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탄압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하겠는가?”
어디서 그런 춤을 배웠는지 단원 이존창의 춤은 대단했다.
가운데 쪽의 호족반들을 뒤로 물리게 해 공간을 더 넓게 하더니 천연덕스럽게 양손을 흔들며 허리를 구부리고 방 가운데로 들어서려 할때 부터 내공이 엿 보였다. 이마에는 흰 끈을 두르고 있었다. 흔들 흔들 무릎을 구부리고 걸음을 내딛을 듯 하다가는 멈추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 할때 부터 좌중을 압도 했다. 등에 옷가지들을 집어 넣었는지 하릴없는 곱사등이 되어 있었다. 아랫 입술을 아래로 구부리고 윗입술은 혀를 내밀어 덮었는데 찡그린 눈 하며 하며 내민 턱과 뺨의 주름 하며 하릴없는 원숭이 상이었다. 하긴 단원의 인상이 원래 부터 잔나비상 이기는 했다.
흔들흔들 넘어질듯 왔다갔다 방 중앙으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중인들에게 ‘어화둥둥’과 ‘어절씨구’를 합창하게 해 장단을 맞추게 했다. 자신이 먼저 어화둥둥 어절씨구를 하면서 손짓으로 좌중의 합창을 유도 했다. 그 점잖은 홍낙민도 근엄한 정약전도 박수를 치며 어화둥둥을 따라했다. 이벽과 권일신도 그랬다. 넘어질듯 비틀 대다가는 이내 곧추서고 엎어질듯 앞으로 숙이다가는 처연한 발짖 몸짓 으로 바로 섰다. 일그러진 원숭이 상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흘렀다.
사람 마다 앞에 서서는 우스꽝스런 몸짖으로 박장대소를 짓게 했다. 손사위는 게속 흐느적 거리다가는 어느 순간 절도를 담은 동작으로 변하기도 했다. 좌상이자 명문가 양반인 직암 앞에서서는 그 수작이 더 농후 했다. 고개를 옆으로 떨구며 ‘ 칫 양반이 별거야’ 하는 시늉을 냈고 꼽사등을 직암을 놀리는듯 그쪽으로 서서 돌려 댔다. 정약전 앞에서도 그랬다. 양반 걸음을 흉내내면서 더 넘어 질듯 휘청 거렸다. 명백한 풍자였다. 중인인 김인문 역관앞에 서서는 얼싸안는 듯한 어화둥둥을 선보였다.
그의 병신춤은 병신을 비하 하는 것이 아니라 춤출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서 추는 춤이었다. 그의 어려운 한 발짝은 험난한 세상을 향한 개혁의 발검음이었고 잘못된 세상을 향한 거부와 저항의 지난한 몸부림이었다.
한참을 좌중을 들었다 놨다 했던 존창의 춤은 어느 순간 그가 구부러진 몸을 곧추 세우고 등 쪽으로 손을 넣어 헝겁가지를 꺼내 들면서 끝났다. 그때 존창은 이렇게 외쳤다.
“어화둥둥, 어절씨구, 나는 하늘을 보았다네.” 그날 하늘을 본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 양근의 세례 논의 >
이번에는 직암이 광암을 맞았다.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열렸던 이승훈 귀국 환영연이 열린지 스무날 쯤 지난 84년 9월 초 가을의 일이었다. 양근의 권씨가로 광암이 찾아온 것이다.
“며칠 안 있어 한양으로 올라 가려 했는데 무슨일 이신가? 덕조.”
“오랫만에 스승님께 인사도 드리고 아무래도 다들 세례를 받는게 좋을듯 싶어 숙사와 그 문제를 상의하러 급히 찾아왔습니다.”
“그러신가? 어쨌든 잘 오셨네.”
바로 옆집인 큰집 녹암 형님께 인사를 한 뒤 일신 집 사랑에 들어 논의에 들어갔다. 녹암도 모처럼 찾아온 명석한 제자를 매우 반겼고 며칠 푹 묵어 가라고 당부 했다.
역시 문제는 세례였다. 사랑에 들자 마자 광암은 자신이 며칠 전 승훈으로 부터 셰례를 받았다는 얘기를 먼저 했다. 그날 명례방 연회 때 헤어지면서 조금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했었는데 그사이 광암은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자신의 세례명을 세례자 약한(若翰, 요한 ) 으로 했단다.
“그러셨는가? 잘하셨네, 세례명도 덕조 자네와 어울리는군”
일단은 그렇게 치하했다. 세례는 천주교인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탄생이었기에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천주학에 뜻을 모이기로 한 강학 성원들로서는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한 대사 였다. 광암은 되는 대로 빨리 성원을 모아 대세의 자격을 갖춘 승훈에게 세례를 받아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직암에게 확고한 어조로 전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셨는가? 그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 않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내 직암은 그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 하고 있었다.
“다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게 좋을 듯 싶어 그랬었지요.”
사실 직암은 그때까지 세례가 그리 서둘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정식 사제, 될 수 있으면 신망과 덕성을 갖춘 서양인 신부가 이 땅에 왔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었다. 세례는 사제가 들어오면 정식 절차를 밟아 진행해도 늦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존창형님의 별산대춤을 보고 회개와 발심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이런저런 사정 따지다가는 낙민 형님 말씀 대로 부지하세월 일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그랬군”
“존창 형님의 그 곱사춤이야 말로 우리의 처지를 그내로 보여주는 춤 아니었습니까? 창조주 천주 앞에는 문제 투성이의 원죄의 피조물 아닙니까? 그럼에도 천주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독생자를 보내셨고 발심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 아닙니까?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실행 하라는 것이 천주의 뜻이라고 생각 됐습니다. 천주를 기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첫째 의무입니다. 존창 형님이 하늘을 봤다고 외치는 순간 저는 전율 했습니다.”
“나도 그랬다네”
광암과 직암의 논의는 세례 전 반드시 필요한 회개 문제에 먼저 집중됐다. 광암의 생각은 도도한 웅변 이었다.
“세례 요한에 의하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는 말은 곧 회개가 아직 안되었다는 말입니다. 회개가 안 된 것입니까? 아니면 회개를 못하겠다는 것입니까? 그 말 속에는 아직도 회개를 못하겠다는 고집이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 속에는 아직도 천주 앞에 항복하기 싫다 아직도 내 죄를 인정하기 싫다. 아직도 내 인생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세례의 준비는 회개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천주님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하면서 ‘천주여 내 인생이 잘못되었고 내 삶이 잘못되었으니 이제 나를 고치시기를 원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세례입니다 ”
“천주학 지식으로 세례받는 것 아닙니다 충심으로 회개했다면, 인생을 바꾸기로 발심을 냈다면, 세례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께 두 손 들고 항복하고 회개하면 보혈로 죄를 씻고 야소의 피 묻은 손으로 치유받는 축복이 우리에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회개 말고도 세례의 조건이 있지 않은가? 네가지라고 읽었네만…”
그랬다. 세례를 받고 천주에 입문하겠다고 한다면 최소한 네가지는 인정하고 있어야 했다.
천주존재(天主存在) 삼위일체(三位一體) 강생구속(降生救贖) 상선벌악(賞善罰惡)이었다.
천주 존재는 하느님 천주님은 무(無)로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항상 계시며,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유일신이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삼위일체는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세 위(位)를 포함하여 계신다. 곧 성부, 성자, 성신(령)이신데, 이 셋은 서로 높고 낮음도 없으시고 먼저와 나중의 구별도 없으시며, 그 자체로 온전한 한 분 하느님이시다는 강령이다.
강생구속은 세상 사람들이 천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죄를 범한 이후, 모든 사람은 그 원죄(原罪)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잃게 되었지만 그러나 하느님이신 야소 기리시다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구속(救贖) 사업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성자의 구속 공로로 천당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강령이다.
그리고 마지막 상선벌악은 사람이 죽으면 천주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하느님, 천주는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으로 갚아주시지만,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천주존재와 상선벌악은 강학 성원 대부분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여 지고 있지만 삼위 일체와 강생구속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항목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