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탁덕(鐸德) 모집의 길 간난한 순명의 길 ”
사실 동섬은 밭에서 일하던 동저고리 바람으로 직암에게 붙잡혀 두물머리 나루에서 마포나루 까지 양근의 진사공이 모는 거룻배를 타고 도착한 참이었다. 뱃시간 때문에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올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일동이 좌정하자 직암이 용건을 꺼냈다. 교단을 새롭게 정비 하려 한다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도 교단의 일을 맡아야 한다고 했더니 창현은 신명을 받쳐 바쳐 숙사의 명을 받들갰다고 했고 인길은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흔쾌히 응락 했다.
“견마지로라니 불가식으로 말하면 삼보의 하나인 탁덕이 마소가 되면 그 어찌 일이 되겠소? ”
동섬이 한마디 했다. 사실 견마지로 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평소부터 사람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의 궤변이라는 지론의 동섬에게는 더 그랬던 모양이다. 동섬과는 배를 타고 오면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 했고 동섬은 진작 인근의 유일로 부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날 최창현의 약국을 방문하는 일은 그들을 탁덕으로 끌어 들이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기에 그 보다는 앞날의 구체적인 계획을 함께 세우는 회의를 하는 일이었기에 동섬을 급히 함게 오도록 했던 것이었다.
“탁덕이라면 신부님을 말씀 하시는 겁니까?”
인길은 임시 라고는 하지만 신부라는 직책 까지는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네, 아무래도 조직에는 형식을 갖추어야 하기에 정식 서품을 받은 것은 아닐지라도 사제의 직분을 수핼할 일꾼들이 필요히지 않겠는가?”
창현과 인길 두 숙질은 한참을 생각하는듯 서로를 쳐다보다가 창현이 입을 열었다.
“숙사 께서 어련히 생각 하시고 말씀을 하신다는 것 알고 있지만, 다만 저희들 신분이 양반이 아니라는 것이 마음에 저히 걸립니다. 공연히 어르신들 에게 까지 누가 될까 염려 됩니다. 역관 집안 사람들… 뭘 잘못하면 곧바로 첩자 소리 듣게 됩니다. 괜히 우리 때문에 어렵사리 꾸려진 교단 공동체 전체가 화를 입게 된다면…”
예상했던 대로 신분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 때문이라도 두 사람이 꼭 맡아 줬으면 하는 것이라네. 신분제의 굴레에서 득을 보든 실을 보던 신분제에 매몰 돼 있는 우리 사람들에게 여봐란 듯이 형제들의 신심과 역량을 통해 천주 앞의 평등이 이렇다 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일세.”
“그렇지, 평등시싱을 펼치는 그 일이야 말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네, 누구도 이일을 자네들만큼 할수 있는 이가 없어요, 지금 이 조선 땅에서…”
사실 그들은 벌써 사제의 일을 하고 있었다.
교덕서의 번역도 그 일환 이었다. 다른 성원들 특히 양반 네들이 명례방 사건으로 또 광암의 죽음으로 망연 자실하고 있을 때 중인 역관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천주학을 보지하면서 전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현이 열고 있는 약국은 그 주요 통로였다. 창현은 벌써 자신들 최씨 일가와 후일 큰 일을 하게되는 저동의 제일 큰 약방을 열고 있는 손경윤을 위시한 손씨 일가와 약계를 맺고 있었다.
김범우가 그랬듯이 많은 역관들이 약국을 겸하고 있었다. 최창현도 그랬다. 그의 초동 집은 약국을 겸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창현은 이들에게 은연중에, 때로는 거의 반 강제로 천주학을 주입하고 있었다. 될성 싶은 젊은 의학도에게 그런다고 했다.
“좋습니다. 숙사 어르신 , 공연한 사양은 않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숙사 저희가 나서 방패가 되겠습니다.”
“:고맙네 관천, 그리고 인길이”
“방패 뿐 만이 아니라 자네들의 침과 의술이 창이 되어야 한다는게 우리 세 사람의 생각 일세”
동섬이 한마디 더 보탰다.
“적들을 찌르는 창은 어떠지 모르지만 방패가 되 겪을 저만의 고초라면 자신있습니다.”
인길이 나섰다.
“자네라면 그럴 것일세”
모처럼 승훈이 한마디 했다.
“인길이는 그때 맞은 곤장 자리가 다 아물었다고 했지?”
직암이 인길을 쳐다보며 물었다. 명례방 사건때 인길은 범우 형님을 혼자 옥에 두고 나올 수 없다며 곤장형을 자청 했었는데 직암은 그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완전히 굳어 거북이 등 같은 방패가 되어 있습니다. 숙사. 그정도 곤장 이제는 까닥 없습니다.”
“어허 너무 자신하지 말게나, 다시는 그런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일세’
짐짓 직암은 인길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두손으로 도닥였다.
남다른 사랑과 신뢰가 담겨있는 동작이었다. 인길은 직암의 맏아들 상학과 동갑이었고 직암을 숙사가 아니라 친 아비처럼 따랐다. 유일도 그랬다.
말이 씨가 된다고 후일 인길은 곤장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 자신 있다던 거북 등의 맷집도 야수 같고 야차 같았던 형리들의 수백대 곤장질에는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짐승같은 형리들은 그를 장살하고서 그의 시신을 강물에 던졌기에 그의 시신은 수습 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도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죽을 죄를 졌다고… 그런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직암의 마음이 울컥 전해 졌는지 인길의 눈에 이슬 맺혔다.
“숙사, 우리가 뭐 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 응석을 부리는 말투였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러지 않아도 관천 조카님이 마리아 님의 잉태 장면에 대해 쓰고 있으면서 한자로 ‘수태고지’ 라고 표현 해도 될까 하고 었던 참이었습니다.”
“그랫나? 묘한 일이기는 하군, 우리의 일은 다 천주의 뜻 인게야, 천주의 안배인게야.” ㅣ
수태고지란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성령으로 잉태 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면서 여인중 복되시면 태중의 아이 또한 복되다고 축수 했던 일을 말한다.
이 수태고지로 신약이 출발했고 예수의 생애가 시작 된다. 따지고 보면 조선 천주교의 본격적인 대중적 출발이 최창현의 초동 약국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양반네들의 출발이 불교사찰 천진암과 주어사 였더면 중인 양인들의 출발은 약국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씨앗을 보였고 후일에 확인되는 일이지만 중인 역관 약사들을 천주학 조직의 중추로 끌어 들인 일이야 말로 신의 한수였고 하늘의 배려 였다. 어쩌면 중인들이 제발로 찾아와 약방을 서학을 전파하는 주요 거점으로 등장 시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약국의 용도는 대단했다.
천주교인인 약국 주인이 병으로 약국을 찾은 사람에게 좋은 약재를 대단히 싼 값에 공급해서 신뢰를 쌓고, 그 바탕 위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더욱이 초기 교회에서 상시적 집회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한양의 경우 도서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고는 해도, 한 집에 수십 명이 계속해서 들락거릴 경우 대번에 이웃의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 특별히 천주교도 검거령이 떨어진 상황 아래서 모임의 운영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 자칫 밀고자가 침투할 경우, 조직 전체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으므로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 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약국은 이 같은 두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당시의 약국 에서는 진맥과 침구, 조제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이 싼값에 좋은 약을 지어준다는 소문에 모여들었다. 또 몸을 괴롭히던 병이 나으면 의원에게 큰 은혜를 입는 것이어서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가 형성되곤 했다. 이렇게 해서 맺어진 신뢰에 종교적 신심이 보태질 때 그 결속력은 대단했다.
후일의 일이지만 양인 출신 의원 손경윤은 안국동과 관정동에서 약국을 운영했는데, 그는 굉장히 큰 집 한 채를 따로 마련해 바깥채에는 술집을 열고, 안채에 여러 개의 큰 방을 두어 천주교인들의 집회와 교리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바깥쪽의 시끌벅적함으로 안채의 천주교 집회를 은폐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도 안되면 벽동의 정광수나 충훈부 후동 강완숙의 경우처럼 둘레의 집을 천주교인들이 입주하게 해서 한 구역 전체를 천주교인의 주거 구역으로 포위하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
약국 주인들은 이 같은 이유에서 초기 교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기록을 통해 볼 때, 당시 한양 지역에서 천주교 지도자급 인물로 최창현, 최필공, 최필제, 손인원, 손경윤, 손경욱, 정인혁, 김계완, 허속 등 무려 9명의 약국 주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혈연으로 얽힌 일종의 약국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약국 없이 떠돌이로 의료 행위를 하던 사람이나 약재 판매를 빌미로 이들과 접촉한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범위가 더욱 확대된다. 말하자면 약국은 초기 교회 조직을 떠받치고 있던 중요한 축이었다. 전주의 유항검도 천안의 이존창도 안성의 홍낙민도 약국을 운영했다,
“그렇습니다. 숙사님과 승훈 형재님이야 말로 하릴없이 오늘 우리에게는 수태고지 하러 오신 천사님들 같으십니다. 이제 남은 일은 손가락질 받는 일이겠습니다. 허허”
창현이 인길의 수태고지 얘기를 받아 뼈있는 농담을 했다. 손가락질 받는 일만 남았다고 했는데 다짐을 하는 말이었다. .
” 우린 양반에게 무릎 꿇던 집안의 사람들 입니다. 그 양반들 중 누구 하나 우리가 천주를 믿는다 하면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겠 습니까? 오히려 손가락질을 하겠지요. 그런 우리에게 다시 손가락질을 받으라시는데 받겠습니다. 마리아님이 받으신 손가락질보다 더 한 손가락 질이 어디 있겠습니까? 숙사님들의 ”
이때 승훈이 나섰다.
“맞습니다. 우리 천주학 형제들은 손가락질을 받았고 또 앞으로도 받 겠지요. 하지만, 천주께서는 항상 손가락질 받는 자들을 먼저 불러오셨습니다.”
승훈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상기돼 있었다.
“제가 지금, 주님 앞에서 두분 형제들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두분 형제가 손가락질 받은 사람이라면 저도 손가락질 받는 이 입니다. 두 사람이 ‘천한’ 자라면, 나는 더 천한 자요. 최씨 숙질 두 사람이 ‘부족하다’면, 나도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하지만 주께서 택하셨기에 그 뜻에 나는 순명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최씨 숙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최씨도 얼른 무릎을 꿇었다. 동섬과 직암도 자연 무뤂을 꿇어야 했다.
승훈의 웅변 같은 기도가 이어졌다. 이 기도는 약국의 가을밤 천주로 향한 다짐의 향연의 1막을 닫는 크라이 막스였다.
“천주님 우리는 이 길을 스승 없이, 탁덕 없이 걸어왔습니다. 천주님 부디 궆어 살펴 주십시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말하기보다, 신의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전에도 그랬지만 이제 더욱 형제의 신의를 지켜 나가겠습니다. 천주님의 자녀로서 천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서 천주에 순명하는 형제 입니다. 천주님 순명의 길은 늘 간난의 길이라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님은 그 길에, 가장 밝은 별을 달아두시곤 하십니다. 이제 그 별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
그날 이후, 약국을 하는 중인의 집 사랑채에서 세워진 작고 조촐한 탁덕 공동체는 조선 땅에 정식 성직 없는 교회를 일으키는 새로운 불꽃이 되었다. 그런데 이날 다짐 향연의 2막과 3막은 행인지 불행인지 더 장렬하게 손가락을 받자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