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기업들, 가격 선제 인상”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산 수입품에 25%,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 경고등이 켜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5일 공개한 경기동향 보고서에서 “미국 사업자들이 향후 몇 개월 간 경제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폭의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도 “이들은 잠재적인 관세가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연준은 일부 기업이 관세가 오를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고 적었다. 연준은 지난달 조사 기간 필수품 수요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저소득층 사이 비생필품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고율 관세로 인해 물가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험사 프루덴셜PLC 수석 이코노미스트 레이 패리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용률과 임금상승률이 둔화하고, 가계 실질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다.
기업 컨설팅 회사 액세스매크로의 팀 마헤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관세가 미국 경제라는 열차를 꽤 빨리 탈선시킬 수 있다”며 “비록 1970년대, 1980년대 수준은 아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WSJ은 수입품 가격 상승 위협에 최근 몇 주 동안 미 기업들 사이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가전제품 전문 판매점인 베스트바이의 코리에 배리 최고경영자(CEO)는 매장 판매 제품 중 중국과 멕시코산이 가장 많다며 “유통업체가 관세 비용을 소매업체에 전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로 인해 미국 소비자가격이 인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에 1056개 지점이 있는 베스트바이의 주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 부과를 발효한 지난 4일 하루 만에 13% 떨어졌다.
촘촘히 엮인 글로벌 공급망 체계 속에서 한 가지 수입품 재화 가격만 올라도 여러 재화를 섞어 만드는 완성품 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식품·자동차·철강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의 소비자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농산물에 대한 고율 관세 기조를 유지하면 미국 밥상물가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과일, 채소, 원예 상품 절반가량이 수입품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미국 농부들조차 고율 관세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칼륨 비료 약 90%는 수입품이며, 이 중 85%는 캐나다산이다.
스태그플래이션이 도래하면 미 연준의 통화정책에도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고용률이 낮아질 수 있고, 낮추면 물가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2년 6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이 6.5%까지 오르는 등 최근 수년간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겪었는데, 연준은 높은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등의 방식을 쓰며 간신히 지난 1월 물가상승률을 2.9%까지 떨어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