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방낙아, 바오로 처럼 나서 교회에 헌신 하거라”
“천주학의 또 하나 근간이 되는 미시야 사상과 재림 사상도 보록이 정립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지, 교덕서들을 보면 보록이 처음 창시한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를 초기에 공표하고 체계화 것이 보록이라는 것은 정설로 굳어져 있는 듯 하이”
그 무렵 직암과 동섬 등이 독파한 교덕서들에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음역인 미시야(彌賽亞)라는 말과 함께 이를 의역한 구세주(救世主) “세상을 구원하는 주인” 라는 말이 널리 쓰여지고 있었다.
1600년대 쓰여진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이 그 원전으로 거기에는 ‘耶穌基督 救世主 也,救贖萬民,使之得永生。'”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며, 만민을 구속하여 영생을 얻게 하신다.” 고 했다. 이후 “救世主”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이 책의 저자인 루도비코는 이 대목에서 기독(基督) 이란 말도 썼는데 이는 기리사독, 그리스도를 음차한 말의 약어로 루도비코 그는 천주라는 단어와 함께 기독이란 단어를 널리 쓰여지게 한 장본인이다. 루도비코는 누구보다도 교덕서를 열심히 읽는 내포 이존창의 세례명이기도 했다.
또 구원자 라는 뜻의 구주(救主) , 불교의 미륵(彌勒)에 견주어 기륵(基勒) 이란 표현도 쓰여지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 에서 기독교를 유교적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救世主”(구세주)보다는 “救主”(구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天主遣聖子救世人,耶穌者即救主也” “천주께서 성자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하시니, 예수가 곧 구주이시다.”
일각에서 기독. 기리사독이라는 말도 마테오 리치가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지고는 있는데 ‘천주 실의’에는 그 단어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메시아론, 구주론과 재림사상, 이 두 사상이야 말로 천주교, 기독교의 중심사상으로 등장해 기존 유대교와 차별화 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유대교 역시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서 메시아는 주로 정치적, 사회적 구원자,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왕, 외부의 압제(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로부터 해방 시켜줄 지도자. 종말에는 야훼의 공의를 실현할 신적 통치자를 의미했다.
이른바 “기름부음 받은 왕”에서 시작되어 다윗의 후손으로서 온 세상을 다스릴 신적 존재를 뜻했던 것이다. . 하지만 바오로를 비롯한 초기 예수 운동가들은 메시아를 인간으로 태어나 이땅에서 고난받고 인간의 죄를 대신 지는 대속의 구원자로 발전 시켰던 것이다.
실제로 아담의 원죄 문제는 유대교에서도 중요한 개념이긴 하지만, 메시아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 죄 문제 해결은 주로 율법과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의 역할이었고, 메시아는 신성한 왕의 역할로 하는 이로 구별돼 왔었다.
그러데 바울에 이르러 이 모든 요소를 통합하는 인물로 메시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정 했던 것이다. 야소야 말로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종합적으로 성취한 메시아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당연히 유대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메시아의 역할은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적 고통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핵심인데 원죄의 대속까지 다룬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예수는 실패 했다고 보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더욱 분개하게 한것은 바오로 등이 자신들이 무심히 지나쳤던 경전, 구약을 원용 하면서 예수를 “고난받는 메시아”이자 “대속적 희생 제물”로 해석하고 선언했던 점이다. 바오로는 로마서와 고린토서 에서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이며, 이는 성경(구약)에 예언된 것이라고 강력히 설파 했다. 바오로의 해석은 구약 가운데 특히 이사야서 (53장)를 예수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명 되고 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어 저마다 제 길을 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던 것이다.”
참 대단한 묘사다. 예수 탄생 수백년(600-800) 전에 이같은 광경을 유대 선각자들은 생생하게 그려 냈던 것이다. 바오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메시아로 설명하면서, 이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 의 이야기와 그 개념을 대속 이라는 발군의 신학적 통찰로 재구성했다. 바오로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학이 발전하면서 예수와 이사야 53장의 연결이 정설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예수가 체포되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친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 이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메시아적 죽음이 구원의 핵심임을 알지 못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그후 부활한 예수가 그들에게 나타나 구약의 메시아적 예언을 설명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는다.
즉, 부활 후에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구원의 계획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자들은 부활을 목격했지만, 아직 그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신학적 의미를 가지는지 완전히 체계화하지는 못했다. 구원이라는 개념은 아직 그들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이때 바오로가 나서 믿음을 통한 의로움(칭의), 율법과의 관계, 새로운 계약 등의 개념으로 구원을 상정하고 이를 설명했던것이다. .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처형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구세주 대속의 위대한 희생임을 강조 했던 것이다.
천주학을 따르는 이들은, 기독을 믿는 이들은 야소를 구세주라고 믿는 데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출발하게 된 것이다.
그들을 위시해 직암 동섬 까지도 금과옥조로 삼은 사도신경에서 명확히 선언 된다.
.<..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곳으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
…降於陰府,第三日自死者中復活,昇天,坐於全能父天主之右,將自彼來審判生死者。
그런데 여기서도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고 언급 되듯이 바오로 등 초기 예수운동의 지도자들의 메시아론은 재림이라는 전무 후무한 신앙적 비약으로 발전 한다.
재림론이야 말로 예수 신앙의 정수이며 믿음의 궁극이다. 재림은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었지만 부활해 승천 했던 예수가 다시 이땅에 강림해 궁극의 심판을 한다는 사상이다.
바오로는 예수 재림을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 하나로 보았고, 그의 서신에서 이 개념을 매우 강조했다. 특히 데살로니카전서, 고린토전서, 빌립보서에서 재림과 관련된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주님께서 친히 다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터인데,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아남아 있는 동안’(we who are still alive)이라는 표현은 바오로가 당시 자신 세대 안에 재림이 올 것이라 기대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바오로는 처음에는 예수의 재림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곧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변화될 것이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죽은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오로는 모든 신자들이 재림 전에 살아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재림을 ‘언제든 올 수 있는 사건’으로 강조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도 그리스도 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입니다.”
“나는 이 대목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행으로 여겨 졌습니다. 그때 아소의 제림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됐겠나 싶었던 거지요 ”
직암이 책을 덮으면서 동섬에게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 재림과 종말론은 그것을 믿는다는 것에서 그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일 테니까…”
동섬은 재림을 천주교 서사중에서 가장 극적인 서사라고 했다. 그때끼지는 재림과 종말을 종교적 상상력의 긍국이라고 보고 있엇던 것이다.
실제 바오로가 재림을 강조한 이유도 두 가지로 요약 된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유대교 및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었다. 바오로는 신자들이 핍박 속에서도 견디도록, “곧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바오로는 신자들이 나태해지거나 세속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언제든 재림이 임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어넣었다.
바오로 이후에도 교회는 예수 재림을 중요한 신앙 교리로 유지했지만, 재림이 즉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점점 ‘재림이 언제 오는가’보다,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바오로는 예수 재림을 기독교 신앙의 필수 요소로 선언하면서, 초대 교인들에게 가장 큰 희망이자 신앙의 동기부여로 강조했지만 그의 신학이 발전하면서, 재림 뿐만 아니라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함께 가르쳤다.
그렇다면 예수 자신이 재림을 예고했는가? 복음서에는 예수가 자신의 재림을 예고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들이 있다. 마태복음 24:30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고 했고 마가복음은 13:26에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고 했다.
이 구절들은 예수가 ‘종말’과 ‘인자의 재림’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예수의 말씀들이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는지, 개인적 재림을 의미하는지는 학자, 교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또 구약, 유대 사상에도 재림 개념이 있었을까? 유대교 전통에서는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아훼의 나라를 세운다는 개념은 있었지만, 메시아가 한 번 왔다가 다시 온다는 재림은 없다.
이 지점에서도 예수 재림 사상은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을 두번 뛰어 넘는 기독교적 독특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직암이 다시 보고 있던 성교요리문답에도 “耶穌基督必再臨審判生死” (예수 기독 반드시 재림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리라.)고 명확히 나와 있었다.
“교회가 중요 합니다. 교회야 말로 천주 사상을 지키고 전파하는 중심이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지, 모든것은 사람의 일이니까…”
금과옥조 사도신조는 부활과 재림을 믿는다는 고백 뒤에 즉각 교회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성신(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 我信聖神 我信聖而公教會,諸聖相通)
초기 교회, 초대 교회를 시작한 이는 베드로(반석) 등 사도 들이었지만 정작 반석으로 올려 놓은 이는 보록 이었다.
직암과 동섬은 보록의 교회론에 다시 천착 했다. 교덕서들을 찾고 또 찾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