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탁덕(鐸德)의 길 순명의 길 ”
저녁상은 안채 안방에 차려져 있었다. 파격 이었다. 양반가에서는 안채를 외간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곳은 안주인의 공간으로 남편과 아들 딸 등 가까운 식구들 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시절, 양반가에서 안채에다 상을 차린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단순히 대접의 차원을 넘어서, 마음의 울타리를 허문다는 뜻이었다.
안방에는 술 한 병이 올라있는 정갈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동욱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그깟 체면, 격식이 무슨 소용이겠소. 아내도 전부터 이런 자리 꼭 마련 해 보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
사내 넷이 자리를 잡자, 또 한 번의 파격이 이어졌다. 안방 주인인 이씨 부인 ,가환의 누이가 ‘동섬 어른과 직암 아우에게는 한잔 따르고 싶다’며 손수 잔을 따랐던 것이다. 파격은 또 있었다. 사내 넷이 앉은 교자상 옆에 팔각 호족반이 있었는데 여주 이씨와 며느리 정씨가 그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동섬과 직암이 동시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은 별일 없으면 조 석반은 치훈이까지 해서 다섯이 이렇게 한방에서 함께 먹습니다. 직암여의 집에서는 진작 부터 그런다면서요?”
치훈은 아직 성가하지 않는 승훈의 동생이었다. 직암여는 동욱이 평소에 일신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것 참 잘하는 일이오”
“소찬이지만 드십시다.”
음식은 정갈했고, 술맛은 뜻밖에 달았다.
밥주발의 밥이 어느 정도 줄어 들었고 술이 두어 순배 돌았을 때 동욱이 입을 열었다.
“사실… 그날 승훈에게 거창한 벽이문을 쓰게 한 일은 제 일생 가장 비겁한 일 이기는 했습니다.”
“숙사들께서는 아버님이 초안 잡으셨다는 것 벌써 아십니다.”
승훈이 조용히 부친을 향해 한마디 했다.
동욱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는 이내 슬며시 빙긋이 웃더니 눈을 들어 동섬과 직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문을 닫고 붓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천주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천주도 분명 이해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결국은 썼지요… 아들과 집안을 살려야 했습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그런데 초안을 던져 주며 베껴 쓰라 했더니 승훈이 엉엉 울더군요, 그때 말로는 무얼 망설이냐고 호통을 쳤지만 실은 저도 뭉클해져서 속으로 울어야 했습니다.”
직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잔에 조용히 술을 채워 주며 말했다.
“천주께서도 그 마음을 아실 겁니다. 우리야 소암형과 만천의 그때 속내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먄서 한마디 더 보탰다.
“ 둘째 연의 ‘해질녁 하늘을 가리는 땅의 어두운 안개는 무지개 사다리를 부셔 버리려 하고 있도다.’ 하는 대목 읽으 면서 저도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지난번에 언급 했듯이 직암은 실제 그랬다.
‘모확 홍교 암애중 (暮壑 虹橋 唵靄中)’ 지금도 확연히 외우고 있는 그 싯구였다.
“그 대목이야 말로 오롯이 승훈의 작품 올시다”
동욱이 말했고 동섬과 직암이 고개를 끄덕였고 승훈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동욱이 잔을 들며 불쑥 말했다.
“헌데 그 벽이문, 어쩌면 지금 주상께서 가장 잘 이해하실지 모르겠소.”
직암과 동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실은 주상의 내락 아닌 내락으로 그 시를 지어 겁난을 피해 갔던 것입니다.”
엄청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연은 직암과 동섬의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연이었다.
동욱은 영조 말년 즈음에 대과에 급제해 홍문관과 세자 시강원에서 벼슬을 시작한 세손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현 주상 정조가 즉위 하자 권부로 자리 잡은 규장각으로 자리를 옮겨 중견 간부인 대교, 이후 부제학으 로서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고명 사은사 채제공 대감의 서장관을 맡아 연경에 처음 다녀 온 것도 그무렵이었다.
정조는 즉위 하자마자 스스로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고 이후 생부를 적극적으로 추숭해 나갔다.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묘묘(墓廟)를 승격했다. 또 생부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행장 찬술과 함께 문집 간행, 다양한 독서 목록을 찾아내 발표하기도 했다. 사도세자가 황음 난폭한 이가 아니라 독서에 조예가 깊었던 현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동궁의 도서목록을 수합한 이가 동욱이었다.
동욱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사도세자 책장 정리를 하라는 명을 내리셨을 때 말이오… 칠극이 나왔소. 손때 묻은 천주실의도 있었지요. 모두가 놀랐지요. 내가 그때 이 사실을 즉각 아뢰었지요. ‘부왕 께서 친히 ‘천주실의와 칠극’을 읽으셨다고?’ 하시는 그 순간, 전하의 눈빛이 번쩍 바뀌었소. 이어 ‘어찌 그런 책이 우리 동궁까지 들어왔단 말인가?’ 하시더군요. 그책 들을 이미 알고는 게셨던 모양입디다.”
“전하께선 가져오라 하셨소. 그러더니 며칠 그 책들을 정독하신 모양이셨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듯이… 특히 칠극, 몇몇 대목에는 실 까지 붙혀 놓으셨더군요. 나보고 보라시는 듯…”
동욱이 가만히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전하께서는 그 책들의 내용에 대해 한마디도 흠잡지 않으셨소. 오히려 나를 따로 들이시며, ‘사람이 하늘을 아는 데 글보다 나은 스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셨소.”
놀라운 일이다. 방 안 공기가 달라졌다. 누구랄 것도 없이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가을밤의 바람이 지붕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했지요. 이 조선의 하늘도, 이제는 바뀌어 가는 것 아닐까 하고.”
“그래서 연경에 갔을 때도 성당에 가는 승훈이를 말리지 않았고 나 또한 성당이란 곳에 함께 가보곤 했던 것이지요.”
승훈은 물론 부인과 며느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 인듯 싶었다. 시부의 말을 숨죽여 경청하는 며느리의 눈이 너무도 초롱했다.
“일이 터졌을 때 주상이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시더군요, ‘ 이런일은 소암이 먼저 선제적으로 나서서 단속을 해야 하는 겝니다.’ 하시더군요.”
그랬던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마치며 시선을 저쪽 벽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종이창 으로 던졌다. 조금 열려 있는 작은 창으로 밖의 바람이 안으로 들어와, 마치 그 밤 정조의 숨결이라도 된 듯 방안을 감돌았다.
동욱을 안채에 두고 직암 동섬 만천 세사람이 다시 자리를 함께 한 작은 사랑방 안은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숨죽인 열기로 가득했다. 등잔불이 깜빡였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열변을 토하는 직암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단순한 은밀한 조직, 비밀 결사로는 안 됩니다. ”
직암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건 교우들의 생명과도 같은 신앙을 한데 모으고 이끄는 일이오.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소.”
동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마디 던졌다.
“ 무릇 양 떼엔 목자가 있어야지. 어차피 당분간 신부가 오지 못하는 건 분명하니, 우리가 임시로라도 탁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화급하고 당연한 얘기 입니다. ”
” 만천, 전국에 탁덕들을 세웁시다. … 아니, 사제단을 꾸립시다. .”
승훈은 숨을 들이켰다.
“사제단이라 하시옵니까… 이름만 들어도 두렵습니다. 아무리 주상께서 호의적이라고 해도 그건….자칫 발각되면 멸문지화입니다.”
직암이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렇기에 더욱 강하고 내실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네. 흩어진 양 떼가 도리어 의심을 사는 법이라네. 중심이 있고 질서가 있으면, 그 틈에 우리가 신자들을 보호할 수 있지.”
승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직암과 동섬이 진작에 내민 이름들, 그리고 ‘탁덕단’ ‘사제단’이라는 말. 그 모든 말이 방 안 공기 속에 떠다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무릎 위에 얹힌 손을 굳게 쥐었다.그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백다, 조선땅 최초 영세자인 자네가 중심이 돼 주셔야 겠네, 신부님, 탁덕님 들과 생활을 해본 유일한 인물이 자네 아닌가. 또 자네가 우리에게 세례를 주시지 않았는가? ”
“제가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제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요?”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저는 어찌 됐건 배교문을 썼습니다. 집안을 지키겠다고… 광암 형님의 순명을 크게 헛되게 만들었습니다.심지어 천주학 서적을 불태우며 나는 믿지 않는다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파다하게 했지요. 그런 입으로 그런 손으로… 다시 천주의 일을 한다는 게… 남들의 조소거리가 될 뿐 아닐까요?”
그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감았다. 방 안에 있던 고요가, 조용한 파문처럼 울려 퍼졌다.
동섬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직암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죄책, 천주가 모르실리 없네. 자네 손이 불을 들었을 때, 하느님께선 자네 마음이 먼저 타들어 가는 걸 아셨을 걸세.”
동섬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래서 자네가 필요한 게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죄 없는 자가 아니라, 다시 돌아온 자일세. 백다.”
승훈은 눈을 들었다.그 눈동자에 맺힌 건 눈물이었는지, 촛불이 반사된 것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천주님께서… 정말 이 조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우리에게도 사제단이 있어야 겠지요.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많은 고려가 필요한 일입니다. 차라리 숙사께서… ”
동섬이 그 얘기에는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장궤 위에 손을 얹었다.
“이건 어쩌면 우리의 공의회요, 우리의 예루살렘이요 안디옥 일지도 모르네. 그얘기는 나중에 뜻을 함께하는 교우들과 같이 상의 하도록 하세나.”
등잔불이 살짝 흔들리고, 바람이 문틈을 쓰다듬듯 지나갔다. 조선의 첫 사제단, 명확한 이름조차 없던 그 모임이, 이 작은 방에서 세워지고 있었다. (계속)
<위 사진, 창덕궁 부용지에 있는 규장각 건물. 정조는 즉위 후 왕실 서고인 이곳을 비서실 감사원의 기능까지 더한 실세의 권부로 만들어 신진 신료들과 함께 학문을 닦고 정사를 폈다. 수시로 간이 백일장을 열었다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답안을 쓴 신료는 부용지 가운데 있는 기와집 만한 섬으로 유배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하루짜리 간이 유배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유배의 처분을 받은 이가 바로 이승훈의 부친 이동욱이었다. “부제학, 윗사람이 먼저 솔선 수범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래야 다음 사람도 창피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하며 눈을 찡긋하는 젊은 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동욱 부제학은 모처럼 하루를 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