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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노트북>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해제…장난하는가

안지영 기자 

모닝커피가 뇌를 깨우기 전에, 공포가 온몸을 흔들어 깨운 아침이었다.  비상계엄 선포라니…

80년 봄,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 그때가 바로 계엄령 치하 시절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에 끊임 없이 들이닥쳤던 형사들… 엄마는 간 밤에 삼촌들이 집에 몰래 들렸다가 남긴 서류 같은 것들을 뒷마당에서 태워 지하실 하수구에 물 섞어 조심스레 버리곤 하셨고…
우리집에 조사 차 드나 들었다가 둘째 외삼촌과 비밀 연애를 해버린 ‘여군 아줌마’라고 불리웠던 예쁜 아줌마는 나중에 보안사 소속 여군 대위로 밝혀졌다. 당시 S대 법대생이었던 셋째 외삼촌은 도망자 신세였는데 어느날 여군 아줌마가 군용 지프 차를 타고 와 오빠와 나를 집 근처 새로 생긴 제과점에 데려갔다.

원하는 빵과 케잌을 빨리 고르라 했고 종이 쇼핑백에 작은 쪽지를 넣어 엄마에게 꼭 가져다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랬다. 그날 밤 우리집 대문이 부셔졌고 베란다 유리창이 깨졌다. 군화 신은 사람 두 명이 집을 휘젓고 갔다. 삼촌과 친구들을 잡으러 온것이었다. 하지만 낮에 다녀간 여군 아줌마 덕분에 셋째 외삼촌은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부엌방에서 너무 무서워 이모 품에 안겨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깟 대학생들 몇 잡으려고 군인들까지 민가에 쳐들어 올 수 있었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무섭고 또 무섭다. 나에게 게엄령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오늘 아침, 비상계엄 선포라는 소식을 보는 순간
80년 그날 밤,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 울리던 군홧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 전방 GP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조카 녀석이 가슴에 콱 박혀왔다.
국지전이라도 발생한다면 우리 모두는 전방 초소 근무 아들들의 비보를 가장 먼저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조카 말고도 수 많은 생떼같은 아들 딸들이 군복을 입고 말도 안되는 명령에 희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또 미어졌다.

SNS에는 벌써 영화 제목 ‘서울의 봄’ 이 아니라 ‘서울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윤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비꼬는 밈이 떠돌고 있다.   비상계엄이 장난인가. 밤사이에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리 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계엄령’ .. 그 단어 하나에 소스라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시절을 지나 온 당사자든 그 가족이든 트라우마의 밤을 보냈을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 남편 안동일 대표 기자는 일 주일 전 부터 오늘 오전 달링톤에서의 라운딩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비상계엄 소식을 접하고 부터는 어딘가  초초해 하고 캔슬하고 싶어 하는듯 했다. 예약한 사람이 전화를 안받아서 할 수 없이 길을 나서야 했다.
잘 다녀오라 허그를 하려는데 눈에 핏멍울이 차 있었다. 눈에서 혈압이 터져 핏멍울이 맺혔던게다. 늘 ‘괜찮아 별거 아니야’ 하며 뭐든 스윽 스윽 잘 헤쳐가던 남편. 하지만 그 시절이 그 외삼촌의 친구 소년수에게 뼛속 까지 새겨 놓은 트라우마는 세월을 비웃으며 그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직접 몸에서 반응했다 그렇게…

비상계엄을 지지 했던, 아니 지금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그게 진짜 무얼 의미하는건지 알고나 있는지…  그것이 진정 당신들을 지켜주고 정의를, 공정을, 질서를 확립해 줄것이라 믿는건지…

‘계엄을 지지한다’ 고 했던 당신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상계엄 이라는게 당신의 일상에 가할 철퇴는 보이지 않는지…
계엄군의 군홧발이 당신의 어린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는건 모르는지…

좌우를 떠나 반헌법적 행위 앞에서 우리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   나는 평소에 나와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는다해서 배척 하지 않으려 했다. 왜냐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스탠스는 여전하다.

하지만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지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독재정권에서만 일어났었던, 우리에게는 역린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깜도 안되는 사람 현직 대통령,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만에 계엄을 해제 했다. 술 먹은 양치기 소년인가.    정말 창피하다.

이 일로 온 세계에 우리나라의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문화적 위신이 바닥을 쳤다. 지금 망해도 너무나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해진 나라가 내 조국이라는게   너무도 아프고 속상하다.

오후가 되니 한국에서 벌어진 이 모든 상황에 대한 현타(현실 타격감)가 제대로 밀려 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에 대한 온전한 반응이 좀 늦는 편이다.  옛 기억에 가슴이 쿵쾅 거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남편을 라운딩 보내고 오전 미사에 참석해 영성체 하며 드렸던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저의 몸과 영혼에 그리 해주시는 것 처럼   부디 내 조국 대한민국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주시길…’

(12/3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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