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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북>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서의 언어 생활 한번 쯤 돌아봐야 할 때”
 안지영 기자

요즘 나는 때 늦은(?) 공부 삼매경에 빠져있다. 나이 먹어서 좀 부끄럽지만 미국의 교실을 경험도 해보고 나의 영어도 전체적으로 환기를 시킬 겸 버겐커뮤니티 컬리지의 ESL에 등록해 수강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중고생들에게 영어문법을 가르쳤던 경력이 있다지만 내가 이곳에서 마주한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는 현실은 또 달랐으니 나는 진즉에 교실을 향해 달려갔어야 했더랬다.

수업 중 특히 문법 사항을 공부할 때 마다 내가 그간 알고 있었던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인데 다시 보니 헷갈리고 …결국 내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거다. 공자님도 그의 제자 자로(由 유 -자로의 또 다른 이름)에게 ‘ 자로야, 네게 앎을 알려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앎이니라.-라고 했단다. 자로에게 했다던 공자의 저 말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요즘이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이루어지는게 당연하지만 특히 문법 수업의 경우, 영어로 해당 문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국 친구들은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반면, 타민족 출신 특히 남미 친구들의 경우 영어가 스패니쉬와는 또 다른 문법이라 그런지 문법 컨셉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려 보인다.

왜 일까? 원인을 나름 생각해봤다. 나를 포함한 5명의 한국인들은 주입식, 암기위주 교육이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지난날의 한국식 교육으로 대학과정 까지 마치고 미국에 온 세대들이다. 학교에 원어민 교사도 없던 시절이라 영어 선생님의 불안정한(?) 발음 대로 따라 읽으며 문법 사항이 들어있는 문장을 일단 외우고 봤더랬다. 그렇게 해서 우린 학교 시험을 치뤘고 대학입시 까지 치뤘다. 문법 개념이 100프로 이해가 안된다 해도 일단 문장을 외우고 관련 문제를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아 그런가보다’ 하고 자연스러워졌고 어느 순간 ‘아, 이거였구나.’하고 온전한 이해에 다다르게 됐다.

역시 기본적 암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이해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에 학창시절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우리 다섯 명은 모두 동의했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콜롬비아 출신의 마리아나에게 물어봤다. 그녀가 말하기를 ‘초등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까지 영어를 배우긴 하지만 단어 위주, 기초문법을 아주 베이직한 수준으로 주 2회 정도 배운단다. 그런데 교사부족으로 타과목 교사가 가르치기도 하다보니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고 했다.

대학입시 때에는 스페인어와 영어 그리고 수학 시험을 본다는데 그때의 영어는 유료 온라인 강의를 통해 거의 독학을 하다시피 해서 시험을 준비 한단다. 브라질에서 Au pair (입주 베이비시터) 비자로 공부하러 온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들은 중등과정에 들어서야 영어를 제2 외국어로 주 1회 가량 공부했단다. 교육 빈부격차가 그나라도 꽤 커서 돈있는 집은 사설 영어학원을 보내거나 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온다고들 한다. 여기에 와서야 이 친구들은 문법을 자세히 공부 할 수 있게 됐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이해는 안되지만 그냥 하는거라고…

그외에도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의 영어공부 히스토리를 분석해 보면서 왜 우리는 한국에서 문법을 주구장창 공부해야했는지, 왜 문장을 외워야 했는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한국의 주입식/ 암기위주 교육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음을 ESL 수업에서 확인했다. 현지에서 밥벌어먹고 살면서 대충 듣고 말하고 의사소통만 되면 그만이다ㅡ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올바른 어법과 문법이 바탕이 된 의사소통은 현지에서의 삶의 질을 더 높여 줄 것이다.

게다가 영어를 미국의 공식 언어로 한다는 트통령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가운데 이민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서의 언어 생활을 한번 쯤은 돌아봐야 할 때도 온것 같다.

3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영어를 미국의 공식언어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싸인을 했다. 연방 차원에서 영어가 미국의 공식언어가 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 공화국이 설립된 이래 영어가 국가의 주언어로 사용되어 왔고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포함한 미국의 역사적인 정부 문서는 모두 영어로 작성됐기 때문에 영어를 공식 언어로 선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또한 국가적으로 지정된 언어는 통합되고 응집력 있는 사회의 핵심 요소이며, 모든 시민이 하나의 공유된 언어로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할 수 있을 때 미국은 더욱 강해진다는게 행정명령의 취지란다. 영어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공식 언어로 한다는게 뭐가 이상하냐, 당연하다-라는 의견과 그에 반대하는 의견이 대립했다. 그

의 행정명령에는 미국의 소수계 언어 서비스를 보장하는 클린턴 당시 발효된 행정명령을 취소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이에 따라 한국어 등 외국어에 대한 정부 서비스 축소와 서비스 접근성 악화 등 악영향을 우려한 연방하원 아태계, 흑인, 히스패닉 코커스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강하게 반발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 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영어 공식언어 행정명령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 쪽이다. 남의 나라로 이민 와서도 자기 민족들 끼리만 똬리 틀고 살고 떠나 온 나라 언어만 주구장창 쓰고 살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이민 온 나라의 공공기관에서 자국의 언어로만 서비스를 받으려 하면 문화적 다양성 (Cultural Diversit’s)에도 맞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나는 미국의 정부 공공기관 서비스를 이용할 때 온오프라인 모두 스패니쉬는 어딜가도 기본 장착되어 있어서 묘한 역차별을 느끼곤 했다. ‘그럴바엔 영어로 그냥 통일해!’ 라며 내 안에서는 수백 수천번의 외침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행정명령에서는 기존에 제공해 오던 소수계 언어 서비스를 취소한다지만 그 부분은 각 주의 재량에 맡긴다고 했다. 한국 현지 미디어들이 무슨 큰 일이나 난 것 처럼 이 사안을 침소봉대 하는것 같아서 아쉬웠다. 오히려 이 일을 통해 이민자들도 각성했으면 한다. 관공서는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의 그 나라의 언어를 어떤 형태로든 배우고 익히려는 노력을 해보았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먹고 살기 바쁜데 어떻게…’ 라고도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럼 은퇴 하고 나서 골프만 치고 공원만 죽어라 걷고 우르르 몰려 다니며 맛집만 찾아다니고 여행만 다닐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제공하는 영어 교육 서비스를 이용해보거나 개인 또는 그룹 영어 수업에 참여해 노후에 좀 더 여유롭고 즐거운 이민 생활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한인타운들의 단체장들과 정치인들이 한국어로 한인 동포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도 좋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한인 밀집 지역의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커뮤니티 안에서 가능한 많이 만들어 동포들이 영어 학습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이민자들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일이 될테니 말이다.     (4/16 / 2025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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