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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75)

 안동일 작

“세례는 평생 천주를 믿고 살겠다는 진지한 고백이며 결단의 표시”

세례식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됐다.
성경에 기록된 초기 세례의 형식은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오는 것이었지만 일동은 승훈이 받았던 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성수(聖水)를 뿌리는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다.
성수는 다행히 승훈이 연경에서 작은 호로병에 가져온 것이 있었다. 맑은 물을 떠다 소금을 약간 더한뒤 사제가 축수를 하면 성수가 된다고 했지만 덕높은 연경의 탁덕이 축수한 성수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 성수에 인왕산 약수터의 맑은 물을 떠다 섞어 세례 식의 성수를 마련했다. 성유도 승훈이 작은 약병에 담아온 것이 있어 당분간은 걱정이 없었다.
세례의 순서는 승훈의 기억과 교덕서의 기록을 토대로 논의 끝에 정해졌다.
세례식에 앞서 세례 집전자의 간단한 세례에 대한 의견을 담은 일종의 강론과 세례 받는 이들의 통회와 각오를 듣기로 했다.  이때 승훈이 나서 이 통회와 각오를 연설이나 독백 형식으로 할것이 아니라 천주에 올리는 기도로 하지고 해서 그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직암에게도 기도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이됐다.

“그런데 천주에 올리는 기도에는 무슨 형식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직암이 말했다.

그때까지 강학 도반들은 기도가 천주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거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묵도라 해서 개인적으로 천주에 대해 상념하는 시간을 가졌지, 정식으로 기도는 올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정식 신자가 되는 마당에 기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광암 이벽이 입을  열었다.

“기도는 천주님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그냥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아뢰면 되겠지요. 어느 교덕서에 보면 기도에 익숙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 성서에는 어떤 제자가 “주여, 제게  기도 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라고 고백하기도 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승훈은 역시 세례 받은 신자 답게 기도에 대해 두 사람보다 깊은 경험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광암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야소 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진실되고 정직한 모습으로 하라고 가르치셨다고 연경의 탁덕님들이 누누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천주님께  다가가 기도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아주 좋은 일례를 일러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천주님께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달라 그려면 나도 천주님께 무엇을 드리겠다. 이런식의 거래는 금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테면  벗에게 전한 좋은 소식을 천주님께 말씀드리고, 그 일에 대해 천주께 감사해보라. 또 나쁜 소식을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기도해보라.  뿐만 아니라 분노, 좌절, 혹은  간혹 느끼는 의심에 대해서도 천주님께 아뢰보라. 천주께서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그것들을 다 고백해 보라. 천주는 우리의 좋은 일, 나쁜 일 모두를 감당하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시다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래도  쑥스러운제 자신의 요구와 바람을   뒤로 두고 주변의 얘기를 먼저 했더니 기도가 참으로 쉬워 졌습니다.”

광암이 다시 나섰다.

“그렇지,  만천 자네가 참 잘 배우셨네 , 그러면서 우리에게 매우 좋은 소식은 천주께서는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공동체 우선적인 기도에 아주 친절하게 먼저 응답해 주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야 교독서에서 읽었지요. “
광암의 천주학 지식은 들을 수록 깊었다.

“내용은 그렇다해도 시작과 끝에 무슨 형식이 있을 듯 싶은데…”

직암이 다시 물었고 승훈이 답했다.

“연경에서 보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해거 온갖 것을 다 아뢰다가 나중에 야소 기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하고 아문(아맹)으로 끝내더군요. 저도 요즘 그러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김역관도 그 얘기를 했지요. ‘하늘에 계신 천주님’ 과 ‘야소 기리시도의 이름 받들어’ 가 중요하다는 얘기 입니다. 앞으로  그렇게들 하십시다. “

김 역관은 승훈 보다 먼저 연경의 북당을 찾아 미사를 참례 하고 왔던 김범우를 말했다.
그 부분도  한자식이 아닌 순 우리말로 하기로 했다. 아주 잘한 결정이다.

이를 기화로  초기 조선 천주교회에서는 ‘하늘에 계신 천주님’ ,  혹은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로 기도를 시작하는 관례가 주문모 신부가 입국해 굳이 모든 기도를 그 말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할때 까지 관례로 정립됐다. 아멘, 아맹, 아문은  그때  아문 으로 통일 하기로 했는데 이는 주신부에 의해 아맹으로 다시 정립된다.
세 사람은 승훈의 주도로 그 자리에서 기도를 연습 했다.

그때는 세 사람 모두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직암은 승훈의 말대로 평범하게 자신이 세례를 받게 됐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그 인연이 좋은 방향으로 귀결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기도를 올렸다. 어떻게 잘되게 해달라는 이야기는 승훈의 말대로 쑥스러워서 나오지 않았다.

이들 세 사람은  세례식 때  세례 문답이 끝나고 집전자가 세례선언을 한 뒤에 참석자 모두  함께 천주에 대한 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참석자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기도의 요령을 알려 주기로 했다.  때문에 이튿날  조선 천주교회 사상 최초의 통성기도가 진행 된다.  그날 광암의 집에 천주의 성령이 강림했는지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된 공동 기도가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고 그러자 모두들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였는데 나중에는 울부짖음이 됐다는  것이다. 부인 유소사 여사를 통해 전해진 정약종의  신앙 수기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그날 약종은 참석은 했지만 그날 세례는 받지 않았다.

통성기도(通聲祈禱)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크게 목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는 가리킨다.  근래에 들어 특히 한국의 개신교 예배 및 집회에서 자주 이루어지는 기도 양식으로 영어권에서는 이와 같은 통성기도를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모습이라 한국식 기도 (Korean prayer)라 칭하기도 한다는데 확인 하지는 못했다.

개신교 내에서도 이 통성기도에 대해  ‘옳다’ ‘그르다’ ‘너무 나갔다’ 등으로 논란이 적지 않다는데  오늘날의 천주교 에서는 이 통성기도의 모습이 자주 보여지지 않을 뿐 더러  소란스럽다고 폄훼하면서 높이 평가 하지는 않는데 그 연원이 기실 초기 천주교의 신앙 성조들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뜨거운 민족이었다. 그리고 기도의 민족이었다.  어머니들이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 때의 기도가 소리내서 읊었던  통성기도 였다.

이 얘기는 후일 개신교와 한국의 3.1 운동, 그리고  1910년대 평양 성령 부흥 운동을 다룰 떄에  때 자세히 다루기로 하는데 며칠전  한국의 한 교구 신부가 카톨릭 신문에 개재한 이 통성기도에  관한 글의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의 갈등과 반목이 의외로 심각한 상황에서 이런 류의 화해를 촉구하는  글의 울림은 크다.  개신교는 천주의 마리아 공경을 우상숭배라 하면서 질겁을 하고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의  요란한 성령부흥 운동에 경건함이 없다고 질색을 하곤 한다. 성당에서 그랬다가는 수녀님이 바가지로 성수를 뿌릴 것이라고…

개신교 통성기도에 대한 천주교 신부의 소회다.

“보통 청원기도를 드릴 경우에는 뭔가 속으로부터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기에 소리가 나올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시편에 보시면 “제 기도가 당신 앞까지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울부짖고 하느님께 다다르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는지 그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고요한 중에 기도하는 습관에 익숙하다가 가끔씩은 다른 모임이나 단체에서  크게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것이 거슬릴 수 있습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불편감,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이 생겨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듯합니다. 물론 거부감도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내어서 하는 기도에서 소리는 하느님께 말을 건네는 도구라고 보입니다. 이런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온 정성 으로 바친다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가끔은 지나친 분들도 계십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눈으로는 나와 다르게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를 바라보시면서, 따뜻한 마음속으로는 애절함을 호소하는 상대의 깊은 진심을 느껴 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교회의 통성기도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평양 장대현 교회에 있었던  미국 감리교 존스(G.H. Jones)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현장 보고를 했답니다.

“ 그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1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점점 그 소리가 높아져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웠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전혀 혼란 없이 마치 대규모 연주자들이 악보를 보고 연주하듯, 그들의 기도 소리가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천 명에 이르는 군중들이 모두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들고 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캐나다 스코트 선교사는 현장 보고에서 한국 교회의 통성기도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일제의 침략과 국권 상실,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파탄이라는 극한적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집단적 ‘탄원’ 형태의 기도가 나왔다는 이야기 입니다.

“고통과 상실, 아픔과 슬픔을 지닌 자들에게 적합한 기도로  통성기도를 ‘통(痛)성기도’라고도 하는데  한많은 우리 민족에게 썩 잘 어울리는 기도랍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통성기도를 하며 한도 풀고 은혜도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갖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전에는 낯설어서 불편했던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대화하는 방식을 이해하면서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분의 심정에 동참해 ‘주님,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저 분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라는 기도가 들려오는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이 그려집니다.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풍성한 행복 누리시기를 빕니다.”   (서울 양천구 천주성당 주임 사제)

이야기가 한참 빗나갔기는 했지만 천주가 점지한 나라 한국의 오늘을 만든 초석의 하나인 신구를 아우른 기독교 신앙과 관련  워낙 중요한 문제 이기에 관심을 갖고 새기기로 하면서 다시 광암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윽고 세례식의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 깨끗한 옷을 차려 입었다. 도포와 두루마기, 갓을 갖췄다.  집전자 승훈은 청국에서 가져온 붉은 영대를  어깨에 걸쳤기에 도드라져 보였다.
시작의 말씀 전례는 기도식으로  짦게 진행 됐다.
“오늘 우리는 권일신 성도의 셰례식을 갖습니다. 천주님의 은혜와 가피로 새로운 삶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는 천주님을 따르는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천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세례의 의미에 대해  새겨 들으라는 동시에 승훈 자신을 다잡는 다짐의 기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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