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받으며 교회와 화해하게 하는 성사였기에 권도이나마 사제를 세웠다면 이를 외면 할 수는 없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받은 천주인 에게 신앙을 성숙시키고 나아가 자기 신앙을 증언하게 하는 성사라는데 일동 중에는 경험자가 없었다. 이 성사야 말로 덕높은 정식 탁덕의 일이었기에 사양하기로 했고 혼인 성사와 종부 성사도 그랬다.
그런데 성품 성사는 달랐다. 성직자를 임명하는 성사가 이것인데 결례 인 줄 알면서도 약식이나마 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제 날이 밝으면 성품성사를 하고 각자의 임지로 나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서로 마주 서서 영대라 불리우는 목도리를 둘러 주는 것으로 천주의 대리자로서 성사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이 성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다행히 부자인 항검이 간직해 왔던 청나라 붉은 비단 몇 필을 가져 와서 여사울 아낙들의 솜씨로 비단 영대가 12개 만들어져 있었다. 이날 모인 이는 성균관을 떠나지 못한 약용을 빼고 12명 이었지만 동섬과 약종 그리고 직암의 아들 상문은 영대를 두르지 않기로 했다. 괘 긴 논의가 있었던 심모원려 였다.
일신은 눈물이 왈칵 나왔다.
따져 보니 기적이었다. 여기까지 오기에 얼마나 많은 노심초사 그리고 기연 또 희생이 있었던가.
그때는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눈에는 오직 밤 뿐이었다.
그때 자신들이 만난 것은 차가운 새벽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 안에 여명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우물가에 실제로 여명이 비추이면서 오 천주여 당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실로암 내게 주심을…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영원한 이 믿음 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

여기서 다시 저자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독자들이 바로 위 대목 직암이 우물가에서 여명을 만나는 광경에서 기시감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 바로 한국산 복음성가 ‘실로암’의 가사를 원용한 장면이다.
지난 며칠 한국으로 치면 광복절 연휴 동안 필자는 이 실로암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고 다녔다. 그러면서 흥이 났고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연재 집필 때문이다.
국내 어느 유명한 종교학자가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최근 조사에서 종교가 없다고 답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특히 젊은이 들의 교회며 사찰 이탈 현상이 심각해 무종교가 70퍼센트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달 할 수록 종교에서 멀어진다고 하지만 OECD 국가 가운데 종교인 비율 최하위 란다. 이정도 일 줄은 몰랏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의미도 최하위 급으로 떨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조바심이 일었다.
그래서 정말 그럴까 싶어서 젊은이 들과 종교에 대해 여기저기 이곳 저곳 서핑을 하다보니 연무대의 실로암 떼창을 발견했고, 이내 푹 빠져 들었다.
실로암 떼창은 훈련소에서, 특히 논산 훈련소 연무대 출신 이라면 군대와 관련된 몇 안되는 즐거운 추억 이라는 것이 이구 동성이었다. 실제 그럴 법 했다. 여러분들도 이 동영상을 한번 찾아 감상해 보시라. 이 실로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매주 교회를 찾았다는 후기 댓글이 많았고 , 특히 후렴 부분을 떼창하기 위해 일주일을 버텼다는 얘기도 많았다.
따져보면 조용한 노래인데 군가식 후렴을 넣은 이 노래의 카타르시스가 상당하다. “왼발, 왼발 !”의 함성이나 “훈련은! 전투다! 각! 개! 전! 투!” 구호는 연무대 교회를 다녀온 장병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 양쪽 주먹을 번갈아 머리 위로 힘차게 4번 내지르는 것이 포인트. 기수에 따라 다른지 “훈련은 전투다” 가 아니라 “우리는 끝났다”로 기억하는 경우도 많단다. 이에. 1~3주 차 신참 훈련병들은 “GOP”라고 받아주는 것이 특징. 최근에는 그냥 후렴구에 각개전투만 외친단다.
우리는 끝났다! 각!개!전!투는 우리는 이미 각개전투 끝났으니 너희들은 수고해라~ 라는 의미로, 선배 기수들이 후배 기수들을 놀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배 기수들은 답가로 “GOP, GOP”하면서 받아친다. “너희들은 GOP 같은 힘든 곳으로 자대 배치 받아라” 라며 농담을 던지는 것. 그런데 자막은 게속 GOD로 나온다.
이런 추억이 있는 한 이 젊은이들에게 기독교는 결코 멀리 있는 배척해야 할 종교가 아닐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