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승에 담긴 함의와 우리 한류
안동일 (본보 대표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상보다 싱겁게 트럼프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이번 선거는 갈수록 심해지는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를 반영하듯 ‘누가 더 좋은가’ 대신 ‘누가 덜 싫은가’를 선택하는 양상으로 치달아 왔다. 정치적 양극화에 인종, 교육 수준, 도농 격차, 외교 등 여러 영역에서 다차원적 분열선이 겹치면서 해리스와 트럼프 모두 대통령 감으로는 어딘가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최선을 선택한것이 아니라 차악을 택했다는 말도 나올 법 하다.
이번 대선의 쟁점은 ‘아이 쓰리 에이 원‘ (I3 A1) 즉, 인플레(inflation), 이민(immigration), 이스라엘(Israel), 그리고 낙태(abortion)등 이었다고 말한다.
고물가를 동반한 인플레는 미국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직접 요인으로 선거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입국자 유입을 둘러싼 대응은 계속되는 큰 논쟁거리다. 이스라엘 – 하마스 분쟁을 둘러싼 바이든 해리스 정부의 대응은 전국적인 들불같은 대학가 반전시위를 초래했을 정도로 민감한 이슈였다. 낙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대 공화당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초래한 미국적 가치의 대표적 사안이다.
필자는 이 기저들이 한마디로 요약하면 PC,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정치적 올바름으로 번역됨)에 대한 미국인들의 현재 정서에 나온 쟁점이었다고 확고하게 여기고 있다.
PC는 출신,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종교, 장애, 직업, 나이 등을 기반으로 한 언어적・비언어적 모욕과 차별을 철폐하자는 인권 운동, 사회 정의 운동을 표현하는 말이다. 당초는 정책 내용보다 수사에 집중하는 일부 좌파 인사들의 극단주의를 재치 있게 지칭하는데에 쓰였고 또 보수주의자들이 미국 대학가에서 늘어가는 진보좌파 커리큘럼이나 교습법을 비판하는데에 사용되었는데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계기로 미국을 풍미하고 있다. 기업경영에도 고용의 다양성 워라벨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졌고 교육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권리와 다양성을 중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적 논리와 모습으로 나타났다. .
이코노미스트 같은 잡지는 최근 2022년을 정점으로 미국 내에서 PC 열풍이 수그러들었다고 분석했지만 우리가 느끼 듯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각 이라지만 더 깨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워우크(woke)‘라는 단어가 한창 회자 되고 있다. 웨이크, 깨어나다의 과거 분사형인 ‘워우크’는 집단적인 분노와 각성의 행동양식을 뜻한다. 요즘 한창 불붙어 있는 젠더 논쟁이 pc 와 워우크의 일환으로 보면된다. 우리로 말하면 ‘의식화’, ‘운동권 논리’ 라는 말로 환치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BLM 운동이 이 일환이었고 미투 운동, 또 지금의 낙태 찬반 운동, 동성혼 결혼 찬반, 불법 입국자의 인권과 복지 논쟁이 그렇다.
트럼프가 이긴다면 이 피씨와 워우크에 대한 미국 일반인들의 반감과 피로감이 크다는 얘기고 반대라면 아직 그런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으로 보면 됐었는데 결과는 트럼프 측 다시 말해 반 PC 파의 압도적인 승리로 귀결 됐다.
이번 대선 광고에서 이 지점을 파고든 트럼프의 전략은 크게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민주당 정권은 PC 논리에 입각, 불법입국자들의 인권도 중요하다면서 살인자, 심지어 태러 용의자도 입국했다고 그들의 머그 사진을 죽 나열했고 미시건주 전체 인구에 맞먹는 천 만명을 세금으로 먹여 살리고 있다고 광고 했다.
가장 극명한 광고는 ‘제일 인메이트’, 형무소 제소자들이 성 정체성을 찾는 권리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전환 수술을 나랏돈으로 해줄 수 있다는 해리스의 인터뷰 장면을 보여 준 것이다.
또 민주당과 PC 옹호론자들은 초등학생이 성전환 수술을 한다고 해도 부모는 개입할 수 없다면서 초중등학교 여자 농구부 경기에 머리 기르고 가슴만 키운 덩치 큰 남자 학생이 함께 뛰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게 말이 됩니까? 당신 자녀들이 이렇게 당하고 있습니다” 라면서 트럼프는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광고들은 최대 시청률의 이벤트였던 양키스와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내내 미국민의 안방을 찾았다.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 농촌의 민주 공화를 막론한 상대적 보수 중산층 유권자들은 이 광고에 넘어갔다. 샤이 트럼프 보다는 분노한 불루(민주당원) 가 더 많았던 것이다.
요즘 미 전역 특히 대도시의 빈민가와 공원에는 노숙자들과 부랑자들이 어느 때 보다 넘쳐 나는데 저들은 대부분 가격도 엄청 저렴해진 마약에 쩔어 있고 도심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엘에이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 피해액 3천달러 미만 좀도둑은 아예 경찰이 출동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권리, 그리고 천부 인권은 중요하기에 워우크 된 사람들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면서 지하철 공중 화장실에 일회용 주사기를 비치 하는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모습을 기화로 트럼프는 미국이 망했다면서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대도시를 제외한 소도시 농촌 대부분의 사람들의 전폭적인 동의와 지지를 얻어 냈던 것이다. 곰곰히 따지고 보면 노숙자는 어느시절에도 있었는데 불결하고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 모습 만으로 국력이 쇠해 나라가 망했다고 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싶은데도 그랬다.
앞으로 트럼프 2기에 예상되는 혼란 가운데 이 피씨와 워우크에서 기인한 여러 진보적이며 전향적인 법률과 관습, 사회 분위기 등을 페지하고 바꾸려 할 때 일어날 반발과 저항이 문제다. 피씨와 워오크 운동권, 이른바 진보 이데올로기는 우리도 계속 느꼈던 바 대로 나름대로는 종교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성과 헌신성으로 무장 돼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 하다. 건전한 보수가 개인의 수양에서 출발 한다면 진보는 대의에서 출발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이나 저곳(어딘지 여러분이 짐작하는 그곳) 이나 정치적 대립은 서로를 거의 악마화하고 있으며 상종 못할 부류로 여기면서 대화 할 생각을 아예 않는다. 정말 큰일이다. 6일 오후 오바마 부부가 낸 성명은 진정한 진보란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자님 같은 소리지만 해결책은 여기에 있다.
어제 한국의 한 시사프로의 표제가 ‘해리스가 당선되면 큰일나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망한다’로 돼 있었다. 재치있는 표현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누가 당선되도 큰 일이 아니며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대로 미국에서 후유증이 나타날 공산은 크지만 그래도 미국은 견뎌내고 극복할 것이다. 비관적으로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페밀리 밸류, 가족의 소중함을 제1의 가치로 여기며 가물어서 세차 하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 자식들에게는 출세하라는 말보다는 정직해 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 이번 선거가 바로 이런 미국의 건전한 중산층의 외침이 결집된것 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는 트럼프 치하 4년을 견뎌 냈다. 2기는 그때 보다는 합리적일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도 이제는 재선을 생각할 필요가 없고 제반 법정문제에 대한 ‘자기 사면’ 외에는 더 욕심 낼 것이 없기에 명예로운 퇴진을 생각 할 것이라는 긍정 분석에 한표 던진다.
우리 재미동포들에게는 아무래도 모국 한국의 상황에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나 그곳 사람들에게나 미국은 호텔 캘리포니아 인셈이다. 천국인지 지옥인지 헷갈리는 곳, 언제든 체크아웃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든 디바이스에 의해 스스로 구금된 곳, 그래서 결코 못떠나는 곳.
꽤 많은 변화가 예상되지만, 한국 을 포함하는 외교정책 핵심 사안에서 트럼프 한 사람이 판을 완전히 뒤엎을 여지는 크지 않다. 국무부, 국방부 등 한미동맹과 관련된 부서들은 여전히 동맹을 중시하며 핵 비 확산 노선을 견지한다. 따라서 트럼프라는 변수에 상관없이 실무 부서 간의 협력을 제도적 차원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것이 새로 전개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다.
한국은 지금 상황을 보면 딱할 정도로 제 코가 석자이기는 하지만 안보협력 체제의 다변화, 다중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가급적 다양한 소다자 협의체에 참여해 안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함으로써 트럼프의 돌연한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동북아 평화동맹으로 격상 하는 것도 매우 선제적이며 효율적인 방안이 될 법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재미 한류(동포)들을 한미관계의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동포청이 출범 했다고는 하지만 그 효용과 운용 행태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요령부득이고 필요에는 태부족이다. 미국내 유태인들의 정치 행동과 이스라엘 본국 정부의 동포정책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재미 한류( 문화 현상에 더해 재외동포를 총침하는 말 , 중국의 화교,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에 해당하는 말, 화교하면 대뜸 중국인을 떠올린다. 재외동포라는 말이 있다지만 어느나라 동포인지 한참 설명 해야 한다. 한류하면 뜻도 좋고 요즘 반응도 좋지 않은가) , 재미동포들은 연방 상원의원까지 배출 해 냈다. 연방 하원에 이번에도 3-4 명이 진출하게 됐다. 우리보다 역사가 깊고 인구가 훨씬 많은 중국계도 일본계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미국은 여론의 나라다. 미국 정치인 만큼 지역구 여론과 유권지들에게 충성하는 정치인은 전 세계에 드물다. 또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모국을 위한 민간 외교를 수행하고 있는 동포 언론을 적극 후원하고 활용해야 한다.
유권자는 결국 현명하다. 매 선거마다 미국의 다수 국민들은 극단주의를 배격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 주곤 했었다. 특히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던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과 정치의식이 높아진 젊은층의 바람이 표로 나타나곤 했었다. 유권자는 흔들리는 듯 하지만 종국에는 현명하게 시대정신을 대변 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이다. @