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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11)

 안동일 작

“탁덕(鐸德)의 길 순명의 길 ”

 그런데 그의 집 주변은  시끌벅적 했다. 담장과 문은 싸리로 돼 있었지만 이는 형식적인 것으로 저쪽으로 가면 틔어져 있었어 안으로 무상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구조 였다.  정면에서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뒷쪽에 가옥도 여러 채 있는 것 같았다.  동리 사람들도 드나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버선발로 달려 오다시피 존창이 나왔다. 안채에서 나 온 것이  아니라 뒷편에서 급히 뛰어 나온 기색이었다.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하는 존창의  얼굴에는 그늘의 흔적이  엿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직암 숙사… 진사 어르신… 어찌 기별도 없이 이런 어려운 걸음을 …”

“이리 들어 오시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존창은 두 사람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싸립문에서 보이는 안채가 아닌 뒷 마당 별채로 안내했다.

뒷 마당 별채는 기와집이었다. 조금 떨어진 그 옆쪽으로는 가옥이 한채 더 있었고 그 옆으로 커다란 연자 방아가 보였고 사람들이 모여서 방아를 찧고 있었다. 쌀 도정을 하는 방앗간이었다. 저쪽에서 지나던 사람들이 존창의 손님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가까이 다가와 말은 안했지만 공손하게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여기서도 존창을 대하는 저들의 태도를 엿볼수 있었다. 

 영민하고 성실한 존창이 자신의 출신을 뛰어넘어 쌀 유통업과 도정업으로 적잖은 부를 일궜다는 사실은 들어는 알고 있었지만 가옥도 몇채나 되고  큰 방앗간까지 차려 놓고 있다는 것은 처음 목도 하는 것이었다. 집안은 방앗간으로 쓰이는 왼쪽을 따로 하고도  장독대며 가꾸어진 꽃밫이며 잘 정돈돼 있어 살림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자네가 성실히 일해서 상당한 부를 일궜다고는 들었네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네, 대단하이.”

“부끄럽습니다. 운이 좋아던게죠. 그리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너무 욕심을 내면 탈이 나는 법이니 차분히 가세나.”

“예, 명심하지요”

직암은 여전히 존창이 잡고 있는 손을 한번 힘있게 쥐어 주었다. 

 존창이 안내하는 대로  계속 손을 잡은채  뒷채로 향했다. 

격식을 갖춘 기와집은 아니었지만 튼실하게 지어진 기와 올린 일자형의 뒷채에는 대청을 사이에 두고  방이 두개 있었다. 대청을 통해 오른쪽 방으로 들어섰다.

“너무 급작스럽게들 오셔서 치우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누추합니다.”

“누추 하다니, 내 눈엔 고대광실일세…나도 이렇게 널찍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네.” 

방안은 별 가구 없이 정갈했다. 양반네 처럼 보료나 큰 서탁이 놓여 있지 않았는데  대신 한쪽 시렁에 꽤 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직암의 방 보다 책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한 쪽으로 치워져 있는 작은 서탁 위에는 칠극과 천주강생 요록이 놓여 있었다. 승훈은 시렁 위에 놓여 있는 성경광익괴 성교절요가 자신이 연경에서 가져온 것임을 이내 알아 차렸다. 표지에 옅은 금박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구석에  놓여 있던 방석을 내와 아랫목 쪽에 직암이 앉았고 승훈과 존창  둘이 그 앞에 앉았다. 승훈처럼 절을 올리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단원 형은 역시  천주학 책을 손에 놓고 계시지는 않았군요. 다행입니다.”

승훈이 책을 향해 눈길을 주면서 입을 열었다.

“어찌 그 귀한 가르침을 손에서 놓을 수 있나요. 진사 어르신도..”

“참 단원,  자네 언제부터 백다 형제를 어르신이라 불렀는가? 자네 답지 않게. ”

아까부터 의아 했기에 직암이 한마디 했다. 

“자원 방래하신 귀한 손님 아니십니까? 전에는 어깃장 놓느라고 부러 진사님을 막 대했지요. 나라의 근간이라는 신분 제도가 아직 엄연 한데… 홍교에 오르시고 굴원을 노래하는 진사님이신데…”
가시가 있었다. 승훈의 배교문을 존창도 본 모양이다.   

“면목없습니다. 단원 형제.”

“아니오 염회시중의 미소이지 뭐, 다른 말이 어찌 필요 하겠소. 아렇게 숙사와 함께 불원천리 소생을 찾아 주신것으로 모든게 다 웅변이 되고 남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창 형님, 우리가 형님을 찾아온 것은 우리 천주 공동체의 앞날에 대해 상의 하러 온 것입니다. ”

 승훈이 방석을 고쳐 앉으며 말했다.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대책과 방도라도 강구들 하셨습니까?”

 그때 존창의 부인 듯 한 아낙이 ‘들어가겠습니다” 하는 기척을 내고는  다담상을 들고 들어왔다. 무명 치마 저고리였지만 새로 꺼내 입었는지 깨끗했다. 혼자 들어오기 쑥스러웠는지 10살 정도의 소녀 한명과 함께 들어왔다. 

“제 안 사람입니다. 숙사 어른”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단원의 내자 입니다.” 

 상을 내려놓으며 무릎을 세운 약식 큰 절로  인사하는 그녀의 태도가 정감이 있으면서도  여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양반가 출신이 아니 었음에도 나름의 기품이 있었다.   직암과 승훈도 손을 바닥에 집고 고개 숙이는 반배로 응대했다.  직암은 이 집안이 이렇게 번성하고 잘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여겨졌다.

존창의 내자는 말씀 너무 많이 들었다며 특히 직암을  친정 어른 대하듯 했다,  모처럼 오셨으니 며칠 푹 쉬시고 온정(溫井)에도 다녀 오시라며  그렇게 준비 하겠다고 까지 했다.  이곳 덕산 온천은 일찍이 율곡 이이도 칭송한 명소였다.  

 같이 들어온 소녀가 여간 똘망한게 아니어서 직암은 존창의  여식이겠거니 여기고 이름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더니 최가 말련이라는 것이었다,

“제 생질입니다. “

누이의 자식이라는 얘기였다. 

“제가 이곳에 작은 서당을 꾸리고 있습니다. 일단 제 일가 붙이들을 중심으로 동리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마 제 내자가 혼자 들어오기 뭣하니 학동가운데 오늘 입성 가장 깨끗한 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랬군, 잘하는 일일세, 여식들도 참여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때 존창의 부인이 나섰다.

“다 숙사 어르신 덕분입니다. 이이가 양근과 퇴촌에  다녀 오고 나서 부터 그랬지요  저도 덕분에 언문과 천자문 반절을 떼었습니다.”

짐작할 만 했다.

 “글 배우는게 어렵지 않느냐?” 

직암이 상 위의 곳감을 소녀의 손에 쥐어주며 물었다.

“재미있습니다. 어르신.”

 후일의 이야기 이지만 이 소녀 최 마리아가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의 친 할머니가 된다.   이날의 만남이 예삿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여성이 방을 나가고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사실   존창에 대한 보탁 권유는  일사천리로 진행된 편이었다.  

탁덕단이 필요 하다는 것에  공감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도 그생각을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진작 그랬어야 합니다. 여러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곳에 변고가 생겨도  견뎌낼수 있지요.”

다만 탁덕이 되어달라고 했을때 작은 사양이 있었다.

” 그래서 말인데 단원이 먼저 나서 주시오. 보탁이 되어 주시오.  우린, 단원이 필요하오. 아니, 이 땅의 천주 교우들이 단원을 기다리고 있소.”

“숙사님…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저는 그저, 천주의 진리를 엿보고 감격한 천민일 뿐입니다. 하늘의 뜻이 어찌 저 같은 자에게…”

“또 그애기.. 단원 당신이 천민이라니… 하늘이 높고, 사람의 신분은 낮다 하나, 천주의 뜻은 오직 믿고  회개하는 자의 마음을 기뻐하시지. 신분은 우리 모두 같소. 신분이 아니라 믿음이 자격이요.”

그때 승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님이 춤추던 그 밤, 우리는 모두 하늘을 봤습니다. 형님이야말로 우리보다 앞서, 천주를 기쁘게 한 이였습니다.”

“제가…  어찌 자격이 있겠소. , 기도도, 세례도… 다 천주의 은총이었지. 나는, 다만 그 은총을 감당하지 못했소. 그리고 사실은 겁이나서  잔뜩 무너졌더랬소. 그날의 춤도 치기였지요. 많이 회개 했소”

“무너지기로 말하면 저만 하겠습니까? 세례와 소임은  회개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형님께서 무너지셨다면, 그건 형님이 높이 서 있었기 때문이오. 낮은 자는 무너질 자리가 없으니까요.    존창 형, 우리가 이 교회를 세워야 하오. 형님이 첫 보탁이 되어야 하오.””

직암은  무릅 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눌러잡았다.

침묵이 흘렀다. 마당엔 감잎이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있었다. 직암은 조용히 속으로 기도 했다.

“천주님 우리의 뜻이 아니라 천주님의 뜻으로 일을 행하여 주십시오.”

침묵이 흘렀다. 마당엔 감잎이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있었다.

 존창이 천천히 일어섰다. 손을 등 뒤로 돌리며 마당을 바라보더니, 예전의 그 동물춤처럼 휘청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다가  멈춰 서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말했다.

 “이 춤이 천주를 기쁘게 했다 했소?  천주님께서  다시 저를 부르신다면… 저도 다시 나아가야겠지요. 하지만 이번엔, 제 춤이 아니라 제 생명으로 증거하겠습니다.”

이존창의 눈가에 다시 뜨거운 것이 맺혔다.

직암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천주님 감사합니다.” 그의 손등으로도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 승훈이 조용히 일어서  존창의 손을 잡아 앉혔다. 

세사람은 손을 맞잡고 천주깨 기도를 올렸다.

“단원은 이제  내포의 베드로요 바오로입니다. 천주님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건 완전한 이가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사람입니다.” 

그날 내포의 하늘은 맑았고, 마당에 떨어진 감잎 위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삼고초려는 일고에 끝났고, 이제는 함께 걸어야 할 시간이 남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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