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방낙아, 바오로 처럼 나서 교회에 헌신 하거라”
직암이 수표동 시화에 부리나케 갔을때 막 광암의 마지막 마무리 웅변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천주의 가르침, 참으로 참된 교리(敎理)를 알게되는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훌륭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천주의 교리는 사람이 사람 답게 살아가는 원리이자 우주만물과 세상이 세상 답게 존재하는 원리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재자인 천주(天主)를 공경(恭敬)하는 참다운 방식은 서양인들에게서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들은 천주의 도리(道理)에서 천지창조(天地創造)며 남북극(南北極)의 원리며, 천체(天體)의 규칙적 운행(運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리는 자기 마음과 자기 성격을 바로잡는지 도리이며 임금들과 백성들의 서로 다른 본분(本分)을 알려주는 도리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높은 발전을 했습니다.”
“천주의 도리는 이 세상의 시작(始作)과 종말(終末)이며, 영혼(靈魂)과 육신(肉身)의 결합이며, 천사(天使)와 악신(惡神)들의 구별이며, 죄를 사하기 위한 천주성자(天主聖子)의 강생(降生)이며, 부활입니다. 선인(善人)은 천당(天堂)에서 상(賞)을 받고 악인(惡人)은 지옥(地獄)에서 벌(閥)을 받는 것이 해괴하다고 말 들 하지만 이 도리, 내세의 개념은 인간이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강화하며, 이는 유교의 윤리적 목표와도 상통합니다.”
“천주의 도리는 이제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신분 귀천 따로 없는 사랑과 평화의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가르침입니다. 이제 그 좁기는 하지만 그 문이 열렸기에 동도 여러분들께 그 소식을 전합니다. ”
그날 그의 얼굴은 대청마루에 비치는 석양에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직암에게는 붉은 무덤위로 다시 떠올라 각인되듯 가슴을 파고 들었다. .
슬픔과 회한 속에서도 한가지 위안은 천주의 가르침을 쫒는 이가 이런것 따지는게 어울리지 않는다 싶으면서도 광암의 초라한 묘소가 의외로 풍광이 좋은 곳 이었다는 점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배산 임수의 명당으로 생각 됐던 것이다. 경주이씨 선산의 위치가 그랬는데 광암의 묘는 구석에 놓여 있었기에 오히려 앞쪽 숲을 피해 흐르는 강물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던 것이다.
유난히 풍광을 좋아했고 그 풍광에서 천주의 신묘함과 전능함을 느꼈다는 세래자 요안 광암.
“잘 잠들어 있게나.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터 이니…”
용문산 피정은 장형 녹암의 강권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꿈속에서 천주의 음성을 들었기도 했지만 꿈속의 천주는 어디로 가라는 얘기는 않했다. 그저 “방락아, 보록처럼 교회를 위해 헌신하거라” 했을 뿐이다.
광암의 묘소에 다녀와서도 며칠을 두문불출 하면서 끙끙 앓아대기만 하는것 같아 안돼 보였던지 윗채의 장형녹암이 직접 찾아왔다.
“세찌 안에 있는가?”
“형님 왠일로.. 저를 부르시지”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오는 길일세. 자네도 방 안에만 있지 말고 좀 움직이게나. 이게 뭔가. 대장부가…”
의외의 말이었다. 한번도 장형은 일신을 대장부라 한적이 없었다. 녹암도 이벽의 죽음에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일신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혼자 여러 궁리를 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성년광익을 읽다가 묘한 경함을 했기에 갸우뚱 하고 있는 차에 녹암이 어디든 가서 정신을 추스리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라고 해서 작심한 일이 용문산 피정이었다.
그즈음 직암은 모든게 부질없는 것 같았고 맥이 빠졌다. 책도 눈에 들어 오지 안았는데 그날 따라 방안에서 뭉기적 거리다 무심히 서탁 위에 놓여 있던 성년광익을 펼쳤는데 사도보록 (使徒 譜錄, 사도 바오로)에 대한 부분 이펼쳐 졌다.
다말구수로 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추었고, 사울은 땅에 엎어졌다. 그 순간 그는 한 음성을 들었다.
“사록(사울)아, 사록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놀란 사록이 물었다.
“주님, 누구십니까?”
대뜸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이 의아하기는 하다.
그러자 그 음성이 대답했다.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야소다.”
강한 빛 때문에 사록은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 동행하던 사람들도 소리를 들었지만, 야소를 보지는 못했다. 사록은 다말구스로 업혀가 3일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사흘 뒤 야소의 제자인 아난나가 사울을 찾아와 안수를 내렸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마치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며 다시 보게 되었고, 즉시 세례를 받고 야소를 믿는 사람이 되어 이름도 보록으로 바꿨다. 사도 보록의 탄생이다.
성경광익 뿐 아니라 다른 교덕서에도 나와 있는 얘기라 새로운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책에 적혀 있는 이 광경을 그려 보면서 왜 나한테는 이런 하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안타깝게 생각됐던 것은 사실이다.
다말구스로 가던 보록을 생각하며 벽에 머리를 기댔는데 깝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먼지가 나는 사막에에서 헤매고 있는데 어디서 큰 음성이 들렸다.
“ 방락아 방락아 보록처럼 나서 교회에 헌신 하거라, 대장부 답게…”
대장부라는 말을 듣고 놀맀는데 묘한 일이었다. 목소리만 들렸기에 그 묵소리의 주인이 천주인지 야소인지는 분간 할 수 없었다. 몇차례 꿈 혹은 비몽사몽간에 천주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장면들은 보았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어떤 목소리인지 누구를 닮은 목소리라는 것이 생각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또한 가슴 속의 울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방지거 사물락을 줄여서 방락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그 목소리의 주인공 주님은 어찌 알았을까 싶었다.
그랬는데 장형이 자신을 대장부라 부르면서 어디에 라도 가라고 하자 교회에 헌신하라는 목소리가 이것이구 하고 생각 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용문산으로 가기로 했다. 앵자봉의 천진암과 주어사도 생각 해 봤지만 그곳은 이벽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많은 곳 이어서 더 심란해 질것 같아 용문산 용문사로 정했다.
용문산은 양근 감호 뒷산으로 가까왔고 특히 용문사는 권씨 집안 대대로 인연이 있었다. 권씨가는 남인으로 분료 되기 전 부터 융통성이 있어 완고하지 않아 불교를 배척 하지 않았다. 용문사는 일신의 14대 할아버지인 개국공신 권근이 창건주인 정지국사의 부도비문을 작성하기도 했기에 인연이 깊었고 일신 등 권씨가 학동들은 평시에도 양근 감호 뒷산의 용문사를 자주 찾아,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으며, 정신을 수양하곤 했던 곳이다.
장형 녹암은 동섬과도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다녀와 정신을 추스리면 동섬과 나도 천주학 모임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네.”
놀랄 일이었다. 그리고 이 말 때문에 일신이 가야할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형님과 동섬은 세례명 까지 생각 해 놓았다고 했다.
형임은 암브라시오, 동섬은 유스티노 란다. 꽤 많은 고려와 공부가 있어야 떠오르게 되는 이름들이다.
성 암브로스(Ambrose)는 4세기에 활동한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서 법률가이자 밀라노의 주교다. 아리우스파에 맞서 정통 기독교의 전례와 성직에 대한 개혁을 이룩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독교의 성인이며 교회박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간 성인이다. .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2세기 때의 철학자 로서 야소교 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정립했다고 여겨지는 호교 교부다. 사제품을 받지는 않았지만 계속 철학자의 옷을 입고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때에는 로마에 정착해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는데, 유명한 타티아누스가 그의 제자였다. 유스티누스는 루스티쿠스 총독 때인 165년에 동료 6명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했다.
녹암과 동섬 두 사람의 성정과 두 사람의 앞날과 관련해 그 의미가 큰 세례명이었다. 두 사람에 대한 세례 광경이며 누가 세례자로 나섰고 대부는 누가 섰는지 뒤에 살펴보기로 한다. 녹암에 대한 세례 집전은 누가 나서야 되는지 의론이 분분했던 사안이었다.
동섬은 책 보따리를 싸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일신도 그 못지 않은 책 보따리를 들고 두 사람은 용문산을 올라 용문사 요사패에 며칠을 묶으면서 그 책들을 다시 독파 하면서 교회론과 보록의 전도 여행과 ‘이신칭의’ 부분을 집중 공부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