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
7월의 마지막 날, 뉴욕을 덮친 폭우처럼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예기치 않은 혼란이 덮치고 있다. 합법적 체류 신분인 한인 여대생이 법원의 서류를 받자마자 영장도 없이 이민단속국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보석과 면회도 허락되지 않은 채 ICE 구금시설에 갇힌 이 학생은 2021년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왔으며, 올12월까지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보다 앞서 7월 21일에는 텍사스에서 라임병 치료법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의 한인 학생이 영주권자 임에도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2011년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로 커뮤니티 봉사 명령을 이행하여 이미 해결되었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법이 정한 72시간 억류 기한을 훨씬 넘겨 구금된 상태로 변호사 접견마저 불허되고 있다.
뉴저지의 한 시장은 자신의 지역 이민 구치소를 찾아갔다가 체포되고, 국토안보부 장관의 기자회견에 질문하려던 연방 상원의원이 힘으로 제압당해 수갑이 채워지는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은 뉴욕시 시장 예비 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그가 시장이 되면 연방정부가 뉴욕시를 직할 통치 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더 이상 미국이 법치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법이 정한 기본적인 규칙과 절차가 정부와 공권력에 의해 공공연히 무시되고 있다.
국제 관계에서도 미국의 기존 가치들은 사라졌다. 수십 년간 신뢰를 바탕으로 해 온 핵심 동맹국들에게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상호 관세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힘 에의한 무역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동맹 관계를 철회하고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수직적 관계로 재편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249년간 미국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 인권,평등, 동맹, 그리고 자유무역이라는 국가의 가치들이 지금 이 순간 스스로 해체되거나
폐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원전 46년,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을 승리로 이끈 카이사르가 스스로 10년 독재관의 자리에 오르며 로마 공화정의 가치를 허물던 시기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그리고 불과 2년 후, 카이사르는 사실상의 황제 지위인 종신 독재관에 올랐다.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하는 데 244년이 걸렸고,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에 오르기까지 465년의 공화정 역사를 거쳤다. 그러나 불과 수년 만에 모든 가치가 무너졌다. 오늘날 로마의 상징으로 카이사르가 떠오르듯,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카이사르가 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이사르가 황제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내전과 분열된 정치에 지친 로마 귀족들과 시민들이 역설적으로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치인을 바꿔도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팍팍해지는 현실에 지쳐있던 로마 시민들처럼, 오늘날의 미국인들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계속되는 전쟁과 분열된 정치, 그리고 개선되지 않는 삶의 질에 대한 좌절은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을 부추기는 토양이 되고 있다.
물론 미국이 곧바로 황제국으로 변모하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249년 동안 만들어온 국가의 가치들이 해체되고 폐기되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미국이 어디로 향할지, 트럼프 대통령을 황제의 자리에 올려 황제국의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이에 맞서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스(AOC) 같은 진보적 대안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인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공권력의 초법적 대상이 된 이민자들에겐 희망적인 봄을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다가올지 모르는 혹독한 겨울을 어떻게 이겨낼지 깊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동찬 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