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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74)

 안동일 작

“세례는 평생 천주를 믿고 살겠다는 진지한 고백이며 결단의 표시”

녹암의 얘기가 이어졌다.
“그렇기는 하네만 ..  그래서 세례를 지금 꼭 시행해야 겠는가?  내 잘은 모르지만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천주 신앙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일텐데,  아직은 성원도 그렇고 조금 이르지 않은가.  세례는 정식 탁덕이 래왕했을 때 확신이 선 사람들을 중심으로 받도록 하고 그때 까지는 총림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는 것이 좋을 듯 싶기는 한데…”
“아닙니다.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일단 시작을 해야 합니다. 또 지금으로선 정식 탁덕의 입국이 요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를 한다는 뜻에서,  우리의 결기를 다진다는 뜻에서도 승훈이 어렵사리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때 조속히 시행 하는게 맞지 싶습니다.  불교도 석가의 득도 이후 첫 제자 였던 다섯 비구의 노력에 의해 전파 됐고 공자의 가르침도 소수 제자로 출발하지 않았습니까? ”  광암이 열변을 토했다.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그렇게 우리끼리 세례를 주고 받는것이 천주 법도에는 그르지 않은가?”
“다행히도 법도에 그르지 않는답니다. 워낙 급할 때 일반 신자라도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위해 세례를 주는 데세 제도가 확립돼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 다행일세”
“그렇습니다. 승훈이 연경의 탁덕님들로 부터 언질을 받기도 했답니다. 돌아가면 자네가 중심이 돼서 세례를 줄 수도 있다고들 하셨답니다.”
“그렇습니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크게 규제하고 선도 하는 법입니다.”
직암이 거들었고 광암이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일단 천진암 강학 도반들 가운데 심지가 굳은 이들을 중심으로 세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덕조와 상의를 했는데 제가 먼저 만천에게 세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일신이 말했다.
장형 철신의 반응이 다소 흔쾌 하지는 않았다.
“꼭 그래야 겠는가? 자네 말고도 영민한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직암 숙사가 먼저 나서야 젊은이들이 따라 하지 않겠습니까? ”

언젠가도 언급 했지만 숙사로 불린  권일신은 광암 승훈 등에 비해 최소  띠동갑 수준으로 열서너살 연장이었다.
“내가 볼때 직암은 아직 천주 소양이 일천 한데.  훈습이 아직 많은것 같더구먼…”
어떤 점이 그런지는 말하지 않았고 직암도 묻지 않았다. 훈습은 몸에 벤 과거의 습관을 일렀다.
“차차 닦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세례라는 것이 완성을 의미 한다기 보다는 출발과 다짐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요.”
직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들 이미 결론을 냈군 그래, 아무튼 하기로 했으면 하게나, 역사에 기록될 초유의 일로 사가에 의해 채집 될 터니이 정신 바짝 차리고 전거를 충분히 따지고 행여 후일 책 잡힐 일이 없도록 하게나”
“명심하겠습니다.”

직암은 다음날 동구밖까지 광암을 배웅하면서 서로 동도들 가운데 연통이 닿는 사람들을 모이도록 해서 며칠 뒤 한양에서 만나자는 약조를 했다. 양근의 동섬은 본인도 본인 이지만  순암선생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조동섬을 초기에 참여 시키지 않고 일종의 예비군으로 남겨둔 일은 후일 조선 천주교단 신의 한수가 된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조선 천주교단의 출발을 알리는 ‘조기 단체 대세’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84년 계묘년 7월 초 이레 (음력) 직암 권일신은 한양 수표동 광암 이벽의 전셋집 대청에서 연경 북당에서  그라몽 신부로 부터 백다록 (伯多祿: 베드로)이라는 세레명으로정식으로  세례를 받아 정식 신자가 된 이승훈 으로 부터 방제각 사물략(方濟各 沙勿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라는 세례명으로 세자 요안(세례자 요한) 이벽을 대부로 하여 세례를 받았다.

이날 정성껏 꾸려진 광암의 대청 세례 제단 곁에는 정약전, 최창현, 이존창, 김범우등이 모여 있었고 이들은 이틀에 걸쳐 차례로 나름대로 지극 정성을 다한 감격의 자체 세례식을 가졌다.
형식이 내용을 규제하는 것이 맞았다. 직암만 해도 당초에는 출발을 다짐하는 간단한 의레로서 세례를 생각했는데 막상 이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례식을 갖기 전에 광암과 직암 그리고 만천 이승훈은 사흘 밤낮에 걸쳐 교독서들을 다시 실펴 보며 세레에 대해 꼼꼼히 따져 보았고 논의 끝에 자체 세례 순서며 주문등 의례를 우리말로 행하기로 정했다. 대단한 일이었다.

승훈 이백다가 정식으로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그는 영문도 뜻도 모르는 나전어로 세례를 받았다는데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말로 “예” “예” 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필담으로 무슨 내용이라는 것은 일러 주기는 했었지만… 나전어에도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을 텐데 집전하던 신부며 도와주는 신부들도 아무말 없이 넘어 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틴어에는 영어의 yes와 no와 같은 의미의 단어가 없다. 그래서 부사를 섞어 쓴단다. 긍정은 vero, ita, ita vero,가 대표적으로 쓰이고 ​부정은 ​non, nullo modo, minime 가 쓰인다. 라틴어 발음은 의외로 쉽다. 베로, 이타 베로, 논, 눌로모도 등으로 읽으면 대개 된다)
세 사람은 교독서들을 다시 꼼꼼이 찾아 읽었다. 워낙 중요한 의례 였기에 많은 한문 교독서들이 세례에 대해 언급하고는 있었다. 그리고 대세에 대해서도 그랬다. 하지만 교덕서마다 설명이며 순서와 질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게 문제 였다. 특히 한문으로 번역 하면서 그랬던 것 같았다.
광암과 만천은 이미 둘이서 세례식을 했다는데 그에 대해서는 게면 쩍었는지 “문자 그대로 긴급 세례 였습니다” 하고는 넘어 갔다. 이런 저런 것 따질 경황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돼 직암도 더 캐 묻지 않앗다.

세례(洗禮)는 천주를 믿는 사람이 본인의 신앙을 고백하고 평생 천주를 주님(主)으로 모시고 살겠다고 결단하고 고백하는 예식이다. 야소도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것을 필두로 으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시작했다. 더욱이 마지막 하늘에 오르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명령했다.

당초 세례는 온몸을 물속에 세번 담그는 예식으로 출발했는데 후일 이마에 물을 세번 흘려 뿌리는 약식으로 정착 했다. 이 의미는, 물 속에 들어가 잠김으로 옛 사람은 온전히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고대 유다지방에서 부터 이 씯김 의식 있었다는데 제대로 정착 한 것은 세례자 요한이 등장 하면서 부터로 되어 있었다. 진정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옛 생각 옛 습관 옛 마음은 죽고 천주와 야소가 주는 새 마음으로 태어나야만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물이 씻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과거의 모든 죄도 깨끗이 씻어지게 되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세례는 평생 천주를 믿고 살겠다는 진지한 고백이며 결단의 표시다.  교덕서 들은 세례를 받고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천주학 지식이나 교회 관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천주를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여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진실한 마음의 고백이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대세란 긴급한 상황에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사제를 대신하여 예식(禮式)을 대폭 생략하고 세례를 주는 것이다. 교덕서에 보면 대세는 대개 ‘임종 대세’를 의미하고 있었다. 세례 받는 사람이 임종에 임박하여 세례를 원하는데 주변에 사제가 없을때 일반 신자가 행하는 세례다. 설령 환자가 의식을 잃었다고 해도 평소에 그런 원의가 있었는지를 가족들의 의견을 토대로 추정하여 베풀 수 있다고도 했다. 일단 천주를 믿는다고 선언하고 다짐해야만  천국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을 알려줘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 내용을 받아들이는지 확인하고 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잘못을 통회하도록 안내하고 세례를 주도록 되어 있었다. 의식이 없는 경우라도 앞서 언급한 4대 교리를 귀에 대고 조용히 들려줄 수 있단다. 이제 육신을 떠나려는 영혼이 듣도록 하는 것이란다.

“우리들이 하릴없이 죽어가는 임종 직전의 환자가 되었구료 그래”
“그만큼 우리들 사정이 긴박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잘못을 통회하는 진지한 의식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러네”

어느 교덕서에 세사람의 심금을 크게 흔든 구절이 었었다. 의역을 하면 다음과 같았다.
“사도 바울부터 오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자기 양심에 다 깨끗하여 세례받으려면 누구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깨끗해서 받는 것도 아니요 더러워서 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 심신은 늘 고칠 것이 한도 없으나 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일단 세례를 받고 나머지 문제는 믿어 가면서 해결하라고 천주께서 그러시니 그리할 뿐이다. “
“따라서 순종 순명하는 마음으로 받는 것이지 양심에 받을 만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거절하는 것도 꼭같은 죄요 잘못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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