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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노트북>  “Before I die”  내가 죽기전에…

  안지영 기자

3일 전 한국에 있는 올케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설 연휴 끄트머리였다.
3년 전 코비드를 앓은 이후 재발한 유방암이 전신전이가 돼 결국 반 백을 갓 넘긴 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백세 시대’ 라는 말이 아직은 ‘훈장’ 인가보다. 누구나 받을 수는 없는…

올케가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가슴에 밀려온 것이 ‘미안해’ 라는 말이었다. 아침 혹은 저녁 막장 드라마의 단골 캐릭터 -못된 시어머니와의 쏘울메이트 격인 막장 왕재수 시누이- 까지는 아니었다 해도 그녀에게는 곱지 않았을 시누이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두 달 전 통화 할 때만 해도 환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성격 만큼이나 밝고 또렷했던 그 목소리가 나에게 ‘미루는 용기’(?)를 줬다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
미안했다는 말을 왜 그때 못했을까.

최근 4년 동안 친정 아빠, 엄마 그리고 올케를 보내면서 까지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 한잔하며 ‘다음’ 을 말하는 그 순간은 얼마든지 이 생에서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
내일 아니면 다음에 볼 수 있다는, 다음에 말하면 된다는 그 당연한 믿음을 해맑게 부셔버리는…

특히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겪게 됐을 때 그러한 안타까움은 더하다. 한국의 무안공항 참사에 이어  며칠 전 워싱턴 D.C.상공에서 군용헬기와 아메리칸항공 소속 여객기가 충돌 후 포토맥 강에 추락한 사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지난 금요일에는 필라델피아 번화가 한 복판에 소형 항공기가 추락, 사상자가 발생해 충격이 더해지고 있다.

그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 그들을 기다렸을 사람들이 가슴에 담아 뒀던 감정들과 사연 중엔 미뤄둔 사랑 고백, 미처 못한 사과, 미뤄 둔 용서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사망한 이들과 그들 가족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서로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했을 그 수 많은 말들이 파편이 되 가슴에 뭉뚝한 칼끝처럼 꽂히는 느낌이다.
쓰던 글을 잠시 멈추고 상념에 빠져 있다가 죽음과 장례와 관련 된 미술 작품들을 검색해 봤다. 가장 먼저 나온 그림이 빈센트 반 고흐의 ‘우는 노인’이었다.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수작. 고흐가 괜히 고흐가 아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Before I die…> 라는 설치 미술 작품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라는 제목 자체가 그냥 내 가슴에 와락 안겨왔다.

<Before I die…>는 뉴욕에 활동 기반을 둔 캔디 장(Candy Chang 아래 사진)이라는 대만 출신 현대 미술 작가의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 2011년 뉴올리언스에서 처음 시작됐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겪은 후,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버려진 건물의 외벽을 칠판으로 바꾸고, “Before I die, I want to ____.”(죽기 전에 나는 ____ 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 작품(프로젝트)는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어, 세계 곳곳 다양한 언어와 문화에서 비슷한 형태로 재창조됐는데 현재 까지 75개국, 35개 국 언어로 5천개가 넘는 <Before I die…> 벽이 설치되 있다. (Before I die…공식웹사이트 candychang.com 참조) 이 작품은 단순한 공공 예술을 넘어, 삶과 죽음, 꿈과 목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참여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에 어느 날 맨하탄 한 복판에, 아니면 내가 사는 버겐카운티 공원에  <Before I die…> 벽이 설치 된다면 나는 무엇으로 이 빈칸을 채우게 될까?    “Before I die, I want to ____.”
다른 것도 아닌 그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뭐 어려운거라고 그걸 그렇게 안(못)하고 살았나 싶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다짐해본다.

“사랑해” ( “Before I die, I want to say I love you.” )
“고마워” ( “Before I die, I want to say thank you.” )
“미안해” ( “Before I die, I want to say sorry.” )
그리고 꼭 안아주기. 뽀뽀해주기. ( “Before I die, I want to hug you and kiss you.” )

여러분이 만약 이런 벽을 본다면, 어떤 말을 적고 싶을지 궁금해진다.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캔디장의 작품에 적힌 말들 가운데도 위 세 마디와  저 두 몸짓이 가장 많을 듯 싶다. 캔디장의 프로 젝트는 온라인으로도 계속 되고 있다.

‘Before I Die’ 프로젝트 이후에도 다양한 공공 예술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참여와 내면의 성찰을 유도하는 작업을 미국 전역에서 지속해 온 캔디 장의 최근 대표적 전시는 2021년 ” After the End”  와  2023의  The Nightly News 가 꼽힌다.   브루클린의 그린우드 묘지에서 열린 ‘끝난 뒤에’  전시는 방문자들이 상실에 대한 경험을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브로드 미술관에서   전시된  ‘저녁뉴스’  작품은 학생들의 꿈에 대한 손글씨 묘사를 필름 형태로 재생하여,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적인 경험을 탐구했다고 평가된다.

내 곁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나날 동안 원 없이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를  하고 살아야겠다.
뻔한 말을 남발한다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 뻔한 말이 우리를 살게 한다.

Before I Die…
<2/01/2025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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